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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Sep 05. 2019

폭풍전야, 조국을 생각한다

- 계룡산쪽에 비친 한성 풍경  2

오늘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었습니다. 

그가 우익이냐? 좌익이냐? 그게 비하인드 뉴스 첫 제목으로 떠올랐고요....


그와 나는 하나도 상관 없습니다.

다만 도입부의 후크로, 잠시 그를 등장시켜 본 정도입니다.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극좌, 어떤 면에서는 극심한 보수입니다.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지녀온 생각은 <어쨌든_변화해야_한다>입니다. 

내일 링링이 온다는데, 내심 이런 자연계의 변화까지도 반깁니다. 

극심한 격랑(激浪)이 해저2만리 심해수들을 발칵 뒤집어놓는다는, 속칭 물갈이를 기대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서도 여간해서는 나의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특히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오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예외도 있습니다.

한번은 안희정을, 일전에는 조국에 대하여.... 사진 없이 글만 내리줄창 써서 올렸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절절한 마음을 적어 보았습니다. 

장문 속에 엄호사격(掩護射擊)이나 묵시적 응원 같은 내용이 아니 들어갈 리 없었겠지요. 

후루룩~ 정신 없이 내리 쓰고는 잊었습니다. 

아니, 잊으려 짐짓 애썼겠지요.  


그런데 오늘 오전 SNS도 못하고, 신문이라면 종이신문밖에 모르는 분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런 글을 보내도 될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보내보시지요!”


사회적 공기(公器)인 신문은 사견(私見)을 그대로 올리기 어려운 측면이 엄존합니다. 쌍방향 열차가 한 선로 위를 한치의 양보 없이 브레이크 풀어놓은 채 돌진하는 시점에서, 나는 이 분의 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내 생각이 미친 곳이란 여기, 브런치였습니다. 속세와는 비교적 무관한 널럴 분위기의 브런치에 현실상 예민하고 급박한 글은 덜 어울리겠다 직감하지만, 이 또한 독자의 몫이요 판단이라고 봅니다. 괜찮다 싶으면 생명력을 지닐 것이고, 아니라면 자동폐기될 터이니까요~~~


이제 조국 판정은 내일 저녁이면 Y / N 둘 중 하나로 결판이 날, 이래 저래 폭풍 전야의 고요입니다. 내일 저녁이면 퇴색해 버릴지 모를 아래의 글 두 편!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려봅니다...........


https://www.facebook.com/2.jean.0/posts/2898318663572397


#조국, 당신 혼자서 가라


8월 29일

829 팔리구

우리 나라가 팔리구 만 날

쪽바리들에게 쪽팔린 경술국치~~


조국 당신이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된 날,

남반도에 강진이 일면서 두 쪽 쪼개진 날


나의조국 vs. 너의조국


하루하루 앞다투어 터지는 의혹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차츰차츰 공분해가는 시민들,

이런 기세라면 폭도로까지 변하여

강남 어딘가에 있을 당신 집마저 불길에 휩쓸릴 거 같은 기세~ 기세~


난 강남좌파인 당신의 행적을 모른다.

알 수도 없고, 새삼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당신은 나긴 난 놈 같다.

"쎈 놈이 나타났다."

그래서 순식간에 구축된 연합전선!

적의 적은 순식간 동지가 되어서,

안티조국 군중은 눈덩어리처럼 불어났다.


불구경, 물구경, 쌈구경

싸움도 이런 쌈이 없다.

한 놈 잡아죽이자고 짜고들 뎀비는데

지위고하 남녀노소 동서고금이다.


언론은 본연의 업무복장으로 중무장하며, 팩트보다는 픽션으로 전투훈련중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우리 언론이 언제 이렇게 대놓고 대들었던가?

대한민국 권력 서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 손가락질하면서, 이토록 용맹무쌍했던 시절이 있기나 했었나 싶다.

골든타임 다 내주면서 굼뜨기 일쑤던 검찰도 이리 신속 칼을 빼들다니...

이래저래 역사는 휙~휙~ 새로 쓰여지는 형국이다. 1910년 829 질풍노도의 격변기같다.


조국.

일본을 향하여 "쫄지 말자" 선동했던 조국

그 "쫄지마라"를 이제는 누구를 향하여 외칠 것인가?


스스로에게다.

자기 최면이나 팬클럽 같은 응원을 힘입어서 외치면, 이내 꼬꾸라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깊이와 역사적 현실 직시에서 발성해야 한다.


숨막히는 시간들을 내려놓고 그 잘생긴 얼굴로 씨익~ 하니 웃어보자.

뒤집어서, 꺼꾸로 해서 보자.

