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6개월은 놀 거니까 잔소리하지 마.”
나는 귀국하자마자 엄마에게 선언했다.
2020년 7월 1일,
PCR 검사로 수없이 코를 쑤시던 파란만장했던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의 시작은 한국이었다.
6년을 일했으니, 6개월 정도는 쉬어야겠다는 보상심리였다.
스스로에게 월 200의 용돈을 이미 백수비용으로 산정해서 빼두었다.
정말로, 놀기만 할 작정이다.
2주일의 격리가 끝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탈색이었다.
아무래도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외모 관리에 대한 규정이 빡빡했다.
내 머리는 2번의 탈색을 거쳐 파스텔 핑크로 변신했다.
누드톤만 바르던 손톱도 화려한 디자인의 네일아트를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자주 보지 못 했던 오랜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해외를 떠도느라 가보지 못 한 국내 여행지들을 다녔다.
동네 모임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3개월이 지나도 백수 생활이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불안한 건 내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었다.
사실 백수기간에도 나름의 목표는 있었다.
이제 뭘 해서 먹고 살지 다음 직업을 찾아보는 거였다.
솔직히 백업 플랜은 많았다.
이미 내가 잘 하는 중국어나 영어를 살려도 되고, 승무원 경험을 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 끌리거나 재밌어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안에 나를 한정짓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밍기적거리고 누워있으면서도,
내가 뭘 잘 하고 뭘 좋아했는지 머릿속을 뒤적거렸다.
몸은 마냥 놀고 있어도 머리는 스스로를 치열하게 탐색 중이었다.
생각은 대체로 역시간 순으로 흘렀는데, 그러다 보면 까마득한 10대 시절까지 흐르곤 했다.
내가 찾는 것은 간단했다.
살면서 내가 잘 했던 것 중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꼈던 것.
그러다 반짝한 건, 중학교 수행평가였다.
나모웹에디터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거였는데,
나름대로 공책 모양의 디자인을 기획하며 꽤나 즐거웠다.
비내리는 하트라던지, 마우스 커서를 따라다니는 고양이, 눈이 아플 정도로 깜빡이는 글자들.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소스들 중에 내 홈페이지에선 뭘 보여주면 좋을지 고르고 골랐다.
당시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이런 효과들이 수두룩해야 잘 만든 홈페이지였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286 컴퓨터부터 접했던 나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것이 남들보다 익숙한 아이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타자 빨리치기 대회나 정보 검색 대회에서 손쉽게 입상하곤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또래 여자 친구들에 비해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기도 했다.
어라, 이쪽일까?
안 그래도 요즘 IT가 뜬다던데…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내게, IT업계의 다양한 직업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린 시절의 특기를 살려 검색에 돌입했고,
최종적으로 데이터 분석과 프론트엔드 개발을 후보로 올렸다.
마침 동네모임에 앱 기획을 하는 동생이 있어서 조언을 구했다.
동생이 보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에는 프론트엔드 개발이 잘 맞을거라고 했다.
취업 면에서도 데이터 분석은 고학력 전공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백수 5개월차에 국비학원 프론트엔드 개발자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갑자기 개발을 한다고?”
같이 한국으로 귀국한 옛 승무원 동기들은 깜짝 놀랐다.
영어유치원 교사, 비서, 해외마케팅, vip 의전…
다들 승무원 경력을 인정 받아 이미 미드레벨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우리 이제 32살이야”
다른 한국 친구들과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5개월 째 놀고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 했는데,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니 놀랄만도 하지.
게다가 새로 무언가를 배우고 쌩신입으로 바닥부터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했다.
승무원 출신 비전공 개발자.
쌩뚱맞지만 그 타이틀에 나는 꽤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