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라니집 오가며 구시렁댄 말들 모음
아래는, 대한추위 때부터 오늘까지 산책길에 다녀온 다음에 써본 낙서글들입니다.
중간에 들어가는 그림은 제미나이가 자청하여 간간 그려준 것들이고요....
실상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 나을 거 같아서 곁들여요~^
고라니- 낙서글 1
구루마 다닐 만한 길에
사람 하루 하나 지나간다
아니 스쳐간다
거기에 중고생 고라니 하나
자취를 한다, 갈대밭 얻어놓고
사람과는 하루 한 번 스친다
어제 아침은 포복해 있어 걍 지나쳤다
점심때는 서있었더니만 눈높이가 엇비슷
사람의 눈길이 잠시 내게로 머물렀다
이내 돌려진 고개, 사라진 안광
까짓거 그냥 서있었지 뭐!
오늘 아침도 엎드려 있는데
되집어오는 인간이 오늘따라 내 자췻방으로 쳐들어오는 소리다
튀었다, 대신 후닥딱 아닌 사뿐 가비얀 소리로
오늘 점심 때 그 인간이 또 오려나?
아니 올 리가 없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골아니 낙서시 -2
이리도 추운 날
우리 골아니는 어케 잤을까?
"이불이라도 갖다 주지 그랬어요?"
"내가 챙겨주면 튀는데 뭘?"
하나마나한 소리 뒤로 한 채 잠시 아침산으로 향발.
골바람이 없어도 골논 한가운데 냉기는 싸하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인기척이 없다, 아니 수기척이 없다, 것도 전혀.
중2 이넘, 가출이라도 한것까?
넘 추워 남쪽으로 튄 걸까?
반환점에 점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길을 버렸다.
개울물 건너, 갈대담장이 안 쳐진 골아니집 안마당쪽을 택했다.
가출했는지 아닌지 정도만이라도 가늠해보게끔.
아참, 내가 안경을 안 쓰고 나왔구나.
20미터쯤 어떤 덩치가 하나 보일똥말똥이다. 혹시 늦잠이라도 자는 그 놈이라면.....
내가 더 다가가면 튕겨져 나갈 거 같다.
가출뿐 아니라 이사갈지도 모를 판이다.
안전지대 은신처가 완전 노출됐다 판단하면 나라도 그럴 판, 하모. 이방인에게 사생활이 드러나서야.....
생전 사람 없는 골논에, 검은 옷의 마른 사내 하나 성냥깨비다.
신기하여 힐끔 보았다.
검은 나무 한 그루, 골논 따라 빨딱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만 되짚어온다.
상거 멀찌감치서 나를 보더니만 신기해하는 거 같다.
호상간 동물원 인간으로 거닌다, 가출한 고라니는 오리무중인 가운데.....
고라니연작시 -3
내가 산 빼먹는 날은 토~일
월욜은 행차하셨겠다! 짐이 지척지간 행차하시는 데, 아무런 기척 없다.
"이놈아, 아직도 자냐?"
"어른 지나가면 언능 일어나 굿모닝해야지, 굿모닝!"
"너는 중학생이 돼서도 영어도 못해? 해봐, 언능"
성화를 해본들 으씩도 않는 갈대숲.
오늘 화욜도 마찬가지다.
"너 이놈, 오늘은 내가 네 자췻방까지 쳐들어가겠어. 아니, 그냥 마실 갈게!"
허지만 꽝ㅠ 갈대밭 여기저기 둘러봐도 중2골아니는 아니 보인다.
"허~ 이 놈이 대체 어디 간것꼬? 가출해봤자 부처님 손바닥인 이 골짜기에서말야~"
그 공허한 자리를 x좌표 y좌표로 오가는 개, 중2강아지 두 마리!
어느 집에선가 사랑듬뿍 자라다 이제는 이름표 바꿔달았다. 성은 유, 이름은 기견.
말쑥하게 생긴 귀티 노랭이는 다리 하나 절면서도 잘 뛴다.
"이리 와" 소리에 올똥말똥, 그러다 제 길로 내빼버린다.
나도 개울 건넌다. 흐르는 물이라서 깨지는 얼음 식별이 만만찮다.
"어, 또 빠졌네?" 동어반복 서너 차례 하고나서야 비로소 발 뺀다.
발은 생각만큼 시립지 않다.
오디오형 귀티나는 귀마개도 벗으니 먹먹했던 세상이 쾌청해진다.
골짜기에서 업그레이드.
야트막한 산에는 길이 저절로 난다.
내 발은 양지바른 곳만 골라서 밟는다, 젖은 운동화로 밤송이 즈려밟다보면 속세다.
야생에서 순치의 경계로 넘어온다, 늑대에서 개로 분한다.
나는 순한양이다.
#골아니_산책시-4
오늘도 꽝이다. 중2골아니는 짐 싸갖고 자췻방 옮기기라도 한 모냥이당. 어제는 주변 갈대밭 이곳저곳 누벼보았지만 별무신통. 이제라도 겨울나그네 랜드로버를, 수색대로 격상시키기라도 해야려나?
세상사 억지로 되는 게 아니랬던가, 만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만나게 돼 있다든가? 신빙성이야 떨어지지만 과히 틀린 말도 아닌 성.
골아니 떠난 숲길, 나 홀로 바가본드도 좋으다. 하늘 새소리, 땅 꿩 박차오르는 소리에도 덜 깬 아침은, 백일몽 아닌, 몽유병도 아닌, 신선한 몽환길!
수풀로 쳐들어가면 발끝 눈이 작동한다. 알아서 덜 우거진 쪽으로 절로절로 걸어간다. 때론 더 우거진 가지 속으로 투림하고... 야트막한 비탈 다다르면 이젠 피부 눈 나선다. 양지쪽으로, 따신 쪽으로 내 몸 몰아간다. 파일럿 눈에는 하늘길이 보일까, 에어포켓에도 빠질까? 뱃사람 눈에는 용두사미 인어의 허릿길 보일까... 숨비소리 뿜어내는 해녀의 노동요도 들릴까
몽환 안개 걷어내고 이제는 일하러 가얀다, 배회대장 골아니가 활로 찾아 나선 것처럼. 그나마 이넘은, 깊은 밤 미드나잇에 내 방 10미터까지 와서 서성인다. 방안에서 U튜브 탐닉하는 나는, 알아차릴 리 없다. 고라니는 야행성이고 나는 야맹증이기에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