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신문학관 이야기(1)
김홍신 문학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총 4회.... 작년 이맘때 이야기 2편, 올해 최근 것 2편
오래된 이야기부터 꺼내옵니다요~~^
장/총/찬,
대하장편소설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 『인간시장』의 주인공 이름이다.
처음에는 권총찬으로 작명했으나,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장총찬이다.
가짜휘발유 현장을 덮쳐서 고발하는 등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그 숱한 무대에는 논산 우시장이 등장하지 않을 리 없다.
소설 속 주인공만 그런 게 아니라, 소설가 자체가 홍길동이다.
1991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을 지내는 등 사회정의를 꿈꾸었던 김홍신 작가는 1996년 제15대 국회로 입성하여 민주당 대변인이 된다. 16대로 이어간 그는 2000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 국회의정활동 대상, 그 다음해는 최우수상에 이어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도 수상한다. 2002년 국정감사우수의원상과 국회의정활동 대상을 받을 정도로 맹렬한 활동을 이어간다. 임기말인 2003년에는 의정활동 최우수상을 받고서 대한민국 정치1번지인 종로에서 세 번째 출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당시 상처(喪妻) 등의 불운과 겹치면서 박진 후보에게 500여 표차로 석패, 그 후로는 정치를 내려놓는다.
그래서일까,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그를 한두 마디 키워드로 특정하기 쉽지 않지만, 김홍신 하면 “소설가 김홍신”이다. 작년 논산땅에 김홍신 문학관이 들어선다는 플랑카드와 함께 5월 26일 그 첫 삽을 떴다. 건양대 짐나지움이 바라 보이고, 논산시민공원이 앉아 있는 반야산의 끝자락.... 주마간산으로는 쉬 보이지 않는 곳에서이다. 공사가 1년여 지났건만 공사 속도가그리 빨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조신형 소장을 만나보니 요즘은 천장공사중이라면서, 다른 데서 하루 걸릴 일이 여기서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슬로우 푸드 아닌 ‘슬로~건축’이라는 신용어와 함께.....
김홍신 문학관은 두 동이다. 전면은 카페형 문학관이요, 뒷면은 순수 집필관이다. 현재는 집필관 공사가 마무리 단계이며, 올 여름쯤 김홍신 작가가 이사올 예정이라고 한다. 집필관 역시 개방을 전제로 하지만, 앞쪽의 문학관은 커피와 빵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북카페형 오픈공간이다. 김홍신 작가가 마지막 투혼 불사를 건물 곳곳에는 그의 열정과 가치관이 알알 반영되어 있다. 현재까지 135권을 집필한 그는 생애 150권의 저술이 목표이다. 1947년생으로 올해 만 71세인 그는 나머지 15권의 저서를 논산에서 완성하겠다는 노익장이다. 150권이라~
1976년 현대문학 ‘물살’과 ‘본전댁’(논산이야기)으로 등단한 이래 ‘인간시장’, ‘대발해’, ‘단 한 번의 사랑’, ‘칼날 위의 전쟁’, ‘바람 바람 바람’, ‘내륙풍’...에세이 ‘인생사용설명서’, ‘인생견문록’ ..... 책 한 권 읽어내기조차 쉽잖은 현대인들에게 백여 권의 제목만으로도 벅차다. 그는 그 숱한 책을 오직 만년필, 육필원고로 써내려왔다. 연필 소설가 김훈이 이메일 없듯, 그 역시 몸으로 쓰는 육필 작가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니고 있던 대조영의 발해(渤海), 그러나 불행히도 동양사에서 그 역사적 진가를 인정받지 못해온 게 현실이다. 우리 기록이 전무하다시피해서이다. 정치를 내려놓은 김홍신은 그 발해땅을 온 몸으로 누볐고, 마침내『대발해』라는 대하소설을 대한민국에 선사하였다. ‘동북아공정’이라는 중국의 파상적인 역사공격을 단신으로 막아낸 꼬마거인이다.
카메라를 논산으로 줌인해 본다. 2011년 논산시는 소설가 박범신을 끌어들였다. 논산 위상을 한껏 극대화시킨 엄청난 쾌거였다. 굴지의 작가 레지던스는 때로 지방정부가 사활을 걸다시피한다. 투자 대비 브랜드홍보의 가성비가 월등하다는 점도 현실적 이유의 하나이다. 요즘은 미투 바람이 불면서 고은이나 이외수의 경우처럼, 유종의 미가 흐려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저명인사 하나면 그 돈 값을 하고도 충분하다. 인근 공주시는 들꽃시인 나태주가 공주시의 품격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소설로써 양수겸장하고자 김홍신에게 문학관을 제의하였다. 이 제안을 거부한 김홍신의 변은 간단하다. “내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공주를 어떻게...?” 네이버에서 김홍신을 검색하면 “출생 1947년, 충청남도 공주”로 나온다. 이 대목이 논산에서는 여전히 시빗거리다. 김홍신 작가의 어머니가 몸을 풀러 공주 큰 집으로 갔단다. 출산 후 다시 귀가하여 아들 김홍신을 키운 곳이 논산이다. 요즘 아이들 호적을 보면 “순풍**산부인과”까지 명기가 되는데, 그때도 그랬을까 고개 갸우뚱이다.
