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쓴 기사입니다.
오래된 신문, 특히 정치색이 짙은 내용은 빛바래 보입니다.
6월 8일 김홍신문학관 개관식 계기로 연락할 일이 있다보니, 이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해서 다시 읽어보니..... 구구절절 애정이네요.
휴머니즘 대하드라마라는, 자뻑마저 드네요~
밥 한 번 하면서, 반주 겸하여 나눈 이야기들 치고는 참 알차게 느껴져서요, 2018 Again!
2018 논산시장 민주당 후보로, 황명선 시장이 단수공천되었다. 이 결과에 대하여 당내 유력한 대항마 전준호 예비후보가 크게 반발하였다. 일각에서는 전후보가 미래당으로 갈아타거나 아니면 무소속으로 해서라도 출마할 거라는 전망이 점쳐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격변기를 거친 후 전후보는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 당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하였던 당에 그대로 남아서 백의종군하겠다.” 승자의 기록 못지않게 루저의 기록을 중요시해온 본지는, 내상의 생채기가 잔설처럼 남아 있을 거 같은 전준호 후보의 마음문을 조심스레 노크하였다. 상면한 결과 그의 문은 어느새 활짝 열려 있었고, “앙금 같은 건 없다. 황시장을 도와 민주당 승리의 초석이 되겠다”는 유쾌한 반응으로 화답하였다.
‘어려운 자리에 발걸음해 주어서 고맙다’는 발행인 인사에 전준호 후보는 충청인의 지조를 들고 나온다.
“논산사람을 위시하여 충청도분들은 선비의 지조(志操)를 중요시해왔죠, 윤봉길, 이순신, 김좌진, 유관순을 배출한 지역답게요... 내가 더불어민주당에 공식 입당하고 권리당원 최대 입당 기록 등 심혈을 기울여온 9개월, 그럼에도 내 앞으로 던져진 성적표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타인의 의견에도 겸허히 경청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혼 때 싸웠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잖겠어요? 호흡을 길게 하면서 함께 지지고 볶고 하노라면 신임도, 덕망도 쌓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번처럼 인생살이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을텐데요, 본인의 심성에 대한 외부인의 평은 어떠한지요?
“지난해 논산문화예술회관에서 최모 전 부여부군수와 조우했어요. 그분이 나를 보더니만, ‘당신같이 순수한 사람이 웬 정치냐’면서 걱정이 태산이더군요. 도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시절 나의 살아오던 걸 잘 봐왔으니까요... 남들이 기피하는 도청 기획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무관 승진으로 예민하던 시절, 기획계 차석으로 근무평정서를 올렸더니 결재권자가 ‘전준호 너를 1위로 정정하여서 다시 올리라’고 여러 번 했으나, 고참순으로 평가를 고집했던 것이 생각났었나 봅니다. 물론 부여군 최모 부군수님이 먼저 승진하게 되었지요.
서기관 승진할 때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도립대인 청양대 교수들을 도청에서 교육공무원 임용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임용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절차 하자 문제가 도청 내부 무기명 토론방에 올라와서, 결국은 서슬 퍼런 홍성지검에 불려가게 되었죠. 그러니까 도청이 내포로 이사가서 최초의 검찰에 불려간 사람이 저라 할 수 있습니다. 검사실을 나오면서 ‘100% 전적으로 내 책임이니 다른 상하직원들은 일체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함께 불려간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본인만의 책임이라고 하니 검찰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타 시도에서도 임용위원회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고 검찰수사 대상도 아니니 종결처리 한다면서 “어떻게 도청직원들은 남 탓을 하지 않고 자기 책임이라고 하는지 참 보기 좋다”는 말을 현재 교육협력담당이 듣고 실장께 보고했던 것이지요. 이런 보고를 받은 남궁 실장께서 ‘전준호 승진’..... 이런 내력도 소상히 아는 분이니까 내 걱정이 꽤나 됐나 봅니다.(웃음)”
누구라도 그러겠네요, 저토록 순수한 심성을 지닌 분이 험난한 정치판을 어떻게 뛰어들 생각하였는지....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죠. 1995년 전일순 부친이 논산 초대 민선 시장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3년 임기를 마치고 다음번 선거에서도 당선이 되어 연임호가 출범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민선시장을 하셨지만 당신 앞에 큰 떡을 하나 놓지 않고 공평하게 행정을 처리하셨습니다. 우리집이 원래는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일하셔서 상당한 부를 일구신 전설적인 여걸입니다. 그 많던 재산을 아버지는 퍼주기만 했지, 모으는 건 못하셨던 분이랄까요, 어느날 우리 형제 결혼식 때 100만원짜리 축의금이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호령하셨죠, 이건 뇌물이니까 당장 돌려줘!”