그들은 당신이라는 존재 하나가 얼마나 두렵길래, 이리도 짜고서 뎀벼드는가?

조국 당신 한 사람 잡기 위해 기득권층은 물론 서민들 위화감까지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들 머리가 당신보다 좋은지, 그 약발들은 지금도 잘도 먹혀간다.


당신 가족에 이어서, 이제는 당신 본체가 먹힐 차례이다.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소시민의 하나로서 고민해본 답 = [무쏘의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래야만 한다.


이제껏 누려왔던 청와대 그늘로는 어림없다.

등산객이 발로 한번 차버리면 날아가는 산버섯의 그늘은 눈길 주지 마라.

깊은 산속, 코끼리들이 오직 홀로 들어가는 곳

그리하여 상아무덤을 이루는 곳.


상아는 무소의 뿔보다 더 비쌀 거 같지 않은가~

설령 죽게 되더라도, 그 무덤에서 장렬하게 산화하라.

그게, 조국답지 않겠는가?


[사족]

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당신과 출신이 다르다.

우리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고 <쌩일 징그러우니....> 자식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먼 친척이기도 했던 지주는 내 원망의 대상이었다.

북조선보다 더한 주적이었다.


그래서 권력층과 기득권자들이 싫었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날 내가 큰 집을 가졌을 때, 지주집안의 자녀들(실은 내 친척들) 작은집을 보면서 통쾌했다.

"양반집안? 그거 별것도 아니구먼!" 속물근성은 쾌재를 부르게 했다.


작년에 #미스터_션샤인 보면서, 나는 여전히 애기씨 편이었다.

양반집 규수, 그녀를 흠모까지 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천민출신 시한폭탄 구동매처럼....


내 속에 남아 있는 길고도 쓴 뿌리는, 이제는 뻗어가는 그대로, 그냥 냅싸두기로 했다.

냉엄한 정글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엄존하는 현실이기에.


핸섬의 극치라는 조국 당신의 젊은 시절 사진 보면서 야릇했다.

"어, 그때 그 시절 나보다 못 생겼잖아?ㅎ"

요즘 일본외무상 면상 볼 때마다, 그리고 극우인사들 볼 때마다... "아니, 저렇게 못 생긴 것들이 현대사를 좌지우지하다니?"


이런 유치찬란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사, 도찐개찐이어서다. 도긴개긴


특정 인간을 작정하고 턴다면, 흙먼지 폴폴이다.

일망타진, 너 나 할 거 없이 죄다 걸려든다.

그녀에게 짱돌 던지려 했던 깨끗인간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다 똥묻은 개판이다.

이런 때, 이전투구에서 가끔은 멋진 놈 하나씩 등판한다.

내가 살면서 잘못되거나 과했던 것들을, 깔끔 인정하는 놈!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해대는 놈!


<조국, 혼자서 가라>

벙어리 냉가슴 상당수가, 덜떨어졌다는 원숭이 못잖은 구곡간장(九曲肝腸)이다.

난 당신 때문에 더 이상 가슴 쓸어내리고 싶지 않다.


<조국, 그 고독한 길을 이제는 혼자서 가라>

필요하면 일가친척 가족도 밟고서 가라.


그리하다 실험우주선처럼 장렬 산화하든지

그토록 갈망하는 달천지에 이르든지..


다만 우주가 허하여 토끼가 방아찧는 그곳 달하거든

그대가 공부했다는 법의 여신상 저울을 높이 들라.


한 손에는 포청천의 작두로 나같은 말종들 싹쓰리하고

한 손으론 "과부와 고아 돌보라"는 성현의 말씀 떠받들라.

지금껏 딸에게 자애로운 아비가 되었듯, 이제는 그 자애를 바깥으로 흘러넘치게 하라.


정의의 여신이 걸어나온들 구하지 못할 세상ㅜ

누군가는 총 맞아 아직도 그 피를 먹어야 할 세상ㅠ

그래도 당신 같은 인간이 나서서 환한 길 향해 한 발짜욱이라도 진군....

진보해주면 좋겠다.

참 좋겠다.....


- 계룡산자락 옆에서 정도령 출몰 기다리건만, 오라는 그 총각은 아니 오고,

온몸에 살맞아 만신창이된 짐승만을 보게 되는 촌것  #이지녕





이어서 싣는 다음 글은, 계룡산 어느 골짜기에서 조각하시는 김용수 님의 글입니다.
이분이 누구인지 검색 들어가기 전, 백지 상태에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응당 이분의 글이 앞장서야겠지만, 가독상 시간순으로 올립니다.)