그의 학력 사항을 보면 대건유치원, 부창+반월초, 대건중·고에 이어 건국대학교 국문과이다. 그런데 대건중고도 졸업까지는 했니 못했느니, 이 역시 인구의 회잣거리이다. 고교시절, 엄마 따라서 중간에 공주로 이사가 공주고 다녔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과 사상적 배경은 꾸준히 논산이며, 외곽에서는 논산향우회가 그를 밀고 있다. 그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게 홍상문화재단의 출범.
『홍·상』은 김홍신 + 남상원 이렇게 두 사람의 가운뎃자를 딴 것이다. 김홍신은 국회의원 출신이라서 재경논산향우회 고문을 맡고 있다. 한편, 취암동 출신인 남상원 아이디&플래닝 그룹 회장은 논산사랑이 유별난 인물이다. 딸기축제때나 박범신 출판기념회 같은 때 재경논산향우회와 함께 내려와 논산의 역사, 애경사를 함께 해왔다. 모루 김홍신 집필관은 9년여 전 향우회 차원에서 거론되어 1차 모임을 서초동 봉우리 식당에서 가진 바 있다. 마침내 남상원 회장이 40억원을 출연, 문화재단을 세우기로 발표하면서 그 명칭에 이름 석 자 중 하나는 넣지만, 나머지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래서 남상원 그의 이름은 지금 이사 명단에도 없다. 나중에라도 꼭 들어가야 한다면, 10년 후에나 생각해 보겠다는 조건부로 출범하였다.
이 재단 이사를 겸한 여칠식 감사의 표현을 빌리면 명실공 “창밖의 남자”를 자처한 것이다. “꽃을 볼 때 정작 즐거운 사람은 누구인가?”는 화두를 던지는 창밖의 남자는, 자신의 결단으로 논산이, 논산의 문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는 술회이다. 현재까지 약속한 기금 40억 중 30억 정도가 투자되었고, 돈이 벌릴 때마다 충당해왔다.
“재경 향우회를 해오면서 보니까, 재력이 있다고 해서 쾌척하는 게 아니더군요. 논산출신으로 재산이 억 단위를 넘어서 조 단위인 거부까지 있지만, 고향을 찾지도 않는 거 같더라구요. 이러 저런 기부가 말은 나오지만, 그 실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재경논산대건총동창회 사무국장은 물론 재경논산향우회 사무국장을 6년간 역임한 여칠식 감사는 모금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유길상 향우회장을 도와 김세레나 노래비를 세운 후일담도 예사롭지 않다. 6천만원을 모금했고, 1억5천 달라는 걸 그 돈에 맞추어서 강행, 논산훈련소 연무대에다 기념비를 세웠다. 김형도 의장이 의원 시절, “국방대 전체가 논산에 내려와야 한다”고 국방부 정문에서 텐트 치고 단독시위를 할 때 재경향우회원들도 한 자리 보탰는데, 그 후일담도 지난 해 본사가 주최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토크쇼”에서도 실감나게 밝혔다.
그간 논산 향우회가 숙고해 온 사항 중 하나가, 논산에서 유학 오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이 있다. 백 모 씨가 하남땅 어떻게 해보자고는 했지만, 이 역시 그 동안 지지부진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생각이란 씨앗은 때가 되면 발아(發芽)하게 마련. 서울학사건은 민간 차원으로는 한계가 있던 차에 국회의원과 시 차원의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조만간 만개할 조짐이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논산의 버팀목이 되어온 재경논산향우회는 현재 전창렬 회장이 맡고 있다. 향우회는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굴곡이 심한 편이다. 한편 산을 타는 사람들답게 꾸준한 맛이 있는 재경 논산산악회는 현재 임병수 회장호이다. 이 둘은 대한민국 센터인 서울에서 논산을 응원하고 있는 애향서포터스들이다.
그러나 논산을 응원하는 군단은 가히 전국적이다. 홍상문화재단이 등기를 마친 때는 2016년 12월 26일이다. 이 정관은 부총리를 지낸 국민대 김병준 교수가 협조하였다. 홍상재단의 고문이기도 한 전용덕 대표가 현재 재단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이 재단의 이사인데, 퇴임 후에는 집필관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예약상태라고 한다,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하여. 김홍신 집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성을 멀리 하고 실제 집필이 가능하도록 하는 실용적 공간의 조성이다. 현재 4개의 원룸형 공간이 전국 각지의 자유로운 창작자를 맞기 위해 슬로우건축으로 단장 중이다.
흔히 유명작가 문학관이라고 하면, 그 작품과 인물에게만 올인해온 트렌드이다. 김홍신 집필관은 그 벽을 허물어 버리려는 시도이다. 지극히 논산적이면서 지극히 전국적인 스트레치 아웃(Strech_out)형이다. 이런 민간 주도형 사업을 두고 오해가 좀 있는 듯하다. 논산 시청이 돈을 대줘서 불요불급한 데에다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그 중의 하나이다. 팩트는, 김홍신 문학관이 순수 민간 자본 위에서 굳건하게 서간다는 사실이다. 정관에 보면, 나중에 만약 이 재단이 해체될 경우 재단의 전 재산이 논산시로 귀속되도록 명문화해 두었기 때문이다. (계속)
[글·사진] 이지녕
사진은 홍상문화재단이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글은 『놀뫼신문』 2018-04-17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홍신문학관 이야기- 1]
논산향우회 애향심 『인간시장』으로 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