부친의 영향도 컸겠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공직생활을 1979년 논산읍사무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후 연무읍, 논산군청 등 8년 정도 논산군에서 근무하다가 도청으로 갔고요, 사무관 승진이 되면서 2005년 다시 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벌곡면장에 이어 강경읍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논산을 보는 눈이 새롭게 떠졌습니다. 당시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지만 강경에 와보니 가치있는 기독교 유적들이 참으로 많더군요. 이 땅에 김대건신부가 첫발 디딘 황산나루! 한옥 건축으로서 최고 오래된 북옥교회, 우리나라 3대선교사의 한 분인 페닉선교사의 한국최초침례교회, 1924년 강경성결교회 김복희 훈도(교사)가 현재 중앙초등학교인 강경소학교 학생들 57명과 함께 신사참배를 집단 거부하다 파면된 사건! 이후 신사참배가 주춤했다는 사실 등을 모아 “기독교 성지순례, 강경으로 오세요”라는 팜플렛 4천장을 찍어 배포했습니다.
당시 임성규 시장님에게 「강경기독교성지순례코스 용역비」를 신청하였고, 5천만원 용역납품서가 드디어 완성, 발표되었습니다. 발표 당시 나는 도청에 있으면서도 이 사업에 계속 관심을 기울였고, 강경의 열정적인 분들과 도청,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등을 방문해 드디어 2009년 ‘기독교문화와 근대거리조성비’로 55억을 받게 되죠. 이러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한 도시를 새롭게 조명하고 각광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들었는데, 마침 친구들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동년배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제가 초대회장이 되었고 지금까지 저를 적극 응원하고 있습니다.
전후보의 친구나 인간 관계가 상당히 원만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모임은 여전한지요?
“나도 인맥에 나름 자신이 있고, 인상이 좋다는 평도 듣지만, 어디 황명선 시장의 친화력에야 따라가겠어요?(웃음) 경쟁라인이지만 황시장은 대단해요,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금세 ‘형님’ 하면서 어찌나 친밀감을 밀도있게 표하는지..... 그래서 국회의장이나 추미애대표, 일전 김현미 국토부장관들을 만나면서 거대사업들을 강공 드라이브로 추진해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이 뚜렷하기에 비교는 무의미하겠죠. 다만 나 같은 경우는 중앙부처와의 관계에 있어서 실무적인 접촉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실무 실국장과의 인맥을 더 중시하는 편입니다. 내 친구들 이야기를 질문하셨는데, 지금도 많은 친구들이 저를 밀어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 황시장 선거때도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어왔고요.... 후배들이지만, ‘이름없는 봉사회’도 동지들도 20여명 소수정예군이 있습니다. 일반 친목단체들처럼 밥먹고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격월로 의미 있는 봉사를 찾아서 해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이웃을 돌아보고 논산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다 보니 제 서포터스가 되기로 자처하면서 동시대의 동반자로 더불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황 시장 얘기까지 나왔는데, 차제에 향후 논산과 주변도시, 도청과의 관계까지 외연을 확장해나갈 계획인지요?
“흔히들 경선 때는 다시 안 볼 것처럼 서슬 퍼런 진검 승부를 합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쪽으로든 결정이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승복하면서 축하를 하고 받는 자리로 재편되는 게 정치판이잖아요? 이건 이해득실을 떠나 사회적 공동체로서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흐름이라고 봅니다. 나는 같은 당원이요 동지로서 백의종군을 선언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나갈 뿐입니다. 다만, 같은 민주당이기에 내가 개발해놓은 공약과 일치하는 부분도 여럿 있을 것이며, 설령 교집합에서 어긋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꼼꼼 검토해 본 다음 그 중요성과 심각성에 공감이 크다면 우선적으로 채택하여 정책이 되고 현실화되면 하는 바람은 여전합니다.
인근 도시로 말하면 계룡부시장 시절 애착이 참 많았던 곳이기에 이케아 이전 등 큰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내 경험이 필요하다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도청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행정가로서보다 정치인으로서 도지사 선거에도 힘을 보탤 위치라 보고, 논산을 포함한 큰 그림, 큰 정치를 구현하는 데 나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저런 그림을 그려보는 중입니다.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아우르는 전기로 삼겠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데요, 종착역은 그래도 논산일진대 단독 개발한 공약 중 랭킹 1위를 꼽는다면요?
