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 3일만에 목표달성
수많은 알바를 했다. 그중에 박물관 경비 알바가 있었다. 밀랍인형 박물관이었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야간 근무를 서는 것이다. CCTV 실에 앉아서 관찰하는 것이다. 새벽에는 한 바퀴씩 박물관을 돌면서 온도와 습도를 체크해야 한다. 혼자서 그 큰 박물관에 있으면 무섭다. 순찰을 돌 때 어두운 곳에서 밀랍인형들과 마주하면 소름 돋는다. 밀랍인형들은 정말 사람같이 생겼다.
박물관 알바는 스케줄 조정이 되는 알바였다. 언제나 연기가 최우선 순위에 있었기에 스케줄 조정이 되는 알바만 했었다. 여러 알바들을 되는 스케줄에 끼워 맞추며 함께 병행했다. 박물관 CCTV 실에서 밤새도록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애썼다. 그때 처음으로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나도 이걸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이번에 <배우가 가는 길>을 제작하면서 시작부터 텀블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멤버들은 각자 생계만 챙기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가 돈을 모아서 작품을 만든다는 건 멤버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되는 것보다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다. 텀블벅이 되지 않을 경우를 계획에 넣어두었다. 우리 작품 또한 제작 여건을 고려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대부분의 무대는 연습실이다.
연습실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생각을 했다. 연습실을 협찬받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건 텀블벅을 시작하기 한 달도 전에 든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인스타로 알게 된 배우가 연습실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친구에게 무작정 찾아갔다. 기획서를 보내고 만드는 의도와 취지를 밝혔다. 그리고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 대해서 설명했다. 협찬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무형의 것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미래를 담보로 도움을 받은 것이다.
처음부터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했으나 안 됐을 때를 대비했다. 크라우드 펀딩이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텀블벅에 업로드할 예정일은 4월 1일이었다. 우리 팀을 더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들이 계획된 건 아니다. 하다 보니 필요한 것들이 더 생각났고, 본 촬영을 하기 전이지만 예고편이 있으면 더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우리는 펀딩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던 어떻게 해서든지 <배우가 가는 길>을 완성할 것이고, 그렇다면 포스터 또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포스터 회의를 하고 우리의 메시지가 포스터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마라톤이었다. 길의 의미를 담기 위해 트랙이 있는 곳을 찾았고, 마라토너처럼 각자의 프로필을 가슴팍에 달았다. 비장한 표정으로 진지함을 표현했고, 다양한 색감으로 다른 캐릭터들을 표현했다. 초록의 잔디와 파란 하늘의 대비가 조화를 이루었다. 포스터에 들어갈 카피에 대해서 생각했다.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 떠올랐고, 거기에 배우라는 키워드를 넣었다. 또한, 우리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10년" "리얼리즘" "구질구질"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그럴싸한 포스터가 완성되었다.
나는 부족하기에 늘 내 것 중에 최상의 것을 내놓으려 한다. 내가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 최상의 것과 최선이라는 것이 언제나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그 시간까지 고민한 것들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최초 계획은 100만 원이었다. 조금 욕심을 부렸다. 120만 원. 이 정도 돈이면 우리 팀 밥값과 추가적인 대관료 그리고 기타 소품비, 리워드 제작 비용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총 12화의 에피소드에 총 러닝타임 2시간 가까이 되는 분량을 120만 원으로 찍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우리 팀 내에서 제작하는 것이기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가능한 것이다. 배우들이 모든 스탭적인 것까지 감당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목요일에 업로드를 하고, 토요일인 어제 저녁 9시경. 1,270,000원으로 펀딩이 성공했다. 올린 지 3일 만에 127만 원이 모인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해했는지, 텀블벅에 펀딩을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될 거라는 확신보다는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란 불안이 더 올라왔다. 물론, 지인분들께서 다 해주셨다.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친구 아시는 분들이 모아주셨다. 67만 원이 모였을 때 신영준 박사님께서 한 번에 60만 원을 해주셨다. 우리 팀 최고 후원금은 10만 원이다. 그런데 한 번에 60만 원을 해주셨다. 처음 이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스케일이 남다른 분이시다. 신영준 박사님은 작가이시면서,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다. 2017년도에 박사님께 멘토링을 받았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작품을 잘 찍어서 신영준 박사님을 찾아갈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시고 엄청난 금액을 후원해 주셨다. 박사님이 늘 말씀하신 것이 있다. 운은 통제할 수 없지만, 자신은 누군가에게 운이 되어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번 나의 텀블벅에서 신영준 박사님은 계획에 없었고, 박사님의 말처럼 박사님은 나에게 운이 되었다. 100%가 넘은 펀딩은 나를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촬영이 4일 남았다. 난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할 것이고, 최고의 퀄리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절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일당백 하는 우리 멤버들, 그리고 공간 협찬해주는 대표님,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을 절대로 잊지 않고, 다 갚아나가면서 살아야 한다. 일단, 좋은 작품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