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녕 쌩글삶글 May 07. 2019

경로당에 남녀노소 어울렁~더울렁~ 그 숙제들

- 대한노인회 논산지회 광석분회 탐방

광석면은 33개의 자연부락이다. 그런데 마을 경로당은 38개이다. 동네가 넓어서 두 개인 곳도 있고, 남녀 따로 써서 그런 곳도 있다. 이제 그 중 하나 율리2리는 없어질 수도 있다.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그 동네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골마을도 조금씩 변한다. 광석면 분회가 있던 곳은, 광석중학교가 있는 이사리였다. 역대 회장들이 그쪽에서 많이 나온 것도 한 이유이다. 


그러던 것을 면소재지인 현 신당리로 이사한 것은, 현재 연임중인 최광락 분회장의 의지가 작용해서였다. 1개 읍면동 전체를  대표하는 분회경로당은 아무래도 면사무소 가까운 곳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면사무소 양쪽으로 외곽도로가 생기면서 면소재지는 이래저래 위축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땅값은 평당 50만원대 오를 대로 올라 있어서 대지 구입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그 필지가 덩치가 있어 분할해서 팔아라 설득부터 해야 했는데, 이 쉽지 않은 작업을 당시 김영태 면장과 함께 팔뚝 걷어부치고 나섰다. 구회관 매각비용 7,800만원으로는 모자라 각 마을 경로당에 100만원씩 할당하여 3천만원을 조성하였다.  


노인회관과 작은도서관 복합


2012년 건물은 행복경로당 비용으로 나온 2억과 리모델링비 5천을 몽땅 신축하는 데로 몰았다. 설계 당시 최회장은 우측 회의실을 공회장으로 개방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 시골에서 계모임 같은 걸 할 때 밤에 하는데, 그때 공공기관은 퇴근 후라 불편하니 웬만한 것은 노인회관에서 다 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건축 당시는 김정숙 면장이 부임해 왔는데, 김면장은 문화사업을 강조하며 작은도서관을 제의하였다. 노인회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래서 광석노인회는 노소가 함께 공생하는 흔치 않은 작은도서관을 겸한 면소재지 노인회관으로 탄생한 것이다. 


작은도서관(작·도)으로 출범하면서 주민자치위원회도 하고, 수지침이나 세예, 스트레칭 운동 등 노년층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왔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영어수업도 한다. 광석면 주민 12명이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열공하는 것이다. 강사는 현지 주민 임영신 씨이다. 광석면은 물론 주민자치회, 빛돌회 등에서 노인들이 배우는 열성에 화이트보드 등 물심양면 후원해 주었다. 작도에는 컴퓨터 두 대 있고, 공익요원이 근무도 한다. 



그러나 작은도서관에 양지만 내리쬐는 것은 아니다. 오가며 지나다 보면 노인회관 주변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곤 한다. 할아버지 있는 곳에 손자! 그림이 좋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작·도에 몰리는 주된 이유는 와이파이라고 한다. 작·도 주변에서는 어떤 게임을 해도 폰의 데이터 요금이 무료이기 때문. “그러다 보면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서 책도 보고 그러잖을까요?” 최분회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리의 처음 의도는 좋았어요. 하지만 막상 운영을 하다 보니 작은 거 하나가 커져오는 느낌이랄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작·도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아이들이 화장실 가고 싶을 때마다 할아버지들 노니는 방을 통해 들락날락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도 신경 쓰이지만, 가끔 누구 손을 타는지 작은 분실물에도 신경 쓰이게 만들고.... 매일 같이 문열어놓고 오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긴장해야 하는 상황은 성인군자도 오래 못 견딜 성싶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논산시장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화장실 하나 달아달라고 부탁하였고, 구두 언질까지 받았다. 그런데 건폐율에 걸려서 되니 안 되니 하면서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초적인 현상으로 인하여 불거지는 문제를 두고서, 이를 대하는 공무원들 태도가 반은 이해가 되고 반은 갑갑하다. 대도시도 아닌 널럴한 시골에서 벽에다가 한두 평짜리 화장실 하나 더 부착한다고 해서, 대체 그것이 무슨 범법행위련가? 정이나 불법이라면, 제2 제3의 대안은 왜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