“공약은 가치관과 경험의 자연스런 발로라고 봅니다. 지방정부의 경우 직접 발로 뛰고 듣고 이야기 나눈 결과가 응집되기도 하겠지요. 공약의 가짓수는 많지만, 그 뿌리는 하나라고 봅니다.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랄까요? 황명선 시장은 동고동락이라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고, 여기에 딴지를 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다만 표현 방식이나 접근법은 사람마다 달라지겠지요. 나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데, 이런 좌우명은 특히 청년기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많이 다짐하잖아요? 나는 수많은 공약 중에서 ‘청년정책’을 최우선시하고 싶습니다.
청년창업 등 스타트업 육성과 지원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행정직이면서도 『컴퓨터 프로그램』의 특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제품을 만들어 보급하는 등 개별적으로 많은 비용을 써 본 적도 있습니다. 특히, 제 프로그램은 이면지를 절약할 수 있어 도청에 구매요청을 하였으나 보급이 불발되었습니다. 특허받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장된 게 나에게는 아직도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같은 조직 내에 적용도 이렇게 어려울진대, 스타트업의 창업자나 중소벤처기업의 운영자들 애로는 어떠하겠습니까? 청년창업자들이 특허받은 창의적 제품을 만들었다면 지방정부든 개인이든 그걸 적극 구매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재투자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 논산에서도 구글과 애플이 탄생하도록 육성할 1차적 책임이 우리 지방정부에 있다고 봅니다.
어느 지방정부나 청년정책이 취약한 상황에서 보완이 되면 좋겠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청년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싶은데요?....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인구정책과도 맞물려 있어서죠. 출산 장려책은 한계가 있지만,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좀더 현실적인 타개책이 될 수 있다고 보아섭니다. 저는 도청에서 공직을 하였기 때문에 중앙부처와 많은 업무협의를 하였습니다. 이런 인맥과 경험을 활용해 외국기업의 유치와 중앙부처의 산하기관 유치 등 일자리를 늘리는 게 어렵지 않다보 봅니다. 계룡부시장 시절, 최시장을 도와서 세계적인 기업 이케아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처음 협상 실무에서 계약, 신속한 진행을 위한 행정적 결단 등 산 넘어 산이었지만 보람에 찬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논산이나 계룡의 특색에 걸맞는 방위사업청 유치와 방산업체 이전 등을 꿈꾸고 있습니다.
인구정책의 또다른 얼굴은 교육(敎育)이라고 봅니다. 현재 논산시청의 교육정책들을 응원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당이어서인지 발상이나 표현에 있어서 교집합이 생각보다 많군요^
기업유치나 교육 등에는 비록 방법론은 다를지언정, 삶의 질과 양을 추구하자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겠지요. 논산 교육 이야기를 해주시죠.
“학력보다는 실력이라고 봅니다. 저는 은진초, 논산중, 공주고를 거쳐서 우송공업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최근에는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까지 마쳤습니다. 실력 우선의 자부심이 논산교육의 원동력이요 핵심이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논산은 기호유교문화의 본산이어서 정신문화관 건립 등을 통한 인간성 회복 교육을 펼쳐나가는 최적소라고 봅니다.
