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BEL Jul 24. 2020

[에세이] 스트리밍: Streaming

스트리밍: Streaming 음악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다. 음악은 멜론, 유튜브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온 대중을 적신다. 내가 어린 시절만해도 스트리밍이란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 필요한 첫 단추는 음악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때도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지만, 그건 내 의지 밖의 우연일 뿐 내가 원하는 때 듣기 위해선 음악을 말 그대로 갖는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세대에선 LP, 나의 세대에선 CD 등 형태는 변화 했지만 과거 우리는 주로 음악을 소유하여 들어왔다. 반면 지금은 스트리밍의 시대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 특유의 경제성과 개방적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음악적 인프라를 우리에게 제공해줬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음악을 소유하여 듣던 예전이 그립다. 단순히 물욕이나 디피된 음반들을 보며 허영을 채우고 싶단 말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때의 청자들이 음악을 대하던 태도다. 스트리밍이 범람하는 오늘,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흘려 듣는 것이 되었다. 음악 어플들이 평소 내 취향이나 그 날의 기분에 맞춰서 적절한 음악을 내게 추천해주고 그 날 그 순간 나는 음악을 즐기지만 나는 결국 음악을 떠나보낸다. 풍족한 환경에서 소중함을 잃듯 나는 음악을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들엔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집에 놓인 음반들을 넘기다보면 곡마다 새겨진 기억들에 울고 웃으며 내 삶이 풍요로운 느낌이 든다. 요즘은 음악을 소비한단 생각은 들지만 음악에 나만의 가치를 두는건 어색한 일이 되었다. 과거엔 어떤 계기를 통해 처음 그 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음반을 사기 며칠전부터 신중하게 고민해본 뒤 직접 매장에 방문하여 집으로 모셔왔다. 덕분에 그 일련의 과정들은 물론, 반복하여 들으며 일상에서 마주친 여러 추억들과 감정들이 곡마다 겹겹이 쌓였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런 기억을 많이 잃어버렸다. 사실 소유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 너무나 쉽게 적응해버린 내 연약한 태도요, 그리운 것은 그 때 그 시절의 내 모습이다. 단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 윤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