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풀코스만 다섯 번째

by Giagraphy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새벽,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행렬 대신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8차선 도로를 점령한 사람들이 있다.
퇴근길 2호선 지하철마냥 빽빽하게 서 있는데,
3월이라는 계절과 달리 그들의 옷차림은 수상할 정도로 가볍다.
차도와 인도를 분리해 둔 펜스 너머로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카메라와 다양한 응원도구에 피켓까지 들고 패딩을 껴입고 선 사람들이 보인다.
광화문의 높다란 건물에 걸린 커다란 전광판이 이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외친다.
“2026년 서울마라톤, A그룹 출발합니다. 5, 4, 3, 2, 1, 출발!”

서울마라톤만 올해로 벌써 2년째 참가이다.
초등학교 때 100미터 달리기도 싫어하던 내가, 풀코스 마라톤을 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니던 회사의 업무량이 과도하게 많았고, 사람도 너무 힘들었다.
지인의 권유로 별생각 없이 들어간 러닝크루가 큰 위안이 되었고,
잘 뛰지도, 오래 뛰지도, 빠르게 뛰지도 못했지만,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힘든 회사 생활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3km밖에 못 뛰던 내가 어느새 5km까지 뛸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보다 러닝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무렵,
같이 뛰던 사람들이 ‘동마’를 나간다고 하길래,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단어, ‘마라톤’을 구경하러 갔다.
풀코스 피니시 라인 앞에서 크루의 깃발을 들고 누군가의 마지막 195미터를 수도 없이 보았다.
막연히 힘들 거라고만 생각했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정말로,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분명, 고문이라도 당하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눈물을 훔치며 걸어오는 사람도,

100미터를 남기고 다리에 쥐가 나 한 걸음도 못 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펜스를 끼고 선 모든 응원단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달려와 사진을 찍으며 가는 사람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성성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커다란 풍선을 메고 완주하는 모습도 보았다.
자신의 목표기록까지 10초도 안 남았는데,
마치 우승골 넣은 축구 선수처럼 세레모니를 하며 그 마지막 순간을 즐기는 사람을 보았다.
단 몇 초 차이로 목표한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세레모니 하던 그 찰나를 위해 42킬로미터를 달려왔다고 했다.

마라톤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었다.
그 후 나는 10킬로미터 레이스, 하프 마라톤을 차근차근 도전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접한 그 ‘동마’를 직접 뛰었다.
인생 첫 풀코스 마라톤이었다.

도파민.
날씨가 가장 좋은 봄과 가을,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잎, 그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평소엔 차로만 다니던 아스팔트 도로 위를 내 두 발로 뛰어 지나가는 그 순간.
빠르게, 내가 목표한 속도로 달리는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그 풍경을 마음껏 즐기는 것.
그게 너무 행복했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가히 인생 최고의 쾌락이었다.

나의 4시간 16분이 내내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 손가락이 꽁꽁 얼어 에너지젤도 뜯지 못하던 순간이 있었고,
처음 겪는 골반 통증에 잔뜩 찌푸린 채 허리 숙여 걸어가던 순간도 있었다.
신발이 젖어 대회 초반부터 엄지발가락은 잔뜩 쓸려 한 걸음 한 걸음이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죽을 만큼 힘들 때마다 나타난 크루 깃발과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계속 뛰게 했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생전 초면인 나에게 힘내라고 레몬을 쥐어주기도 하고,
뭐가 필요하냐며 일단 파스부터 뿌려주며 응원해 주었다.

온 힘을 다해 42.195킬로미터를 뛰어내고 피니시 라인을 지나왔다.
겨울 내내 함께 훈련을 도와준 지인이 자원봉사팀 리더로 내 목에 완주 메달을 걸어주었을 때,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 첫 풀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쥐어짜 냈던 훈련들.
첫 ‘도전’이라는 부담감과 긴장, 그리고 설렘.
그제서야 몰려오는 온몸의 고통들까지.
모든 게 한데 섞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장 큰 감정은 역시나, 즐거움이었다.

첫 풀마라톤을 경험하고 탄력을 받은 나는 울릉도마라톤, 춘천마라톤에 이어 상해마라톤까지 완주해 버렸다.
기록보다 그 코스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실컷 즐겨보고 나니, 돌아오는 봄에는 나의 ‘처음’이었던 그 서울마라톤에서
4시간이라는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기록에 욕심이 생겼다.

당찬 포부로 혼자서 겨울 훈련을 시작한 지 한 달,
출근하던 길에 후진 차량이 나를 보지 못하고 부딪혀버렸다.
부딪힌 부위는 멍이 들었고, 병원에서는 2주 정도는 운동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혹여나 그동안 해온 훈련이 물거품이 될까 걱정하며 2주를 보내고,
이제 조금 뛰어볼까 하던 찰나에 뭔가를 잘못 밟아 발뒤꿈치에 이물질이 박혔다.
그렇게 전혀 뛰지 못한 채로 1월이 지나갔다.
다시 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2월, 동마가 고작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대회 직전까지 올해 약 세 달 동안 겨우 175킬로미터를 뛰었다.
작년엔 한 달 동안 200킬로미터를 뛰었는데…
불안했다.
이미 4시간이라는 목표는 물 건너갔다.
병원에서도 완주를 걱정했다.
아니, 어떻게든 완주를 하더라도, 그 후 망가질 내 몸을 걱정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뛰지 못했어도, 내 겨울은 온통 오늘을 위해 보냈다.
아프지만 말자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웃으며 완주하자고 다짐했다.

서울의 풍경과 응원, 그리고 매 코스마다 눈에 선명한 작년의 나.
나는 여전히 그 모든 순간을 즐겼다.
힘들 때면, 페이스를 대폭 낮추고, 호흡과 발걸음에 신경 썼다.
체력이 성치 않은 만큼 최대한 효율적으로 몸을 움직여보려 노력했다.
내 케이던스에 맞춘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그 박자에 맞춰 움직이려고 했다.
결국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양쪽 엄지발톱은 모두 멍이 들었고, 피물집도 커다랗게 잡혔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하루 이틀 지나니 엉덩이의 근육통만 남았다.
생각보다 잘 뛰어냈다는 의사 선생님의 얘기에 서브 4를 한 것보다(물론 안 해봤지만) 기뻤다.

왜 그렇게까지 뛰는 거야?
가족들도, 회사 사람들도,
아니, 러너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까지 뛰는 걸까?
나도 아직 답을 잘 모르겠다.
다만,

참가했던 모든 대회의 사진과 영상 속 내 모습은 항상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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