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가는 길
몽타주
대학로 극장들의 간판. 거리.
각자 대학로 거리를 걷고 있는 태풍, 서진, 덕재, 덕희, 이현 그리고 지영.
태풍 연극 포스터들을 본다. 서진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덕재, 이현 마로니에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덕희 식당 앞에서 서성이다 계좌를 확인한다. 잔액 5만원.
지영 옷 가게 앞에서 옷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 곳에서 만나는 이들, 함께 걸어간다.
타이틀 “배우가 가는 길”
침대에 누워 있는 서진.
NA.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배우인가? 백수인가? 알바인가? 나는 누구인가?
눈을 떠서 생각하는 서진.
NA.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잠드는 서진.
태풍, 덕재, 덕희, 지영이 모여서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자책을 하며 들어오는 서진.
서진 : 내가 쓰레기지. 내가 미친놈이야. 아 요즘에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죄송합니다.
지영 : 오빠 왔어요?
태풍 : 괜찮아. 늦을 수도 있지 뭐.
서진 : 맞아요. 집이 머니깐 그럴 수도 있죠.
태풍 : 어?
서진 : 네?
태풍 : 어?
서진 : 아. 죄송합니다.
태풍 : 다음부터 안 늦으면 되지. 늦으면 죽여버려.
서진 : 네. 죄송합니다.
지영 : 우리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서진 : 뭘 어떻게 해요? 그냥 해야지.
덕희 : 뭘 그냥해?
서진 : 연기.
덕희 : 계속 해왔잖아.
서진 : 계속 해왔지.
덕희 : 그럼 뭔가 나아져야지.
서진 : 나아졌잖아.
덕희 : 뭐가 나아졌는데?
서진 : 그르게? 뭐가 나아졌지?
태풍 : 그래. 언제까지 알바만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뭔가 변화가 필요해.
덕재 : 맞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태풍 : 그래. 그럼. 우리 무언가를 하자.
서진 : 무언가를 할까요?
태풍 : 뭐든지.
서진 : 그게 뭔데요?
지영 :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오늘 모인거 아니예요?
서진 : 그렇지. (갑자기 연기톤으로) 전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습니다!
덕희 : 맞아. 더 이상 그지 처럼 살 수 없어!!
덕재 : 맞아요!!
태풍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서진 : 그러게요!!!
덕희 : 뭘 하지?
지영 : 연기를 잘 해야지.
덕희 : 연기를 잘하면 나아지나?
덕재 : 그럼. 잘해야지 나아지지. 못 하는데 어떻게 나아져?
덕희 :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데요?
덕재 : 잘하기 위해선 연습을 해야지.
덕희 : 연습을 하면 나아지나?
덕재 : 그럼 연습을 안 하고 연기가 나아지냐?
서진 : 잘하는 연기가 뭔데?
덕재 : 잘하는 연기? 잘하는 연기는 보는 사람들이.. 잘한다하면 그게 잘하는 연기죠.
서진 : 그러니깐 그게 뭐냐고?
태풍 : 아우. 연기를 10년 한 새끼들이 아직까지 그거에 대해서 정의를 못 내렸어?
서진 : 아니. 잘하는 연기가 어떤건지 알아야지. 연기를 잘 하든가 말든가 하잖아요. 형님은 잘 하는 연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태풍 : 어? 잘하는 연기란 말이지..
서진 : (지영이한테) 너는 잘하는 연기가 뭐라고 생각해?
지영 : 갑자기? 나한테?
서진 : 아니. 그렇잖아. 다 잘하는 연기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연기란게 어느 정도 이상이 된다면 취향이잖아. 송강호가 잘해? 이병헌이 잘해? 점수로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태풍 : 듣다보니 그러네. 역시 서진이 너. (최고)
서진 승리의 브이를 들어올린다.
덕희 : 그럼. 형이 생각하는 잘하는 연기는 뭔데?
서진 :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
지영 : 오빠.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연기는.... 잘하는 연기는... 장르와 대본에 따라 다른 거 같애.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다. 잘하는 연기는 뭔지 모르겠지만,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유연성? 빠른 판단력? 아 이런 거는 기본기가 장착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덕희 : 유연성과 기본기가 장착되면 연기를 잘하게 되나?
덕재 :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표현력이 있어야지. 표현을 할 때는 리듬과 템포가 중요해. 줬다 뺐다 할 줄 알아야지. 아, 또 잘 들어야 한다. 상대방한테 집중해야 돼.
태풍 : 뭐 잘 하는 연기 별 거 없어. 감독이 오케이하면 잘하는 연기인거여.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연기는 이론이 아니야. 연기는 실전이라고. 현장에 많이 나가고, 촬영 많이 하다보면 감이 오고 잘할 수 밖에 없어.
지영 : 맞아요. 현장에 많이 나가고, 촬영을 많이 하면 연기를 못 하는게 이상한거죠.
서진 : 아 맞네. 현장에 많이 나가고, 촬영을 많이 하고, 감독한테 오케이 소리 듣는 거.
덕재 : 아 맞네. 감독한테 오케이 소리 듣는 거......... 하고 싶다.
서진 : 캐스팅이 되야지 뭐 연기를 잘 하든가. 오케이 소리를 듣든가 하지. 맨날 방구석에서 혼자 연습하고!!!!
(연기톤으로)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태풍 : 너 미쳤나?
서진 :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지요.
태풍 : 그건 그래.
태풍 갑자기 미친 듯이 웃는다.
서진, 덕희, 덕재 태풍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태풍 갑자기 웃음을 뚝.
태풍 : 나도 그냥 한번 미친 척 해봤어.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갈 수 없으니. 캬캬캬캬캬
덕희 특유의 웃음으로 웃는다. 덕재 따라 웃고, 서진도 웃는다.
지영은 이 넷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오랜 시간 웃는다. 점점 웃음이 잦아든다.
서로 쳐다보는 넷. 어이가 없다.
서진 : 그런데 저는 진짜 괜찮아요.
태풍 : 뭐가?
서진 : 그냥. 다 괜찮아요.
지영 :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요.
덕희 : 형도 그래? 나도 괜찮아.
지영 : 덕희야. 너도.
태풍 : 그러니깐 뭐가 괜찮냐고?
서진 : 와이 낫 슈얼 그냥 다 괜찮아요. (주문 외우듯이) 나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 (갑자기 물구나무를 서는 서진) 나는 괜찮다.
덕희 서진 물구나무 서는 걸 따라하려다 안 된다. 매우 자연스럽게 눕는다.
덕희 : 나도 다 괜찮아요. 돈만 없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잠도 많이 자고, 뭐, 잠도 많이 자고, 잠만 많이 자는 거 같애. 촬영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깐 정기적인 알바는 잡을 수도 없고,
서진 : (계속물구나무) 매끼를 라면으로 때우지만 괜찮아.
태풍 : 그래? 그럼. 나도 괜찮아.
서진 : 나아질거예요.
덕재 : (실성 웃음)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영 : 다들 미친 거 같아요.
서진, 덕희 옆에 누워있다.
태풍 : 우리가 미쳤지.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 캐스팅은 어떻게 되는건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연기로 먹고 살 수 있지?
덕재 : 알면 여기 있지 않죠.
서진 : 궁금해요?
지영 : 네.
서진 : 알려드려요?
태풍 : 니가 뭘 알아.
서진 : 어? 저 진짜 아는데?
덕희 : 형이 아는데 왜 여깄어?
서진 : 아는데, 이게 시간이 좀 걸려.
태풍 : 이야기 해봐.
서진 : 그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