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역차별을 경계함
13일자 중앙일보에서 제기한 논산 김제동 파동이 일파만파로 번져갈 태세이다. 사건은 5일, 대전 대덕구청이 주최하는 ‘청소년 아카데미’에서 1550만원을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김제동 씨가 이 강연을 취소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고액 특강’ 불똥은 황명선 충남 논산시장에게 튀었다.
중앙일보의 점화에 힘입어 자유한국당 충남도당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충남도당에 따르면 “논산시는 2년 전 ‘참여민주주의 실현 2017 타운홀 미팅’ 때 김제동 씨의 90분 강연에 1620만 원을 지급했다. 앞서 2014년에는 1천만 원을 지급했으며, 이는 김씨 이전 초청 인사 강사료의 10배, 16배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좌편향 인사 고액 초청 강연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황명선 논산시장은 논산시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고액 캐내기 작업은 고공행진중이다. 아산시에서도 두 번 총 2700만원, 예천군 1500만원, 김포 1300만원, 서울로 올라와서는 도봉구 1500, 강동구 1200, 동작구 1500....연일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이언주 의원실은 신명난 듯하다. 정치권은 9월 국정감사 자료로 유명 인사 강연 목록 제출을 요구할 태세이다.
이에 대한 대응 역시 흥미롭다. 고액강사 중의 하나인 김어준은 13일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나는 보수가 고액 강연료 문제 삼는 자체가 이해 안 간다.”면서 “상품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그것이 보수가 그렇게 신봉하는 시장경제 아닌가?”라고 반문하였다.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김제동은 지난 6일 자신이 진행하는 KBS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을 통하여 “강의료를 어디에 쓰냐고 하는데, 조선일보 스쿨업그레이드 캠페인과 모교에 5000만 원씩 합쳐서 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잠깐, 여기 김제동 입에서 조선일보가 나왔다! 우파의 사령탑격인 조선일보에 기부를 했다니....
저보고 누가 그랬어요. “넌 새누리당이냐? 민주당이냐?”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난 무가당이다. 아무것도 나한테 첨가하지 마라!” “좌파냐? 우파냐?” 그래서 “나는 기분파다” 그랬어요. 아니, 좌파, 우파가 어디 있어요? 좌냐? 우냐? “너 칼 쓰냐? 창 쓰냐?” 이런 얘기 아니에요? 칼이든 창이든 들고 전투를 하는 것이 진짜 용장이죠. 그러니까 좌든 우든 칼이든 창이든 양쪽에 들고 대한민국에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칼 쓰는 놈은 안 돼?” “창 쓰는 놈은 안 돼”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죠. 《김제동,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김제동의 헌법독후감. 나무의 마음, 2018》
이 말은 2017년 연무대에서 김제동이 했던 말이다. 그날 타운홀 미팅에 참가한 논산시민들 중 상당수는 김제동과 사진 한 번 더 찍으려고 난리가 아니었다. 1500면이 모인 그 자리에서 기자는, 좀 의아했다. 막상 강연을 들어보니, “평범한 시민인 그가 왜 저리 유명하다고 난리일까? 저 정도 수위라면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겠지 않겠나” 싶었다. 며칠 후 금산에서 열린 세계인삼축제에서도 김제동을 만났다. 논산에서 했던 얘기와 엇비슷한 기조였다. “보통사람” 기치를 높이 올리며 출마했던 민정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노태우 대통령의 논조와도 닮아 있었다.
평범한 사람을 유명인으로 키워준 측은 현 정권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자유한국당 본인들이다. 블랙리스트 같은 데 올려놓고 하여서 그의 몸값을 한껏 부풀려놓은 장본인이 누구인가? 온몸으로 숱한 매 맞으면서 스스로 맷집을 키웠는지 연예인이자 토크쇼 진행자로서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천정부지로 치솟은 김제동은 이제 KBS에서도 제법 큰 자리를 차고 앉은 거물급이 되어 있다. 보수가 자업자득한 부메랑의 모델이다.
