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 실버스타인의 시〈일찍 일어나는 새〉에는 웃기면서도 가슴 서늘한 모순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만 두 문장으로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우리는 늘 정답이 충돌하는 모순의 시대에 삽니다. 한쪽에서는 "꿈을 가져라"라고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꿈이 없어도 괜찮다"며 위로합니다. 여행은 경험이라더니, 이제 와서는 ‘사치라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방을 어지럽혀야 자녀들의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했다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기상하자마자 이불부터 개라고 충고합니다. 인생의 명언들이 오락가락하니, 그 사이에서 초심자들은 갈팡질팡 갈피를 잃습니다.
방황 끝에 제가 찾은 생존법은 하나입니다. “주머니에 정답을 하나만 넣고 다니지 않는 것.”
서로 상반된 정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내 처지에 맞게 꺼내 쓰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A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인 동시에, B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입니다.
어느 날 두 기업이 동시에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직장인인 저는 A 기업 앞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항의합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의 비정함을 성토합니다.
하지만 주주인 저는 B 기업의 구조조정 소식에 조용히 매수 버튼을 누릅니다.
비용 절감으로 인한 주가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율배반처럼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입장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열하다고 자책할 만큼,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우리의 입장은 180도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포식자인 새가 되고, 어떤 날은 먹잇감인 벌레가 됩니다.
내 처지가 바뀌었는데도 하나의 신념만 고집하는 것은 정직함이 아니라 아둔함입니다.
모순을 견디고, 상황에 맞는 태도를 고를 수 있는 유연함.
그것이 이 복잡한 세상을 건너는 지혜입니다.
2022년, 한 주주총회장에서 갓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저 같은 젊은이가
전 재산을 몰아넣을 만한 단 하나의 종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건 모르겠고, 대박 종목 하나만 찍어 달라’는 속내가 훤히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버핏이 내놓은 답은, 종목 추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 특정 종목을 찾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세요. 지금 차트를 들여다볼 시간에 당신이 선택한 전공 분야에서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취업을 한다면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실력을 쌓는 데 집중하세요.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는 순간 당신의 몸값은 당신이 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 시대도 당신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
짧은 조언 안에는, 저는 세 개의 혜안을 봤습니다.
첫째,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되어라.
이건 직접적인 조언입니다. 내 몸값을 시장이 아니라 내가 정할 수 있게 되는 길이니까요.
둘째, 대체불가능한 기업에 투자하라.
이건 간접적인 조언입니다. 한 분야를 선도하는 1등 기업은 가격을 남이 정해주지 않습니다. 제품의 가격을 스스로 정합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시대에도 그 회사의 가치는 깎이지 않죠.
셋째, 때를 놓치지 말라.
질문자의 위치는 ‘젊음’이었습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핏은 “차트 말고 전공”을 말한 겁니다.
여담이지만, 부자들의 강력한 공통점 하나는 ‘때’를 유난히 잘 붙잡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면, 영향력과 주도권이 커집니다.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상황을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의 주인처럼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보다 치명적인 맹점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대체불가능함의 그림자는 “쓸모의 소모성”입니다. 나의 쓸모가 클수록, 나의 소모성도 함께 커집니다. 실력은 사람을 자유롭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사람을 ‘도구’로 전락 시킵니다.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된다는 말은, 종종 ‘대체불가능한 도구’가 된다는 말과 겹칩니다.
잘할수록 더 투입되고, 더 많은 책임을 집니다.
“당신 아니면 안 돼”라는 칭찬은 “나 대신 더 일해”라는 보이지 않는 명령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서늘한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쓸모를 다했을 때입니다.
한때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었던 내연기관 엔지니어들이,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자 구조조정 1순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갈고닦은 기술이 어느 날부터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비용’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유능한 인재들이 이토록 불운해질까요?
저는 그 이유가 ‘사랑’과 ‘쓸모’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본질은 아낌입니다.
비 오는 날 명품백을 품에 안고 뛰는 아가씨나, 예순 살 아들의 무릎을 걱정해 대신 장터로 나가는 팔순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대상을 소모시키지 않으려 애씁니다. 사랑은 도구로서 쓸모가 없어도, 그 존재를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반면, 쓸모의 본질은 소모입니다.
정부와 기업은 우리의 재능을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깊게 끌어올려 이익을 극대화합니다. 그리고 효율이 떨어지면,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끼웁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두 번째 카드가 필요합니다.
2500년 전 철학자 장자는 전쟁으로 들끓던 춘추전국을 살았습니다. 뛰어난 장수는 전장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총명한 재상은 시기와 모함에 휘말려 삶을 잃었습니다. 그 시대에 대체불가능함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그와 맞닿아 있는 우화가 장자의 [외물편]에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 이야기’입니다.
‘남백자기’라는 사람이 길을 걷다 기이할 정도로 큰 나무를 마주합니다. 수레 천 대가 그늘 아래 쉬어도 될 만큼 거대했지요. 그는 속으로 감탄합니다.
“이토록 대단한 거목이니, 분명 쓰임새가 귀한 특별한 재목이리라.”
하지만 가까이서 본 실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지는 뒤틀려 서까래로 쓸 수 없고, 뿌리는 속이 비어 관을 짜기에도 부적합했습니다. 잎을 핥으면 입안이 헐고, 지독한 냄새는 사람을 사흘이나 앓아눕게 만들었죠. 겉만 번지르르할 뿐, 어디에도 쓸 데 없는 ‘빵점짜리’ 나무였습니다. 실망한 그가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문득 거대한 깨달음이 스칩니다.
“아니다, 내가 틀렸다. 쓸모가 없었기에 베이지 않고, 오랜 세월 살아남아 저리도 당당한 거목이 되었구나.”
이것이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입니다
단단하고 결이 고운 금송은 재목이라 칭송받으며 궁궐의 기둥으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나무의 처지에서는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누군가의 집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생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능이 많을수록 ‘재목’이라 불리며 일찍 세상에 불려 나갑니다. 그러나 재능이 클수록 타인의 질투와 조직의 통제, 국가의 관리 아래 놓이기 쉽습니다.
중국 고서 [삼국지]에는 신의(神醫)로 불린 화타가, 그 재주 때문에 권력자의 의심을 사 죽는 대목이 나옵니다. 현대에도 “첨단산업의 핵심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지 못하도록 제한을 받는다”는 보도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핵심 인력들이 여권을 반납하거나 이동이 제한됐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유용하지 못했던 자신을 두고, 자책하며 이유 없이 작아집니다.
“나는 무능력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장자의 시각에는 그 모습이 ‘타인의 도구가 되려고 안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쓸모’라는 기준을 환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쓸모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이런 메시지를 건넵니다.
“스스로를 도구로 전락시키지 마라. 움츠러들지 말고 거목처럼 서 있어라.”
저는 버핏의 조언을 따라,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고, 내 뜻대로 움직여 줄 바보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대신, 마음 한 구석에는 장자의 ‘쓸모없음’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취미, 생산성 없는 멍한 시간,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소박한 기쁨들. 이런 ‘빵점짜리’ 순간들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소모로부터 구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할 때와, 성공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늦게 일어나는 ‘벌레’가 되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유연함.
그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대체불가능한 존재인 동시에, 누구에게도 끝까지 소모되지 않는 온전한 나로 살아가게 하는 진짜 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