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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ul 21. 2022

“새야, 큰새야, 복상마을 한새 뉘집 곳간에 숨었니?”

- '한새마을 복숭아축제'에서 은진복상 특유의 신 조생종 맛 추억하며

숨겨진 비경(祕境)은, 이야기와 만날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거 같다. 방축리 동네길은 아름드리 노송과 함께, 자연과 어울어지는 벽화며 인적 뜨문뜨문한, 전형적인 시골길 비경이다. 방축1리부터 4리까지 구비치는 구곡양장 도중, 논산시내 쪽 가까운 곳에 ‘한새마을’이 있다. 은진면 방축3리의 자연마을 이름이다. 


그곳에서 7월 23일, 은진복숭아축제가 열린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열렸다가 긴긴 방학 후 올해가 두 번째다. 축제분위기를 띄우다 보면 음주가무로 흥겨워지기는 하지만, 자칫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방방 뜨는 경우가 있다. 이번 동네잔치 주인공은 은진복숭아니까, 복숭아 이야기에 시선 고정해 본다. 


예전에 풍미했던 은진복숭아는 약간 신 조생종의 맛이 별미였다.


은진복상만큼은 노점상을 허하노라


대한민국에서 지명도 있는 복숭아는 조치원, 좀 멀리는 장호원이다. 복숭아 홍보를 위한 축제가 인근 전주에서도 열린다. 이처럼 여타 복숭아들은 명함 내밀기 어려운 분위기다. 허나, 복숭아 하면 ‘은진복숭아’였다. 은진복숭아가 잊혀져가는 가운데, 방축리 주민들이 은진복상 시대를 열어가고자 용트림 중이다. 


은진복상은 말 그대로 은진현 곳곳에서 재배되던 논산의 특산품이었다. 은진현에도 예외 없이 향교가 세워졌다. 전국 234개 향교 중 하나인 은진향교가 자리잡은 곳은 교촌리다. '교촌치킨'할 때 그 교촌리는 향교촌인데, 예전 은진 교촌리의  대표나무는 복숭아였다. 김창중 교촌1리장은 어렸을 적 복사꽃으로 뒤덮인 마을, 복숭아밭 살구꽃들을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탄이다. 땅 좀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의 복숭아밭은 동네아이들의 서리터였다. 맛이 약간 신 은진 복숭아 조생종은, 나중에는 다육질인 타 품종들에 밀렸다. 복숭아밭이 다른 과수로 대체되거나 신품종 복숭아로 교체되기도 했지만, 은진복상은 여전한 저력이다.  


뿌리 깊은 전통이 공적으로 입증된 게 1987년이었다. 논산에 엄청난 물난리가 나면서 나랏님까지 내려오셨다. 수해 현장을 둘러보고서 상경할 때, 논산시에서는 은진복상을 진상하였다. 나랏님 입맛에 딱 맞았던지 도로교통법을 초법한 선물이 하나 하사되었다. “득안대로에서는 복숭아노점상을 허하노라” 지금도 은진면 용산리 삼남길 등에 간간 써있는 <복숭아 팔어유~> 농부서체는 정겹기만 하다. 비단길이 단 하나 아닌 여러 갈래 싸잡아 통칭하듯, 은진복상길도 삼남길, 득안대로, 방축로 등등 실핏줄이다. 


논산 "저산너머" 촬영지 중의 하나인 복숭아밭( 은진면 방축리 356)


저 산 너머복숭아밭 촬영지 한새마을


이 중 가장 활달한 복상길이 방축리길이다. 방축리에서 복숭아과수원은 1리=1, 2리=2, 3리=15가구다. 이 동네 최승규 씨는 복숭아 전업농인데, 방축1리 조규원 이장과 친구 사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조 이장은 어느새 복숭아전업농이 되었다. 방축리의 복숭아 판도는 일진일퇴다. 


김수환추기경의 어린시절 영화 『저 산 너머』 에 나오는 복숭아밭 촬영지도 방축3리다. 논산 촬영지는 일곱 곳 정도인데, 그 중 하나가 은진 복숭아밭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 추억 소환은 복숭아 서리에서도 이루어진다. 서리 하면 참외가 더 비주얼하지만, 대타는 색감있는 복숭아다. 도색(桃色) 찬란한 복상밭은 남산리에 사는 이찬주 유림협의회장 도움도 받아 방축리 쪽에서 헌팅하였다. 


확정지는 촬영차량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어서 전기 등의 촬영 협조는 동네 인가의 도움을 받았는데, 바로 이 동네가 한새마을이다. 여기 주민으로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서정희 ‘김치누리’ 대표는 동네 곳곳에 복숭아캐릭터를 장식하였다. “복숭아는 단단할 때 따야 제값을 받는데, 촬영으로 출하기를 놓쳤기 때문에 물러졌고, 그 복숭아를 우리가 50박스 구매했죠.” 촬영 장소선정 전문가인 이명훈 실장의 후일담이다. 영화 속 복숭아밭 실제 주인은 은진면 용산리에서 복숭아 노점상을 한다. 



차고도 넘치는 수원지 한새큰샘


은진 복숭아 이야기에서, 물 이야기로 흘러가 보자. 동네잔치가 열리는 방축3리 한복판에 큰 동네우물이 하나 있다. 한새큰샘이다. 방축리는 부자동네였다. 방죽이 있던 뚝방동네라서 방죽말(防築里)이라고 했다. 방(防)을 ‘덮다, 가리다’고 보아 ‘가려진 동네’라고,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지금도 잘 노출되지 않는 피난처가 방죽리다. 그러나 “** 면장할래? 방축리 이장할래?” 그 선택은 방축리였을 정도로 부촌이었다고 한다.