보수가 가장 불편해하는 존재가 ‘강남좌파’라고 한다. 진보성향인데다가 재력까지 겸비한 존재들인데, 청와대 조국 수석 같은 경우가 그 전형이다. 진보는 가난해야만 하고, 자그만 실수나 약점이라도 보이면 그 즉시 짓밟아놓아야 성이 차는 세태이다. 억대연봉인 김제동도 일종의 강남좌파로 분류된다. 김제동처럼 천 단위의 고액강사는 의외로 많다. 그럼에도 보수의 십자포화는 연일 김제동에게로만 향하고 있다. 무슨 범죄자라도 된 양 백안시하며 오래 전 일까지 샅샅 들추어내고 있다.
하긴 이 전법이 어디 김제동뿐이랴? 촛불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이 보수의 십자포화에 고꾸라져 나갔다. 미투 자체는 이 시대에 불어닥쳐야만 하는 만시지탄 순풍이지만, 최근 미투 파동에서 보수파 인사들이 고꾸라졌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타게팅이 이제는 강남좌파 고액 강사로 번져가는 조짐이다. 향후 스포츠스타에게 고액연봉의 잣대를 들이댈 거 같지 않다. 강사료 천 단위인 설민석, 도올 김용옥에게도 여간해서 칼날이 향할 거 같지 않다. 노동법을 열어제친 청계천 피복노조 전태일, 헌법 제1조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 기본(基本)을 외치는 젊은이 김제동만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난도질중이다.
그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논산시는 무대응으로 일관중이다. 공식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는 황명선 시장은 충지협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무거운 입을 떼었다. “문화 제일주의를 주창하신 김구 선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술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단체장이나 정치인도 많지 않을 겁니다. 이런 풍토에서 저는 문화 소외지역인 우리 지역에 시민들이 원하는 사람들 큰 맘 먹고 불러옵니다. 그걸 가지고 이렇게 설왕설래한다면, 어느 지자체장이 소신껏 문화정책을 펼쳐나가겠는지요? 더구나 초선단체장들은 더 위축되어서, 지역 역차별 현상이 심화될까봐 걱정입니다.” 문화(文化) 실핏줄이 삼천리 방방곡곡 뻗어나갈 때 심쿵~하는 대한민국! 딴따라 BTS가, 장난꾸러기 한국청소년축구팀이 대한민국에다 퍼다 주는 돈이 얼마인지를 동시에 따져봐얄 시점 같다.
지난 13일 충청지역신문협회(이하·충지협) 회원사 대표들이 논산시장실에 모였다. 충남 지역 언론인들이 인근 논산시의 중점 시책을 이해하고, 이어서 논산의 새 명소를 둘러보는 자리였다. 타 지역 언론사와의 그룹인터뷰는 때마침 터진 김제동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문화 부문쪽으로 흘러갔다.
이평선 충지협 회장(세종매일 발행인)은 황명선 시장을 향해 “지자체장으로 3선의 고지를 올라와 취임 9주년을 앞두고 있다. 충지협에서는 지방분권 전도사로서 대한민국을 종횡무진하는 논산의 아들 황명선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며 응원의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이선형 충지협사무총장이 “논산시의 브랜드인 동고동락(同苦同樂)” 네이밍부터 물었다. 황명선 시장은 논산시조직표를 보이면서 ‘사람중심’은 지역공동체에서 추구할 최고선이라는 시정철학과 함께 ‘시장 위에 시민’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100세행복과, 마을자치분권과, 희망마을건설과, 평생교육과, 맑은물과 등 독특한 부서명에서부터 동고동락의 의지를 심었다고 밝히면서, 구체적 실천의 장이 30~50호가 모여 사는 마을공동체라고 설명하였다. 논산에는 홀몸어르신이 8700명인데, 그 중 100개 동고동락 마을에서는 700명이 숙식을 함께 한다. 아침이면 집으로 출근하였다가 낮에 일 보고 저녁때는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구조, 동고동락하는 생활공동체 모습이다.