2005년 벌곡면장 시절, 벨국제학교를 유치하였습니다. 목원대학교에서 10여년을 준비해왔던 이 대안학교가 청주에 둥지를 틀려다 실패하고 무주에서도 쓴 잔을 마신 후 벌곡에서 새로운 시작을 시도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논산에서는 행정벽에 부딪쳐 청주로 복귀하려는 생각을 가지려 하던 즈음에 제가 개입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시청과 교육청을 출근하다시피하면서 함께 풀어나갔습니다. 면장이 팔뚝 걷어부쳐도 잘 안 되는 현실에 동반 좌절도 거듭했지만 결국은 해냈죠. 첫해 입학생이 60여명에 이를 정도로 벌곡의 지형도가 바뀌었는데, 기숙대안학교이기 때문에 교직원 등을 합치면 벌곡의 산업경제는 물론 활기찬 분위기 등등 산골 지역의 큰 경사였습니다. 지금도 벨국제학교와 인연을 맺고 입학식, 졸업식 때 참석해서 축하와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벨(警鐘)을 울린 쾌거였군요^ 그런데 대안학교가 귀족학교라느니, 논산시의 중고생 해외연수 경비 등을 문제삼는 시각도 있던데, 우리의 서민 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관점차라고 봅니다. 자유와 다양성(多樣性)은 대기 속의 공기처럼 기본적으로 어디에나 깔려 있어야겠지요. 서민 정책이나 재활용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가면 좋을 거 같습니다. 계룡역 인근에는 앙상한 뼈대만 서 있는 삼진아파트가 수십년 흉물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계룡시 부시장 시절, 서민임대아파트인 파라디아도 그 꼴이 될 뻔하였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100억 시비로 법정공방만 계속하던 때에 ‘공무원은 개입할 일이 아니다’는 주변의 만류 속에서 나는 두 회사 대표를 부시장실로 오라 했습니다. 8개월 만에 만난다는 두 곳 대표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시도는 매주 서울에서 여섯 차례 난상토론을 거쳐야 했습니다. 나중도 여의치 않았지만 시행사, 시공사, 대한주택보증, 대출은행, 입주자대표 등 시장실, 부시장실을 점거하여 농성하는 입주예정자들과 실타래를 풀어가듯 토론 5개월 만에 입주를 시킨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원용한다면 논산 구도심 활성화, 좁혀서는 아원백화점과 논산역 활성화도 오랜 난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논산시 자체 해결만으로 어려울 경우 아원백화점은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 논산역 활성화는 서대전역의 호남선 KTX 증차문제와 공조하고 기존 호남선의 직선화 사업,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 등과 연계하여 과감하고 통크게 나간다면 풀릴 거라고 기대합니다.
이런 꿈들은 누구라도 쉽게 꾸지만, 상상 아닌 현실은 녹녹치 않기에 지지부진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꿈은 포기하지 않는 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계룡시 2020 세계군사문화엑스포유치를 보죠. 17년에 걸친 숙원 사업이었지만 저는 그 낙방 요인들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시장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부분이 있고, 실무자가 전문 역량을 발휘할 영역이 따로 있어서 둘 사이에 긴밀한 상보(相補)가 되어야 현실화가 가능합니다. 벌곡면장시절, 대둔산권역사업도 정○○ 당시 9급공무원이 단독으로 기획, 치밀하게 작성하여 외부 용역비도 안 들인 채 60억 사업을 따낸 적이 있었습니다. 2020세계군문화엑스포도 우리는 우선 기획서 보완하는 작업부터 착수하였고, 심사위원측의 요구 사항을 찾아가서 몇 번이고 경청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가 되자 사람들은 17년이라는 때가 되어서 무르익었나 보다 했겠지만, ‘세계엑스포’의 ‘세계’는 쉬 따낼 수 있는 별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방정부나 내부 직원들의 내실화가 최우선이겠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서 세계적인 일에도 전념할 기획팀이 동시에 가동되어야 지역 발전의 수레 두 바퀴가 원활히 굴러가겠지요!
이번에 못 펼치는 꿈은 차기 시장도 공감하고, ‘공감한표’를 넘어서 무수한 ‘별풍선’들이 오갈 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끝으로 논산시민들과 한 말씀 나누어 주시죠!
“어디 가서 ‘전일순 시장이 선친입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게 되면 “일 잘하시고 참 많이 베풀었던 사람”이라면서 격려해주시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건양대유치, 공설운동장 건설추진, 계백장군묘역 성역화사업 등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제 강점이라고 짚어주는 ‘정직’과 ‘도덕성’이 시대의 화두라고 봅니다. 이런 덕목이 가장 빛 발할 수 있는 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보아서 쉽지 않은 그 길을 선택을 하였고, 나의 이 초심(初心)은 자랑스러운 충청인의 기개와 지조의 또다른 표현이라 봅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종국적으로 한 나라를 구했듯, 저 역시 더 배운다는 자세로 섬기고 경청하면서 겸허히 정진해갈 때, 그러노라면 민심이 천심이 되어 논산시민을 섬길 기회가 자연스레 주어지리라 확신합니다. 그 동안 진심으로 저를 믿어주시고, 과분하게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할 뿐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작은 논산 사랑부터 실천해갈 때 논산은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논산 사랑을 불태우는 각 후보들의 건승과 페어플레이를 기대하며, 그야말로 ‘선거 = 축제한마당’을 꿈꿉니다. 소회를 밝히게 해준 『놀뫼신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대담] 전영주 발행인, 이진영 기자
[정리] 이지녕
사진은 전준호 님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글은 『놀뫼신문』 2018-04-25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