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나였다.
2주 만에 결정한 해외 이주,
언제든지 돌아오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고,
몇 년 만 살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여행 같은 해외 이주.
해외에서 재외 동포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제로 어떤 삶인지도 모른 채 그저 경험 있는 친구들의 좋은 덕담 한마디를 들으며
'가면 어찌어찌 살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무관심에 가깝게, 가서 생각하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포르투갈 땅에 랜딩 했던 게 큰 실수였다.
사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처음에는 생소했고,
이 나라에 정을 주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다.
EU 시민권을 받기에 수월하고,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고,
물가가 감당 가능한 수준이고,
국제 학교의 선택지가 많고,
날씨가 따듯하고,
이런 조건들이 우리가 포르투갈을 선택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EU 시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으면 진짜로 내가 원하는 나라에 가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포르투갈에 오고 한동안은 집을 안정화시키는 것,
그리고 뭘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따스한 햇빛과 바다를 만끽하며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며 대략 2달을 보냈나...
문제는 아이들이 국제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이들이 국제 학교에 적응을 잘하게 될까 걱정되어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열심히 시켰었다.
재밌다고 소문난 영어책은 모두 사다가 하루에 열 권 이상 읽어주고 하루 종일 영어 음원을 틀어놓고 아이들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했다.
영어유치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외의 영어 과외 활동도 시켰더랬다.
내가 한참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여보도 미리 영어 공부 좀 해둬, 우리가 살게 될 동네도 구글로 미리 좀 봐두고."
"지금 애들 챙기느라 바빠죽겠는데, 막상 가면 다 하게 돼있지 모."
5월에 포르투갈에 온 우리는 9월 개학 전까지 언어를 못해도 크게 불편함을 못 느꼈었다.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남편이 했고 그 덕에 나는 언어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며 남편에게만 의지해 3개월을 지냈다.
국제 학교 첫날,
아이들 내 예상과 다르게 놀라운 친화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며 새 학교에 안착했다.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학업에 전혀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네이티브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라며 칭찬하셨다.
둘째 아이는 그동안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 선생님 및 다른 부모들이 따로 물어오기도 했다.
그 뿌듯함도 잠시...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동안 듣고 지내던 영어는 미국식 발음.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영국 선생님들이셨는데
영국식 엑센트가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나의 영어 실력의 바닥이 그대로 보이는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의 영어실력이 출중했다면 영국식이든 인도식이든 유럽식이든 그 어떤 영어를 들어도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처음으로 접한 영어가 영국식이라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들려야 대답을 하지...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안 그래도 극 I의 성향을 가진 내가,
게다가 게으른 완벽주의인 내가,
개미보다 더 작게, 그리고 하찮게 느껴지는 하루하루였다.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을 만날 때나, 학부모들을 마주치면 나는 동양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Hi, Good morning.'만 외칠 뿐.
나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준 모든 이들과
그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움츠러들었고 계속 계속 더 작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플레이 데이트를 하거나 파티에 초대를 받으면 빠짐없이 모두 참석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알아듣지도, 말도 못 한 채로, 혹시 누가 말을 걸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럼에도 나를 계속 파티에 초대해 주고 선입견 없이 우리 아이들을 그룹에 항상 껴준 외국 엄마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미안했어..
나의 의사소통 불가능 수준의 영어실력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선생님에게 이메일로만 문의할 수 있는 엄마를 둔 아이들.
남편은 거의 모든 일을 대리인처럼 해결해 줬고,
아이들은 영어를 못하는 엄마를 둔 덕에 스스로 알아서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남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근처 어학원에 등록했다.
첫날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배정된 클래스보다 한 단계 더 낮은 클래스로 요청을 했다.
외국인 얼굴만 봐도 두려움에 가슴이 쿵쾅거렸던 나였기에 더 쉬운 클래스에서 자신감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내 수준보다 낮은 클래스에서의 수업은 수업 중에 자신감은 얻었지만
영어의 수준은 그대로였고,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 달만 다니고 그만두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2023년 어느 날,
나는 그냥 어느 날부터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특별한 계기도, 결심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했다.
*사진은 2024년 1월 1일 새해 인증 새벽공부 사진
내 영어의 은인을 만나다!
당시 나는 인스타로 짤막하게 돌아다니는 영어 콘텐츠들을 자주 보며 원어민들이 쓰는 표현들을
익히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팔로우하게 된 인플루언서가 있었다.
자칭 에듀테이너라며 미국에 사는 예쁘게 생긴 여자가 영어에 관련된 재밌는 표현을 콘텐츠로 제작해 유튜브와 인스타에 올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나랑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그녀를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그저 영어 노출을 위해 팔로우를 했다.
그녀는 영어뿐만 아니라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들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논리와 방법에 나는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로 아란 잉글리시의 아란쌤.
너무도 깔끔하고 논리적인 설명에 이해가 쏙쏙 되기 시작했다
'그녀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서두르지 말고 몇 년이 걸리든 해보자!'
1년짜리 강의를 결제했다.
강의명은 회화 줘 패기!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70-90분짜리 강의를 매일 들으며 두 달 동안 60강을 완강했다. (30강을 2회독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그녀의 강의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는 그 시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고 일어나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지만,
오늘은 또 어떤 걸 배우게 될까 매일매일이 흥분되었다.
아란쌤의 강의가 웬만한 코미디 프로보다 재밌어서 모두가 다 자고 있는 새벽에 육성을 뿜어내면 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복습을 하다가도 아란쌤의 강의를 생각하면 혼자 실실 웃고,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그냥 그녀의 수업을 들으며 항상 내가 했던 생각은,
'하루 종일 영어 공부만 하고 살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왜 이제야 나는 아란쌤을 만난 걸까!'
아침 8시 30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아란쌤수업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냥 영어가 좋았다.
회화 줘 패기 강의를 완강하고 문법 줘 패기 60강을 또 들었다.
영어가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의 영어는 아직도 많이 부족했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1년 반을 새벽 4시에 일어나 계속 강의를 듣고 또 들으며 복습을 했다.
결론적으로 내 영어 실력은?
영어가 참 많이 늘긴 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가.... 싶었던 "소리"에서
이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되니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붙었다.
아이들 담임선생님들과 상담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인 친구들과 메시지도 번역기 없이 주고받게 되었다. 시끄러운 파티 공간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하는 말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스몰토크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처음 만난 원어민 앞에서 여전히 긴장된다.
그런데 내가 1년 반 동안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성장했는데 앞으로 3년을 더 투자한다면
3년 후에 나는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흥분이 된다.
그렇다면 5년 뒤에는?
내 나이 40,
5년 뒤에 유창하게 영어를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해외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혼자 공부하는 이 시간은 나의 힐링 시간이 되었다.
그럼 된 거지 모.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