부자마을은 수리답을 전제로 한다. 방축리는 물 지천이다. 1~4리에 동네우물 2개씩 있었다. 대한민국 거개의 우물이 그러하듯, 이제는 메꿔져 봉인되어 있거나 마실 수 없는 고인물 일색이다. 전쟁이라도 나서 상수도에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면, 실상 그게 더 큰 난리인 형국이다. 총 8개의 우물 중 방축3리 경로당 바로 옆인 한새큰샘만은 건재하다. 지금도 온천수처럼 차고 넘치는 우물이 오가는 이들을 멈추게 하고, 갈한 입을 넉넉하게 적셔준다. 어쩌다 외지인이 찾아와서는 넘치는 물을 식수로 떠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 물들이 아까워서 아래뜰 적시기 전 윗논에다가 보를 하나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큰 우물까지 메꾸어졌다. 두 번씩이나 돌을 던져놓고 하여서..... 그래서 수량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널널 흘러넘친다. 작두샘 펌프가 들어오기 전 이 물은 100여 가구가 살던 동네의 생명수였다. 보리쌀을 씻고 남은 물은 구정물통에다 버린다. 가축을 키우는 사람은 그 통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째깍 챙겨간다. 동네에 불이라도 나면 동네사람들 다 나와서 바가지로 물을 푸지 않고 바케쓰로 바로바로 퍼날라 1급소방수로 맹활약하였다. 


가끔 사고도 생겼다. 질풍노도의 세대가 성질이 나면 밤에 술 마시고서 그 구정물을 냅따 우물 안에다가 들이붓는다. 그 다음날은 샘푸는 날이다. 여름날 애기들이 멱 감겠다고 풍덩 들어가는 날은, 그 집 아버지 혼자서 그 많은 물 다 퍼내야 했다. 보통 우물에 빙 둘러 있는 둥근 노꽝이나 돌담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어쩌다 임신한 새댁이 발을 헛디뎌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물 속에 빠져 죽은 사람은 없었다. 온천처럼 물이 솟구치니까 부력이 크게 작용해서다. 겨울에는 따신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50년 된 방축정미소는 예전 기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마을농업박물관^


대자곡大鳥谷 방축防築 한골閑洞의 한새 전설  


사람들이 많으니 늦게 가면 자리 못 차지하기 일쑤이다. 빨래우물은 식수원과 따로 떨어져 있다. 여자들의 수다가 총집결하는 곳, 그곳 역시 늦게 가면 자리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참새방아간 정보가 부족하면 소통이 부족해지던 시절.... 그 후 가가호호 작두샘을 거치더니만, 10여 년 전에는 클로르칼키(차아염소산칼슘) 냄새나는 상수도까지 쳐들어왔다. 우물가 가지 않으니 동네사람들 서로 만날 일이 차츰 줄어만 간다. 


대신, 한새큰샘 주변에는 크고 하얀 새들이 내려앉더니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박제 아닌 붙박이 조각새들이 한새 전설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한/ 새> 이 두 글자 해석은 입 달린 사람마다 제 각각이다.  한을 ‘큰’으로 봐서 큰새, 한자로는 대조(大鳥)..... 그래서 은진현 시절 이곳 지명이 대자곡(大鳥谷)이다. 은진면의 옛이름은 대자곡면, 득안.... 그래서 득안대로요, 대자곡이다. 어쨌거나 그 이름을 태동한 한새는 어떤 새였길래?


방죽말 북동쪽에 한골(閑洞)이 있었다. 한 농부가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나중에는 큰 부자가 되었다. 곡식이 많으니 새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조(閑鳥)라고 하는 새는 아예 광에다가 둥지를 틀고 곡식을 쪼아먹는 게 아닌가? 집주인은 '복을 가져다 주는 새'라며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나 어느날 광속에서 일하다가 성질이 난 머슴이 한조를 붙잡아다가 주인 앞으로 가져왔다. 주인이 만류했지만, 그 머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속 내동댕이쳐서 다들 죽여 버렸다. 그 후 그 집의 좋던 가세가 서서히 기울어져갔다. 마을까지 어려워지자 주인은 집을 떠나 팔도를 누비면서 ‘한조’를 찾아나섰다. 마침내 발견하고 잡아다가는 광속에다 넣어 키우기 시작했고, 그러자 마을에서는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새가 많이 모여 산다고 해서 마을이름에 붙어 버린 ‘한’......한골, 한조곡, 한곡방축, 한(새)실, 한샛방죽....


“우선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한새큰샘’은 마을과 시작을 같이 했으니 500년은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물이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어요. 지금도 물이 많지만, 예전에는 가뭄에도 이 물로 농사를 다 지을 수 있었다고 기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큰샘 바로 옆에는 50년 된 방앗간의 건물과 기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잘하면 축제 기간에 예전 방앗간의 진풍경을 그대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선충사’와 ‘강씨 할머니 열녀문’, 250년 된 아까시 나무가 마을 내에 있습니다....” 


건설업을 하지만 농림부 대변인 같은 김대철 이장의 입은 큰샘처럼 넘쳐흐른다. “우리 마을에서 ‘한새’라는 공동 브랜드도 추진하고 있어서 복숭아는 물론 상추, 딸기 등 농산물의 판로 걱정도 덜도록 노력중입니다. 우리 마을 복숭아는 여러 품종인데 수확기는 6월말부터 8월 말까집니다. 여기 복숭아 맛보시고 감칠맛이다 싶으면, 전화 주문도 해드려요.”(문의=김대철방축3리이장 010-5453-5376/ 서정희 김치누리대표 041-742-0128).


맑고도 넘치는 한새큰샘 주변에서 한새복숭아축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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