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거세게 내리면 나는 가끔 바다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바다 하면 굴이, 굴 하면 짠 소금기가 생각이 나고 그 거친 소금기를 더듬다 보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외할머니. 새벽녘부터 곱게 화장을 하고 굽은 허리로 굴을 캐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 일찍 다섯 살 된 나를 데리고 유모차도 아니고 끌차도 아닌 쇠로 된 작은 카트를 끌고 바다로 굽이굽이 내려갔다. 호미로 굴 껍데기를 찌르고 나는 그 쪼개진 껍질이 할머니의 손등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내게 입을 벌리라고 하고 작은 굴이 혀 위로 떨어지면 맛이 좋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작은 입을 우물거리기만 했다.
할머니는 자주 내게 무언가를 해 먹였다. 틈만 나면 쟁반을 들고 나타나서 작은 게를 쪄 오거나 높은 찬장에서 제사용 사탕이나 전병 과자를 꺼내주었다. 나는 엄마가 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었고 할머니는 그때마다 행복해 보였다.
한 달이 넘어서야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자랑이라도 하듯 그 쇠꼬챙이 같던 애가 이렇게나 살이 쪘다고. 살 오른 볼을 보라고 엄마를 타박했다. 엄마는 꼭 벌 받는 사람처럼 할머니를 피해 나를 슬쩍 안으려 했다. 엄한 엄마가 외할머니 앞에서 언니와 나처럼 팔을 들고 벌을 서는 것처럼 보여서 이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혼이 날 때마다 자주 외할머니를 떠올렸던 걸까.
초장에 굴을 찍어 먹을 때면 외할머니 생각이 나고 그때 엄마는 나를 안고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당시 나는 서울에 있다가 오랜만에 집에 온 참이었다. 상 위로 회와 굴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는 엄마 몰래 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만나지 말라는 남자와 계속 연락을 했다. 나는 십년마다 사고를 치는 딸이었기에.
아빠는 나를 문밖으로 쫓아내며 다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고 엄마는 성난 아빠가 잠잠 해지고 나서야 내 등을 어루만져주듯 타이르곤 했다. 딸 셋 중에서 유일한 사고뭉치가 나였는데 나는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에(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 멀었나 싶다. 어쩌겠는가 낙인찍힌 아픈 손가락은 어쩔 도리가 없다. 외할머니가 계셨더라면 분명 허리를 꼿꼿이 펴고 변론을 해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뭐라고 말했을까.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정자에 드러누웠다. 밤하늘이 보였다. 별들이 보였고 그중 몇은 점멸하듯 반짝였다. 그날 유독 별이 많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별이 잘 안 보이는데... 별들이 내게는 꼭 하늘에 생긴 못자국처럼 보였다.
하늘에 박힌 별들이 못이라면 내가 엄마에게 박은 못 들도 반짝거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