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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un 27. 2022

강경에 머물며 어슬렁거리다

강경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젝트 1  <강경소요逍遙>  전시회에서

강경에서 이색적인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강경소요 江景逍遙”라는 이름으로 6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일주일간이다. 구정임,  장석주 두 작가가 참여하였다. 


이 둘이 레지던스 작가로 강경에 머무른 시간은 40일이다. 요즘 한달살기가 꽤 인기인데, 주마간산 소위 쩜찍기에 비하면 40일은 적정해 보인다. 지하수 여신을 상징하는 수 40과 강경의 금강물과도 매치될 성싶다. 이들이 거점을 두고 전시를 한 공간은 강경근대화거리가 시작되는 “스페이스 전원 Space Jeonwon”이다. 강경의 전설인 ‘전원사진관’ 자리다. 


오픈식에서 장석주 작가(좌)와 구정임 작가(그 우측)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오픈식은 6월 25일 늦은 5시에 열렸다. 이날 하객으로 참석한 조용훈 시의원은 “전원사진관 자리가 예식장을 겸했다”며 본인이 이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려 감회가 새롭다고 추억을 소환했다. 그에 앞서 축사를 한 권선옥 논산문화원장은  모교가 강경상고임을 밝히며 “고교시절 하숙집을 11번 옮겨다닌 통에 강경 구석구석 애정이 서려 있다”는 소회를 내비쳤다.


축사하는 권선옥 논산문화원장(좌)와 조용훈 시의원


강경과 금강은 강경사람에게는 익숙한 생활터나 추억으로, 젓갈방문객은 금강변 어느 소읍의 풍광으로 스쳐갈 것이다. 이 둘의 간극을, 두 작가는 얼마나 좁힐 수 있었을까? 이 행사의 공식명칭은 좀 길다. <2022 강경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젝트Ⅰ아카이브展> 프로젝트명은 “강경소요 江景逍遙”이며 주최/주관은 강경창작스튜디오 GCS, 충청남도, 충남문화재단이다. 


거창해 보이는 작업은 ‘강경여지도’라는 큰 제목과 포스터 배경지도에서 좁혀지는 듯하다. 강경지도를 그려내기 위하여 강경을 소요(逍遙), 즉 노닐면서 걷고 또 걸어다닌 것이다, 카메라와 함께.


‘2022 강경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사업’은 두 명의 사진가가 한 팀을 이루어 강(江물)과 경(景햇살)이라는 의미를 지닌 강경의 풍경과 삶을 담아냈다. 강경의 현재적 풍경 속살이랄 수 있는 구석구석을 작가 고유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구정임 작가는 금강의 물에 천착하면서 다소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관점을 드러냈다. “물과 빛과 바람이라는 3가지 자연요소를 바탕으로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했다”는 게 그녀의 자작 해설이다. 사진이라는 직설적 분위기보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세계와 철학을 풀어내려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이에 비하여 장석주 작가의 눈에 비친 강경은 다소 직설적인 감이다. 비닐하우스 꼭대기에서 징검징검 뛰어다니며 설치작업하는 남자는 논밭 평야에서 간간 보는 노동현장인데, 외지인의 앵글에 잡히고 보니 위대한 전사로 우뚝 서 보인다. 


장석주  0.5의 풍경 420mm x 590mm  archival pigement print 2022


강경여지도의 위도와 경도 


논산에서도 정기적으로 사진전이 몇 열린다. 2% 아쉽다 할 수 있는 점은, 논산다움의 결핍, 삶의 현장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 등이다. 금강변의 풍광 자체만 놓고봐도 그렇다. 탑정호, 그리고 노성천에서 출발한 물은 아호리 부근에서 합수한다. 샛강, 논산천 위에 놓여진 새다리(大橋)를 통과한 후 옥녀봉 즈음에서는 강경천까지 맞아들인 다음 금강과 한줄기가 된다. 옥녀봉에서의 조감도도 멋지지만 데보뚝(뚝방길) 상행선 하행선은 사시사철, 그야말로 별천지다. 앙증맞은 섬도 있고 철새 천국인 논산천의 둔치에서 자전거도로가 최상급이라면, 그 위 뚝방길 산책과 드라이브도 파노라마 전망대다.  


