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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Feb 25. 2021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우리 동네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노란 버스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끔창밖을 보면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같이 하원을 하는 어린이의 모습, 때론 할머니와 함께 등교를 하는 소녀의 모습을 훔쳐볼 때가 있다. 운이 좋으면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쑥스러워 엄마 품에 기대어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는 아이도 있지만, 인사를 하고 싶어 적당한 거리가 맞추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이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한 손을 들고 '안녕?' 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어린이가, 어린아이일수록 대하기가 어렵다.

    평소에 나는 어린이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적은 사람에 속하지만, 십여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로부터 가끔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 일에든 진심이다. 책을 한 장 넘길 때에도, 갑자기 생각난 노래를 제멋대로 가사로 부르는 때에도, 한 가지에 푹 빠져있다. 도저히 어른이 낄 틈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내가 보기에는 사소한 일들에 울고 불고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결국엔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이가 들어서 가장 서글픈 것은 나 자신에게 조차도 솔직할 수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아이들의 순수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작가님의 깊은 통찰에 허가 찔리는 기분으로 읽었다. 너무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을 보면 눈물이 나듯이, 책을 읽으며 자꾸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나도 이런 순수한 시절이 있었던 걸까. 믿기지 않으면서도 나는 이제 그 시절로 절대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어린이'가 있는 한, 우리도 그 곁을 지키고 맴돌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존하고 또 그 힘으로 어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졌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영화 같은 장면이 있다. 어느 가을 오후, 적당한 햇빛과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완벽한 날씨였다.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도 않았다. 나는 종점을 향해 달리는 버스의 마지막 손님으로 앉아 있었다. 사 차선 도로 신호등 앞에서 버스가 멈추어 섰다. 맞은편 차로에 있는 차들도 일렬로 신호에 맞추어 멈추어 서있었다.

    그때 머리가 곱슬곱슬한 남자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몸만 한 빨간 책가방을 매고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은 채 지나갔다. 적당한 햇빛이 비추었다. 바람마저 어린이가 길을 건너기를 기다려주었다. 세상 모두가 무사히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숨을 참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이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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