일주일에 두 번씩 여는 행복경로당 


광석면 분회는 다른 분회와 달리 수·금 양일에 걸쳐서 행복경로당을 운영한다. 한번 올 때마다 20~30명이니 숫자상 과히 많지 않아 식대는 크게 오버하지 않는다. 행복경로당하는 날 건강체조도 하였으나 요즘은 서예만 한다. 서예라는 분위기에서 느끼다시피, 광석분회는 점잖은 분위기이다. 광석 분회에서 정한 규칙이 둘 있다. 금주, 금연이 하나요, 돈이 오가는 화투 금지가 둘이다. 이런 규칙이 맘에 들지 않는 회원들은 발길이 뜸한 편이다. 현재 할머니방은 비어서 창고 겸용이다. 다른 경로당은 점심 후에 문을 여는 편이지만, 광석은 아침부터 연다. 점심 때가 되면 회원끼리 외식도 하고 그러는데, 점심값을 서로 내려고 한단다. 그래봤자 결국은 돌고돌아 더치페이가 되는데도^^


“광석에서 잘 되는 경로당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우육종 부회장이 사는 동네 이사1리에서는 동네목욕탕을 운영중입니다. 1만원을 자동 이체해 놓고 월 연료비로 빠져나가게 하는 시스템이죠. 그 동네에 공직자 출신이 좀 있어서 그런지, 정부 지원 루트도 잘 알아 운동 시설도 갖춰놓고 재미나게 살아요. 이상기 부회장이 사는 갈산1리도 매일 식사공동체를 해요. 윤동원 부회장 있는 왕전1구도 잘 되고.... 이렇게 말 안 나고 조용조용 사는 동네가 있는 반면, 별것도 아닌 일에 뒷말 많고 걸핏하면 불평 소리 나는 곳도 있어요. 저 인간 꼴 뵈기 싫어서 경로당 안 간다....  이리 되면 그 동네 화합이 깨지는 거죠. 노인정 경로당이 신선들 사는 별천진가요? 마음 풀어놓고 그냥 웃고 놀고 하자는 놀이터지......”



놀뫼신문과 구판장 시절 


하루 종일 경로당에서 소일하는 동안, 신문 같은 거 보는 사람은 소수라고 한다. 아참, 그러고 보니 최 분회장은 예전에 『놀뫼신문』 초창기 사장을 했던 분이다. 재임기간이 2009~2011년이었는데, 엉겁결에 맡았단다. 그 이전에 놀뫼신문이 생기면서 주식 공모하는 인쇄물을 보았다. 당시 김인규 씨가 발행인이었고, 지역을 위하여 애쓰는 신문일이 귀한 일이라 생각되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없는 살림에 사비 털어서 일이백인가를 송금한 일이 있었다. 당시『놀뫼신문』임기가 끝나고 새 사장을 찾는 과정에서 이사회는 최분회장을 찾아와, 조합장 경력도 있고 하니 신문사 경영에만 신경 써달라고 강청하는 일이 있었다. 언론에 대하여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발행인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3년여 경영을 해보니 기자들 다루기도 어렵고 경영적자폭도 늘어만 가기에 대주주인 놀뫼금고 이사장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금융기관에서 발행한다고 하면 신문 이미지도 좋지 않고 하니 언론인 출신나 누가 나서면 매각하자 제안했고, 마침 지원자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신문사 사주가 놀뫼금고라는 단체에서 개인으로 넘어가게 된 역사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농협조합장이면 당시 월급도 많이 받으셨겠네요?” 


