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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Oct 13. 2024

청소기를 기다리며

작고 소중한 나의 투룸에서

청소

청소를 못하고 있은 지 벌써 10일 째다. 15년 동안 써 온 유선 청소기가 고장이 나서 폐기물 수거 업체를 불러 버렸다. 새로 산 무선 청소기는 21일에나 배송받을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일주일은 더 이렇게 지내야 한다.


방바닥에는 머리카락과 먼지 뭉치들이 굴러다닌다. 그 때문인지 비염이 심해졌다. 나는 원래 거의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편이다. 내가 유난히 부지런하거나 깔끔을 떨어서가 아니라,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데 그걸 제거하기 위해 청소기를 싹 한 번 돌리는 편이다. 이왕 하는 거면, 집이 넓지도 않은 투룸이라서 청소기 한 번 사용하는 데는 5분밖에 안 걸린다. 아무래도 10월에는 누군가를 우리 집에 오라고 부르지 못할 것 같다.


청소기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 화장실 청소를 했더니 좀 개운하다. 화장실 청소는 10분이면 다 끝나는데, 왜 이렇게 할 때마다 귀찮은지 계속 미뤘더니 벌써 한 달 동안 방치했다. 타일바닥에 낀 까만 물때와 옅은 핑크색 곰팡이들을 락스를 뿌려 제거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곧 나타난다. 나는 그러면 또 화장실을 청소할 테지.


내가 사는 집이 좀 넓고, 더 깨끗하고, 더 안전한 곳이었으면 좋겠지만 그 꿈은 너무나 요원하다. 대신 나는 청소기라도 매일 돌린다. 화장실 청소는 미루기도 하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한다.


달 전에 화장실 형광등을 교체하러 들른 집주인은 휘 한번 둘러보더니 참 깔끔하게 해 놓고 사시네요,라고 했다. 나는 아유~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답하며 손사래를 쳤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많이 게을러서 또는 너무나 지저분해서 혹은 위생관념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나 마음이 아픈 거라고, 그들의 쓰레기 집은 아픈 몸과 황폐해져 버린 마음의 현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제든 그 쓰레기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아니, 쓰레기집을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고 청소해서 다시 말끔하고 멀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에 나도 거의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청소기가 없어서 청소를 하지 못하는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버리고, 외출할 때마다 분리수거를 하고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생활을 스스로를 삶을 방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일 년에 서너 번은 대청소를 한다. 계절이 바뀔 때, 환절기가 되면 옷장 정리와 침구를 바꾸면서 하는 김에 손이 잘 닿지 않던 곳의 먼지를 닦는다.  


당연한 것들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자신을 짓누르는 마음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험상, 재촉하고 다그치기보다는 곁에서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게 좋았다.


여기저기 쌓아놓은 책들, 쌓여가는 먼지들, 냉장고를 열만 나는 쿰쿰한 냄새와, 작은 화장대가 터질 듯이 놓인 화장품들, 책상 위에 놓은 잡동사니들, 낮은 매트리스, 조립식 행거에 걸린 계절 옷들, 부엌에 난 창과 안방에 난 창, 켜서 보는 일이 거의 없는 구형 텔레비전, 어수선하고 좁은 현관, 청소를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더러워지는 화장실.


나는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 언젠가는 탈출하기를 바라면서도 이 공간이 없으면 안 된다. 새 청소기가 배송 오면 날 잡고 깔끔하게 청소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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