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날
이것은 나의 일기장이자 수필이다. 생생한 누군가의 하루다.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 한다. 그 기록은 때로는 날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겠지만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겠지. 뭐 어찌 됐든(?) 이 시간의 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화장대에 앉아 화장솜으로 얼굴을 지우던 차였다. 이물질과 섞인 파운데이션이 묻어 나왔다. 그걸 보며 엊그제 피가 엷게 비쳤던 팬티라이너를 떠올렸다. 아 맞다, 미레나! 생리 5일째 되는 날 산부인과에 들러야 했던걸 깜빡 잊고 말았다. 나는 솜을 아무렇게나 구겨 휴지통에 넣었다.
“피가 살짝 비치실 때 와야 시술 통증이 덜하실 텐데.”
산부인과 의자는 최악이다. 그 의자에 눕는 순간 꼭 형편없는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리는 M자 형태로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고 내 그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좁은 질 안으로 드르륵, 하는 도르래 소리와 함께 차가운 기구가 들어왔다. 그 기구는 좁은 질 안을 넓혀주는 것 같은 용도같이 보였는데 귓구멍의 예민한 깊은 곳을 억지로 벌려 찢는 느낌이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어린 시절 은색 기차모양의 연필깎이가 생각났다. 의사가 내 질 안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는 것 같았다.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아프다. 세상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배 깊숙한 곳을 몇 번이나 꾹 찔렀다.
아마 그곳이 자궁이겠지. 옆구리와 아랫배가 뻐근했다. 시술이 끝난 뒤 나는 초음파를 보기 위해 옆 침대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막대기다. 그것이 꾸물꾸물 질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플라스틱의 막대기가 전 남자친구의 페니스라고 상상했다. 그와의 섹스가 꽤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순간에 섹스만 떠올렸던 건 아니지만 그 막대기를 꽤 나쁘지 않은, 다른 것으로 상상하면 고통이 좀 덜 한 것이 느껴졌다.
내가 미레나를 하는 이유는 생리통 때문이었다. 엔세이드 알레르기라는 저주받은 것에 걸려서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얼굴에 가려움을 동반한 붉은 혹이 마구 생겼다. 그래서 타이레놀밖에 먹지 못했다. 그 많은 효과 좋은 생리통 약을 경험해보지 못하다니... 분했다. 어찌 됐든 극심한 생리통 탓에 미레나 시술을 하게 됐다. 솔직히 자유로운 섹스를 위한 목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섹스는커녕 한 달에 한 번씩 아픈 배를 잡고 구르는 것이 현실이기에. 뭐라도 하나 제대로 막아내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산부인과가 그렇게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이, 남자 의사가 나의 음부를 들여다봐서? 그곳을 기구로 헤집는 탓에? 여의사가 있던 산부인과에도 다닌 적이 있었다. 의사의 성별 영향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의자에 누워 그곳을 훤히 드러내놓고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워서였다. 꼭 삶을 살던 중 까발려지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경험이자 치부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 같았다. 이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목도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 항문외과 의사 앞에서 엉덩이 사이를 벌린 채 주름진 그곳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려나.
누구나 그러한 과거나 사건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그래서 산부인과의 그 의자를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며칠 후에도 간다. 앞으로도 갈 것이다. 가서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나의 것을 드러내 보이리라. 어쩌겠는가 고통과 뜻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이까짓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생리통과 섹스의 간극은 크지만 그게 무엇이든 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 산부인과 의자는 싫다.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