이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 얘기는 박정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남이었기 때문에 군대 제대 후 아버지를 도와서 7~8년간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25마지기 논을 지었고, 그 땅은 그대로 물려받기도 했다. 1961년 5·16 혁명 이후 통일벼가 보급되고 쌀 가뭄이 해소되어가던 시절이다. 마을마다 이동조합이 생겼다. 신당1,2,3리 통틀어 리별로 하나씩, 그래서 면 전체로는 13개의 이동조합이 생겼다. 동네마다 구판장이 함께 생겨서 비료 나누어 주는 일 등을 했다. 구판장은 ‘연쇄점’을 거쳐서 지금의 하나로마트로 성장한다. 연쇄점은 1972년 같은 면내의 이동조합들이 몽땅 합쳐져서 하나의 단위농협이 되고나서부터 생겨났다. 당시는 시내 상인들의 가격 담합이 심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면단위에서는 연쇄점으로 맞섰다는 서민들의 근대사이다. 단위농협이 되고 나서 조합장을 한 게 85~88년이다. 그때 상무(현재 전무) 월급이 80만원였던 데 비해 조합장은 50만원에 상여비, 판공비 같은 게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고 술회한다. 


알아서들 결정해주세요


“여행 가서 놀 때 이야기 들려주세요.” 

여행은 경비가 나오는 게 아니어서 형편 따라서 결정한다. 재작년은 안 갔고 작년에는 70~80명이 버스 두 대로 떠났다. 1~3월 중 열리는 총회 때도 그렇고, 어떤 회의때고 간에 최분회장은 자신이 직접 안건을 내놓지 않는다. 여행의 경우 언제,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지 토론을 붙인 다음, 거기서 결정되는 따른다. 그래서인지 방안에 예닐곱분이 있어도, 지난 해 다녀온 곳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참 후에 남해 어디 해변였다는 대답 하나가 겨우 돌아왔다. 자주 가니까 간데 또 가기도 하는데, 연중행사인만큼 주변 도움도 한번쯤은 받는단다. 동네에 관광버스 하는 사람도 있으니 좀 싸게 하고, 농협 같은 데 가서 부탁도 좀 하고 하면 일인당 6~7만원씩 드는 경비가 팍 줄어서, 결국 일인당 2~3만원씩 내도 가능한 상황이 되곤 하는 모양이다. 


체육은 한궁을 연 2승하다가 작년에는 2위로 그쳤다. 게이트볼 구장은 오광리, 갈산리, 산동리 등 5개소인데 요즘은 동네에 사람도 줄고 하여 두세 곳만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단체전이라서 팀플레이에 익숙지 않을 때 코치를 맡은 사람이 뭐라고 하면 티격태격하는 불상사도 없지 않다고 한다. 반면, 그라운드 골프는 단독 플레이이기에 잔디를 걷다가 마주치면 격려와 박수를 보내어 좋다고, 최분회장은 두 경기를 비교한다. 


대신 실외라서 날씨의 영향을 더 받게 되는 단점도 있다. 부적면분회장으로부터 그라운드 골프 치러 논산 대교다리 밑으로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7년여 노인회를 이끌어 오시면서 애환도 많았겠고요, 개선했으면 하는 점도 있을텐데요?” 


“한 동네에 둘씩 있는 경로당은 합쳐야 낫다고 봐요. 신당1리는 할아버지, 당뒤는 할머니 전용 경로당이고, 천동리 샘골 경로당은 예전에 있었다고 해서 다시 부활시킨 경우입니다. 경로당이 하나 생기면, 크든 적든 동일한 금액이 나오니 그걸 소수가 나누고 싶겠지요. 그러나 한동네니까 합구를 해야 단합도 잘 된다고 봐요. 다른 얘기인데, 논산시지회나 어디에 나가서 교육을 받으면 분회장과 총무의 봉사 정신을 강조하곤 해요. 여기 총무는 김창곤 씨인데, 선배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호흡을 잘 맞추어왔는데요, 그런데 봉사라는 것도 자발적으로 우러나서 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하루 이틀 하다 말 게 아니니까 경제 문제 포함하여서 난제들에 대하여 근본 대책을 세워줘야 할 거 같아요. 화장실 문제도 그렇고,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작은 대책부터 찾아보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거 같네요.”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놀뫼신문』  2018-01-30일자 2면에 실린 글입니다. 

[대한노인회 광석분회 탐방] 경로당에 남녀노소 어울렁~더울렁~ 그 숙제들

https://nmn.ff.or.kr/21/?idx=515523&bmode=view


작가의 이전글 “생활공예품, 이젠 나도 만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