두 작가가 이런 비경까지 눈뜨게 해준 것은, 현지인에게 안겨준 덤이다. 다만 토착민에게 더 급한 것은 경제, 삶의 현장이다. 물만 이야기할 때 물의 결, 물빛(水色), 석양 등의 운치도 예술이겠지만 어쩌다가 자연산 장어도 건져내는 어업, 젓갈가공현장 같은 현장도 생활예술이리라. 


이처럼 다채로운 활동에 대한 기대감 일부는, 전시실 내부에도 이미 적혀 있다. 김소희 Curator’s Atelier49 디렉터가, 구정임 작가의 전작 작업 노트의 제목에서 참조하여 썼다는 평론을 가감없이 전재한다. 







거기 있는(있었던것들에 대하여 

 

2022 강경창작스튜디오레지던시 사업은 ‘강경여지도’라는 큰 제목 아래 두 명의 사진가가 한 팀을 이루어 ‘강경소요江景逍遙’라는 주제로 강(물)과 경(햇살)이라는 의미를 지닌 강경(江景)의 풍경과 삶을 담아내는 프로젝트이다. 2022년 상반기에는 구정임, 장석주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5월 14일에 두 작가와 만남을 가졌고 그동안 진행된 작업들을 토대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2차로 전해 받은 작업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쓴다 .  


강경(충청남도 논산시 소재)은 2017년 현재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읍으로 여느 시골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이 곳을 두 사진가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시각화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COVID-19로 너무나 오랫만에 기차를 타고 논산역으로 가면서, 다시 택시로 강경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서 창밖으로 휙휙 달아나는 가까운 사물과 고요한 먼 풍경에 시선을 교차시키며 머릿속으로는 처음 가보는 강경이라는 곳에 대해 조사한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강경은 근대 초기에는 2~3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였으며 군산, 부여, 공주 등을 연결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로 조선의 2대 포구로 불렸으며, 명절을 앞 둔 장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10만 명이나 몰려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매우 번화한 지역이었다. 


 강경이 가장 번성했던 때는 일제강점기부터라고 하는데 1910년 한일은행 건물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특히 곡창지대인 논산평야, 호남평야와 가까워 곡식 수탈이 용이하였고 서쪽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강을 통한 상거래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철도로 화물이 운송되면서 금강 수운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1960~90년대에 이루어진 국토 개발 정책,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인천과 부산이 주요 항구로 부상하면서 강경의 전성시대는 저물어져 갔다. 


구정임 작가,  바람의 그림자  가변크기  Digital print 2022


[구정임] 


구정임 작가는 특히 일제 강점기 때 거주했던 일본인들-아마도 고위층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외부에서 물을 끌어 왔다는 강경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우물가의 쓸쓸한 분위기를 찍은 사진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 외에 사람들이 떠난 빈 집과 문 닫은 다방과 구멍가게 등을 찍은 일련의 작업을 보았는데, 이제 이 곳에서 더 이상 사람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 빈 터에 무성히 웃자란 잡초를 통해 질긴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어느 도심에서나 이루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이곳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시선 또한 느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경제 활동이 쇠약해지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활기가 잃어가는 지역에 언제 도시 재활성화의 바람이 언제 불어올까.


 또한 강경에는 조선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 침례교회, 신사 참배를 거부한 강경 성결교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프랑스인 선교사제들과 함께 상륙한 곳인 나바위 성당 등 주요 성지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들도 예산부족으로 방치되어 있다. 전북 군산시의 장미동, 월명동, 신흥동 일대가 일제 강점기(1900년 초~1945년)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되새기게 하는 목적으로 근대 문화유산 거리로 조성되어 관광지로 부상된 것에 비하면 그녀의 사진 속 강경의 현재적 풍경은 우울하다고 할 것이다.


