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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Jan 11. 2021

<자기 결정> - 페터 비에리

우울증을 위한 책 - 1

나는 우울증 환자의 입장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자기 인식은 왜 값진 것인가?'에 대한 한 가지 이유로 '우리의 삶과 감정이 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실제로 불현듯 내가 선택한 삶이,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이 실은 나와 맞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느꼈을 때 우울증과 가까워져 있었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 관해 결정하는 것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결정'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 중 '자신을 말로 표현하기' 그리고 '시간을 이야기하기'에 대한 내용이 있다.

- 자신에 관해 결정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 관해 방향을 정하고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된다.
- 기억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우리는 기억의 힘없는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 자기 결정적 존재가 되려면 일단 이해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즉 기억이 휘두르는 힘과 끈질김을 우리의 정신적 정체성의 표현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나면, 기억은 더 이상 외부 이물질이 아니게 되어 적군으로서의 공격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작년 겨울에 몇 개월가량의 정신과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일종의 수기를 썼다. 그것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몰두하기 위한 행위였다. 잊어버리고 덮어버리고 싶던 과거와 나조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함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나는 이미 내가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증상이 심할 때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 이외에는 극복할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나도 모르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나의 성향이나 가치관들이 실은 주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세뇌된 것이라는 것, 사회적인 인식 속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후에도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실질적으로 치료에 임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쌓아온 모든 관념들을 나름대로 헤집어내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항우울제는 일시적으로 나의 감정을 통제하게 도와주고, 나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만으로 타인의 시선을 모두 견뎌낼 만큼의 자기 인식, 더 나아가 자기 존중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나는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한, 나름대로 예민하고 우울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것은 항우울제는 해주지 못하는 일들을 해줬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던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 수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예를 들면 정신과 의사가 쓴 우울증 치료기 등은 내가 나를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타인이 자기 결정의 삶으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나 또한 나의 삶을 조망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잠에서 깨어나는, 교양을 쌓는다는 것과 비슷한 것일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모습을 비춰봄과 동시에 얼마 전에 읽은 <완벽한 아이>의 어린 모드의 모습들이 머릿속에 몇번이고 스쳤다. 자기 결정은 외적으로 해석하면 행동의 자유를 뜻한다. 모드는 자기 결정의 과정을 통해서 결국엔 철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경우엔 외부의 어떤 원인보다는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드처럼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책의 내용처럼 이유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다. 걷다가 걷는 이유를 잊어버리면 일단 멈추게 된다. 나도 그렇게 한참을 멈추어 서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언젠가 한 번은 겪는 일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이 진정으로 값진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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