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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by 지아나

고등학생일 때, 엄마와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인생 일장춘몽.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지.”


나는 꿈이 없었다. 그리고 웃음도 없었다. 굴러가는 낙엽 잎만 봐도 까르르한다는 나이에 나는 늘 인생은 고행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또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에도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늘 외로웠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난 만성 우울증을 십 대 때부터 앓았던 거구나 싶어졌다.

어리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나는 세상에 흑백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고 살았다. 이맘때쯤 피는 벚꽃나무를 보며 버스 창가에서 교복을 입고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울고 있었다.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꽃잎이 너무 아름다워 서였다.

삼십 대 중반인 지금은 벚꽃을 보며 설렘이 느껴지고 자꾸 웃음이 난다. 걸음도 총총거린다. 얼핏 열일곱 살의 내가 더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삶의 공허함을 깨닫는 게 아닌, 인생의 소중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을 안다는 것이라는 걸,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답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P.143)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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