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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트리 Oct 21. 2024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법

수어 그림 <후회> / 지후트리 / 2016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법


내 또래의 부모세대들은 음력일자로 생일을 보낸다.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의 생일이 돌아왔다. 

추석 오기전과 후로 엄마의 음력생일이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가족들의 경사가 많아 남동생 가족들과 이모, 엄마 이렇게 아담하고 소박하게 보냈다며 영상과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과 영상 속에는 3살짜리 귀여운 조카가 생일 케이크에 꽂혀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끄려고 열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사랑 어린 시선들을 담겨 있었다. 엄마가 몹시 즐거워 보였다. 명절에 아빠 차례도 못 보내고 엄마 생일도 함께하지 못해서 그녀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조용히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엄마를 광주광역시로 초대했다. 지인이 참여하는 공연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극을 올려 오랜만에 그녀와 문화생활을 하려고 광양에서 광주까지 오는 버스표를 미리 예매해 주고 유스퀘어 광주터미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고 조우했다. 서울에서 광주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길이 조금 막혀서 그녀보다 30분 정도를 늦게 도착했다. 엇갈린 시간 끝에 올해 거의 처음으로 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꽤 많은 시간들을 머금은 엄마의 주름들과 성치 않은 무릎이 애잔함으로 밀려왔다. 


'맞다.. 엄마 한쪽 무릎 수술해서 걷는 거 조금 불편한데, 내가 내 나이만 생각하고 힘들게 버스 타게 했나..'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조금 기울어져 슬피 울고 있었다. 조금 후회가 밀려왔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와 가족들의 응원이 있어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 엄마랑 새해 인사를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몇 번의 새해 인사가 남았으려나? 엄마랑 좋은 시간 많이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엄마의 걸음걸이가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내가 인기척이 없이 공연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딸이 피곤한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잘 보고 있노라고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엄마는 신이 나 보였다. 공연이 흥미롭고 재밌었다기보다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표정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근처에서 축제들이 열리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바로 내려온 나의 무거운 짐과 엄마의 무릎 건강의 환장의 조합으로 여유로운 축제 구경은커녕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애매해져 서둘러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빠른 판단 덕분에 버스를 기다릴 시간은 여유로워져서 터미널 내에 쾌적한 카페로 들어가 그녀가 좋아하는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두 잔 시켜 밀린 대화들을 나눴다. 엄마가 하고 있는 주식 이야기, 딸의 이사 이야기, 딸이 겨울에 극을 올리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 남동생 가족이야기, 이모의 둘째 아들 결혼식 진행상황 이야기, 작은 아빠의 가정 불화 이야기 등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네가 있어 그래 "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 엄마! 이거 노래 들어봐 봐~ 엄마랑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 (귀를 기울이는 그녀. 한참 듣더니 이내 말한다.) 어머! 그러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네^^ " 


대학교 2학년 1학기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한곡 반복 재생으로 엄청 듣고 있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로 와서 한마디 건넸다.


" 딸~ 엄마 이 노래 너무 좋다. 이거 엄마 통화연결음으로 해주면 안 될까? " 


그녀의 첫 통화연결음 곡이었다. 엄마와 내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노래였다. 둘 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해맑게 웃으며 노래를 들었다. 기분이 좋아진 틈을 타 그녀에게 물었다.


" 엄마 요즘 무릎이 많이 안 좋나? 아까 보니까 걷는 게 더 불편해 보이는 것 같던데 말이야. "


엄마는 무릎관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의 직업은 요양보호사다.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일이 무척 보람차고 좋지만 엄마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육체노동적인 일이 이제는 조금 버거워지고 있다 했다. 정년퇴직까지 3~4년 정도가 남았는데 그 마저도 무릎이 점점 안 좋아지니 일찍 퇴직을 하고 인공무릎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무릎이 안 좋을 땐 콘드로이친이라는 성분을 먹으면 연골 쪽에 기름칠을 해줘서 무릎을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적어진다 한다. 그건 어디서 사는 거냐며 내가 물었더니 그녀는 내 질문을 기다렸단 듯이 검색할 단어를 알려주었다. 조금 귀여웠고 서글펐다. 손가락을 서둘러 휘둘렀다. 이 제품이 맞느냐고 묻자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주문을 마치고 엄마를 쳐다봤다.


" 엄마 콘드로이친 내가 시켰어. 내일 바로 엄마집으로 배송해 준대. 먹고 무릎한테 많이 힘내라고 말해줘야 해. 그리고 어떤지도 후기 알려줘. 괜찮으면 매년 사줄게 엄마 "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복용방법을 한번 더 확인하더니 매일 꼬박 잘 챙겨 먹겠다는 굳은 다짐과 의지에 찬 얼굴로 꼭 매년 사주길 바라는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터미널에서 거한 결제를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둘만의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고 나는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약 2주의 시간이 흐르고 쌀쌀해진 날씨를 핑계로 삼아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했다. 


" 엄마~ 날이 추우니까 건강 챙기고 감기 조심해양~ 안부 물으려고 전화했어. 어디야? 집이야?"

" 아이고 우리 딸이 전화를 다 주고 , 엄마 퇴근하고 집에 와서 쉬고 있지. 딸도 감기 조심하고 밥은 먹었어? "

" 나도 공연 연습하고 이제 집 들어왔지 곧 먹으려고. 엄마는? 무릎은 어때? " 

" 훨씬 무릎이 편해졌어 딸 덕분이야^^ 고마워 "

" 다행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사주는 거였는데 다 먹으면 또 사줄 테니까 걱정 말고 열심히 먹어"

" 고마워 딸^^ 엄마는 지금 기표삼촌이 준 능이버섯 맛이 궁금해서 지금 몇 개 꺼내서 요리해 먹으려고.

또 언제 내려올 수 있어? 이거 능이버섯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

" 시간 한번 맞춰보자 능이버섯 맛있겠다. 저녁 맛있게 먹어 엄마. "


수화기 너머로 능이버섯 요리를 하려 신나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이랑 통화해서 밥 먹을 힘이 난 것 같다. 들떠 있을 표정이 상상이 가서 웃음이 났다. 나와 내 동생을 키워내기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무릎이 너무나도 애잔하지만 애잔한 마음으로만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으니 엄마의 즐거움의 시간 속에 내가 더 오래 머물러 있어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앞으로 엄마와 새해 인사를 주고받을 횟수가 점점 줄어들겠다며 아쉽고 아까워하는 마음만 가지기보단 어린 나를 보호해 주고 지켜줬던 엄마의 씩씩한 시간들에 감사함을 표하며 함께 걸어 나가야겠다. 


인생은 돌이켜보면 후회로 점철화 될 수밖에 없지만 조금 덜 후회하면서 살 수 있음을 모두가 알 것이다.

있을 때 잘하고 사랑하자. 후회 없이.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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