 2차 멘토링을 위하여 보내온 구정임 작가의 사진 색깔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강경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따라 물과 빛, 그리고 바람을 주목하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물과 빛과 바람이라는 3가지 자연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했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작업이 돌변했다기보다는 구정임이라는 작가가 워낙 어떤 대상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그것을 시적 언어로 이미지화해온 자기 본연의 시각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제목으로 보여준 몇 장의 사진과 작업 노트를 보면 구정임이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어느 한 도시가 쇠락해가는 현상을 사회학적인 요인과 결과로 바라보기보다는 지극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강경여지도’라는 큰 이름 아래 ‘강경소요江景逍遙’프로젝트를 위한 그녀의 느린 산보(逍遙)는 강(물)과 경(볕)의 일차적인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더 너른 반경-강경의 역사적 시,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장소를 통해 자기의 심리적 공간을 확장하는-을 둘러볼 것을 당부하고 싶다. 



 
 [장석주] 

장석주 작가가 보여준 첫 작업들은 강경의 현재적 풍경의 속살이라고 할 수 있을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그는 도심의 안과 밖을, 건물의 내, 외부를 오가며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대상을 바라보았는데 이러한 작가의 시선이 양가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우선 주목할 점이다. H빔 골조로 세워진 (내)벽에 가로지르는 철골 구조나, 각종 벽 앞에 방치된 건축 자재나 잡동사니를 모아둔 덩어리들은 지나가다 무심하게 찍은 사실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각이 반복적으로 보일 때는 작가의 관점을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둠이 내린 시간에 유독 붉은, 멈춤의 신호등과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공중전화 박스 안의 하얀 빛, 건축 중인 실내로 밀려들어오는 한낮의 역광, 꽃무늬 커튼으로 인해 은밀해진 햇살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경험으로 추억의 공간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통해 보는 장소와 공간은 낯설지만 이 푼크툼(punctum)적인 요소들이 문득 우리가 알던 과거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것이 그의 사진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빈 집의 담벼락, 세워진 철판, 비닐, 그물, 식물 등이 실제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가림막이나 벽의 의미로 화면의 중앙에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문이 달리기 전의 출입구이거나 창의 자리로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 경계의 이쪽과 저쪽은 쉽게 교통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느끼는 이러한 심리적인 반응은 아마도 이방인으로서 장석주가 가지는 이 장소와 공간에 대해 가진 경계의 시선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두 번째 멘토링을 위해 보내온 장석주의 작업에서 확연히 달라진 점은 모든 사진에서 작게나마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진들로 이번 전시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면 중앙에 강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사선으로 들어와 있고 그 아래 아주 작은 크기로 한 대의 차와 두 명의 사람, 콘크리트 다리에서 멀리 아래로 보이는 나무 정자에서 쉬고 있는 두 명의 사람, 비닐하우스 철골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한 사람, 공원에서 골프 연습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하는 한 사람, 우뚝 선 신축 아파트 건너편에서 홀로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 사람을 포착한 일련의 작업들이다. 사진 속의 넓은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작게 포착된 사람들의 모습은 아마도 첫 번째 연작에서처럼 이 대상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그의 태도이자, 멀리서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과 환경을 담담하게 관찰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이해된다. 
 
 이번 2022 ‘강경여지도’ 프로젝트가 사십여 일 정도의 짧은 기간을 통해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두 작가에게는 적지 않는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장소와 공간을 탐색하는 자신의 관점을 계발한다는 차원에서 강경 지역에 대한 좀 더 면밀한 자료조사가 선행되어 더 많은 작업량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바램을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김소희(Curator’s Atelier49 디렉터)


[2022 강경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젝트] 현재진행형이다. 올 상반기(5~6월) 중반기(7~8월) 하반기(9~10월) 각 2명씩 참여하며 9월말에는 민중구술기록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레지던시입주작가 최종 결과 전시는 6명이 다 함께 열리며, 그래서 올해 총 다섯 번의 전시가 진행된다. 

 

강경창작스튜디오 GCS   Ganggyeong Creation  Studio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7-2

041-745-5267  

대표 유현민 


전시실은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조명은 좀 어둡고 옛건물 운치 그대로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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