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도 이제 두 달이 조금 넘게 남았다.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막상 지나고 보면 작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설문조사를 할 때 연령 정보에 40대를 체크해야 하는 순간, 내 나이를 실감할 뿐이다. 그렇게 마흔 살을 여느 때처럼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어른일까?'
마흔이라는 나이는 서른보다는 좀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어야 하며 여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흔 살로 보낸 지난 10개월을 뒤돌아보니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다소 험난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사춘기를 온전히 내가 성장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없었다. 흔한 K드라마 주인공의 불우한 가정사가 내 얘기라면 드라마와 현실은 좀 다르다. 전혀 아름답지 않고 하루하루를 그저 견뎌낸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놓쳐버린 아이는 20대가 되어 혹독한 사춘기를 맞이했다. 나는 정해진 타임라인에 맞춰 대학에 가고 취직을 했지만, 롤모델이 없던 나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를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나는 젊고 아름다웠지만, 그 시간의 나는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감정은 널뛰기하듯 왔다 갔다 했고, 그 와중에도 뭔가 완벽해지려고 자신을 다그쳤다.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 아이와 나의 바다(노래 : 아이유) 가사 중에서 -
자기비하로 점철된 내 20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너무 와닿았던 가사다. 하물며 아이유도 이러한 시절을 보냈다고 하니, 나 자신을 괴롭히고 사랑하지 못했던 20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스스로와 끊임없이 싸우고 미워하는 과정을 거쳐 30대가 돼서야 나는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갈 때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세상에 내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안정감을 주었다. 나 혼자였던 세상에서 남편이라는 존재를 만나 비로소 스스로가 밉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돌려받는 경험은 어른이 되어가는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30대를 보내면서 점점 나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내가 한 아이를 키울만한 어른은 되지 못했다는 결론이 있어서였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들을 어떤 면에서는 나는 무조건적으로 존경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 순간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내던져지는 것을 견뎌내야 하니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하고 어른으로서 아이를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내 아이가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모든 게 변명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같이 성장해가는 수많은 부모들이 있고, 훌륭한 어른이 아니어도 행복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주변의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아이를 낳는 것은 결국 포기했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고 있고,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여전히 용기가 나질 않아서다. 언젠가 후회를 하게 되더라도 견뎌내는 것은 내 몫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니 상상으로만 남겨두고 지금 현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나는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40년을 살았어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 봐도 겉으로는 어른이긴 한데 내 마음은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제법 단단해진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꿈을 찾게 되었다. '그래야만 하는 것'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를 알게 되니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용기와 확신도 따라왔다. 남들이 괜찮은 게 아니라, 내가 괜찮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그래도 그게 지금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생각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긴 하지만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이다.
10대의 나는 그저 존재했기 때문에 살아갔고,
20대의 나는 성인이 되었지만,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다.
30대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고,
40대의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법을 안다.
가끔씩 형편없는 나를 마주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부족한 내 모습도 보듬을 줄 안다. 이렇게 부족하고 하찮은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어른이란,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