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단 20자

20자를 외운 것 뿐인데,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by Giagraphy



20자를 외운 것 뿐인데,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고등학교 1학년, 중국어 시간.

선생님은 춘효(春曉)라는 20자의 한시를 보여주며 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중국 초등학생들이 외우는 한시였는데,

다들 자신 없어하자 선생님은 이게 수행평가라고 하셨다.

한번 도전해볼까? 하고 자신 없이 손을 들고 나섰는데,

의외로 20자의 병음이 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선생님도 놀라고 반 친구들도 놀랐다.

그리고 나도 놀랐다.


초등학생 때, 한창 유행하던 ‘황제의딸’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자주 나오는 단어를 자막과 비교해 따라하던 나였다.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건 몰랐지만, 외국어를 좋아한다는 건 그 어린 나도 알았다.


그리고 반 친구들 앞에서 20자의 한시를 완벽하게 외워냈던 날 깨달았다.

아, 나 재능이 있구나.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원래는 좋아만 했던 중국어가 너무 재밌어졌다.

나름 외국어 한다는 애들이 모인 외국어고등학교의 중국어과 70명 학생들 사이에서

다른 건 몰라도 중국어만큼은 항상 1등이었다.


1년 내내 중국어 1등이던 나를 눈여겨 보시던

원어민 선생님은 내가 2학년이 되던 해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중국 대학 가서 중문과 교수 하면 좋겠다”

선생님은 그저 지나가며 하신 말이셨을 수도 있지만,

그게 내 마음에 그대로 꽂혔다.


한국외대.

외국어를 좋아하던 내가 중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었다.

한국의 다른 대학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중국 대학을?

너무 생경한 그림이었다.


그날 밤,

인터넷으로 중국 대학들을 찾아봤다.

북경대, 복단대, 청화대…

생소한 이름들이었지만 세계에서 입지는 서울대보다 높았다.

이상하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했던 나의 목표가 말랑해졌다.


한국외대에 가서 중국어를 배우는 것과

중국에 가서 중국어로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것.

머릿속이 너무나도 맑아졌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내 세계가 확 넓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방학동안 천진의 한 대학교에서 1개월 단기 연수를 다녀왔다.

정작 배운 내용은 중국어 기초였지만,

요즘 말로 ‘한달 살기’를 하며 중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메인이었다.


처음으로 중국어로 길을 물어보고

처음으로 중국어로 밥을 주문했다.

교실에서 배운 중국어가 진짜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 중국어로도 살 수 있겠구나.


그렇게 내가 새로운 목표를 굳혀갈 때,

한창 중요하게 대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의아해 했다.

”왠 중국? 한국에서 대학 레벨 올리는게 더 낫지 않나?“

중국 대학의 세계 랭킹이 훨씬 높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 했다.

담임선생님도 내 성적으로 인서울은 충분히 가능한데

왜 굳이 포기하고 가냐며 도피성으로 치부했다.

주위에서 이해해주지 않으니 나도 흔들렸다.

안전한 길을 두고 괜한 모험일까?


그 무렵,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한비야 작가님의 ‘중국견문록’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 참 작지? 그러니까 세계를 무대로 살아야하는거야.

우리나라는 너의 주무대가 아니라 베이스캠프일 뿐이야.”


책에서 본 그 문장은 내 결정에 종지부를 찍었고,

이제 나의 무대는 더이상 한국이 아니었다.


그날,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 사람의 말이

한 문장의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