부엉이 눈과 시민의식


1-

해직기자였던 전 KBS 사장 정연주는 한 기고에서 “우리 언론은 영혼이 증발해버렸다.”고 토로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관한 11시간의 기자 간담회를 지켜보면서 왜 ‘기레기’ 소리가 나오고, 기자를 천직으로 알던 언론인의 탄식이 있게 되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옛 선조들은 ‘말’을 천금처럼 여겼다. 바른 말 한 마디와 생명을 맞바꿀 만큼,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리던 선비들의 올 곧은 그 기개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그 흔한 지식인의 책무쯤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의 1차 덕목은 사실 확인에 있을 것이다. 이 전제가 성립해야 그 바탕 위에서 어떤 가치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조국 후보자에 관한 수 없는 왜곡과 억측을 쏟아내고도, 법무장관후보자의 모든 해명은 거짓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반복 질문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우리 언론의 장래가 걱정되고 섬찟 무섭기까지 했다. 물론 년차가 낮은 현장의 기자들이 데스크 영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토록 많은 기자가 그 오만한 태도와 달리 날선 질문 하나 없었다는 것은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여론의 첨병이다. 전장의 최선봉에서 적의 동태를 탐지하는 첨병의 오판은 전 부대원의 생명을 앗을 수 있듯이, 만약 기자들이 의혹을 해소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명이 없다면, 언론인은 도리어 나라의 해악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대내외로 어려운 시기에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그에 버금가는 보도를 쏟아냄으로써 혼란은 가중되고 있으나, 종국에 그 기사들이 도리어 자기 목을 칠 수 있다는 뼈아픈 각성이 있어야 한다. 


언론의 이러한 실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발견한 희망은, 조국 법무장관후보자를 재발견했다는 점이다. 정작 후보자 검증보다 지엽적인 질문들로 점철된 11시간을 초지일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히 성실하게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우리도 이런 인물 하나 쯤 나 올 때가 됐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모와는 달리 그 내공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노회찬을 잃고 상심이 컸는데, 그 마음을 상쇄할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한 스승은 말했다. “역사는 그 역사를 아는 자의 몫이다.”

조국은 말했다. ‘고통스럽다고 물러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2-


해방 후 과연 우리 정치는 어떠했었던가? 조선 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고 키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될 성 싶은 인재는 아예 그 싹부터 자른다.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국가의 폭력은 날로 거셌고 그 폭력에 사라진 무고한 원혼들이 허공을 맴돌아도, 정의와 인도와 동포애를 선포한 3·1정신을 이어받은 헌법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었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요, 국민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 과도한 국가 폭력에 맞서 깨어있는 민중들이 생명을 저며 얻은 단심(丹心)의 꽃과 같으나, 아직 영글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혁명에서 보듯이 그 반동은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감시하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타락한 권력은 자기 속살을 감추기 위하여 국민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참혹한 일을 또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의와 인도와 동포애를 가슴에 품은 훌륭한 인품을 찾아 나라를 맡길 수 있다.


이 지점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야 한다. 진실이란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 확인 없이 떠다니는 말들에 휘말릴수록 갈등은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수렁에 빠져든다. 이는 불순한 사람들이 노리는 바다. 그들은 언제나 자유를 말하면서 자유를 억압해 왔고,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민을 섬길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방편으로 삼았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평가는 어려운 데 있지 않다. 그 사람의 일상이 평가의 잣대다. 조국 장관후보자는 평생 차가운 법을 연구한 사람이지만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그의 행적과 눈은 늘 사회적 정의와 인도에 초점을 맞춘 삶의 궤적이 이를 대변해준다. 그가 민정수석이었을 때 여느 정부수석처럼 권력의 칼을 남용하지 않았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문대통령이 그 자리에 조국후보자를 발탁했었다는 것은, 그 인물됨이 권력 남용과 거리가 먼 철학의 소유자임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보내는 모든 메시지는 민족의 사활(死活)에 그 초점이 있다. 남이 써준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답을 찾고, 사색을 통해서 그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저 위대한 고조선의 위상을 바라보고, 핍박으로 점철된 근대사의 고통을 끊겠다는 결기가 배인 메시지다. 결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사는 겨레의 헌장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을 다시 열어, 인류 보편이념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조국 법무장관후보자는 이 뜻을 보필할 가슴이 살아 있으면서도 지혜를 겸비한 드문 인재다. 재목도 다듬어야 쓸 수 있듯이, 인물은 그냥 크지 않는다. 거목은 서리를 맞고 크는 것이다.


부엉이 눈은 어둠이 짖게 내릴수록 빛이 난다. 시국의 먹구름이 짙을수록 시민들의 빛나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지금껏 이 겨레를 가위 눌리게 만든 모든 위압을 걷어내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제 눈을 떠야 할 때다. 


2019. 9. 4. 무심산방에서 김용수(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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