마을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 동네 이거 해주세요” 식의 관행적인 관치행정이, 이제는 마을 사람들끼리 스스로 알아서 하는 주민주도형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지금 전국에서 주목하는 것은 논산의 마을민주주의이다. 황명선 시장이 4년 전에 구상하였고 2년 전부터 실시한 마을자치회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다. 지역을 위하여 지금까지 주민자치위원회가 나름 기여를 해왔지만, 자치나 민치보다는 여전히 관치적(官治的) 요소가 많았다. 주민세로 거둬들인 돈을 시청에서 집행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산은 현재 500여 마을에 300만원씩 나누어 주어 주민이 제안한 사업을 직접 알아서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동네일은 이장이 알아서 혀~” 하면서 참여의식이나 주인의식이 저조한 편이었는데, 새롭게 구성된 마을자치회는 분위기가 사못 다르다.
상월면 산성리, 가야곡면 강청1리, 은진면 남산3리 마을자치회 같은 데는 소문이 나 있다. 이처럼 옆동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반기 9~10월쯤에는 가칭 “논산시 동고동락 마을자치박람회”가 열릴 거 같다. 논산시 동고동락 마을자치회 489개소가 한자리에 모여 그 동안 1년간의 마을자치 운영을 통한 마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우수 마을의 자치활동을 공유하는 동고동락 마을축제 형식의 마을자치박람회다. 200여 마을부스에 “우리 동네는요...”로 시작되는 마을자원들이 공개될 것이다. 평생교육과, 100세행복과, 마을자치과에서 진행했던 동고동락 마을사업들이 총망라될 공유 한마당이다.
지난 4월 하순, 황명선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초로 ‘문해교육상’을 수상했다. 문해교육상은 타인 추천제가 아니다. 한국문해교육협회가 직접 문해교육 발전에 기여한 대상자를 발굴해 시상하는데, 수상 담당자가 인터넷 사이트을 검색하여 논산 한글대학의 활동상황을 면밀히 체크하였다는 후문이다. 현재 논산에는 110명의 문해교사가 350개 마을 3500명의 어르신을 찾아가고 있다. 2014년 처음에는 22개 마을 270명이 쭈삣쭈삣 서로 눈치 봐가면서 시작했는데, 이제 논산은 한글에서 전국 최강의 도시가 된 것이다.
광석면 천동리에는 고부간 학생이 있다. 101세에 시작해서 현재 103세인 시어머니가 70세 며느리 손을 잡고 함께 열공중이시다. 이렇게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마을 프로젝트는 한글교육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강관리를 위하여 치과, 한의사, 영양사 등이 출동하기도 한다. 향후 황 시장은 『시장학』을 출판할 계획인데, 자치분권 같은 내용도 들어가겠지만 평생학습에 관한 내용을 대폭 담고 싶다고 피력한다. 입학식, 졸업식이 감동의 물결이기 때문이다.
황시장은 『살맛난다, 내 인생!』이라는 책자를 펼쳐놓았다. 제목은 같은데, 내용이 제각각이다. 논산 한글대학은 가을쯤 전체가 모여서 백일장을 벌이는데 매년 그 작품들을 책으로 엮는다. 처음에는 딱 한 권뿐였는데 최근에는 600~700명이 참가하기 때문에 15개 읍면동별로 분권하여 칼라판으로 출판해놓았다. 논산 어르신들은 본인 이름이 공동저자가 된 책을 한권씩 소장하는 엘리트로 등극하는 것이다.
한글대학 백일장을 들춰 보면 소녀 감성의 시도 많고 글·그림은 눈물겨운 사연들 점철이다. 한글대학을 수료했어도 본인 일대기를 장문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최근 놀뫼신문에서는 한글대학이 천거해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대필하여 대서특필해오고 있다. 개인의 애환이 모여 논산의 지역사, 문화사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다.
황시장은 부족한 지혜를 지성에게도 구한다며, 박범신 작가가 일깨워준 이야기를 하나 꺼낸다. “시에서 큰 맘 먹고 대도시 못지않은 예술행사를 벌이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읍내로 나올 수가 없어서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으니, 시골 곳곳을 직접 찾아가야지 않겠는가?” 515개 마을로 찾아가는 마실콘서트가 시작된 지 3년차이다. 동고동락 마을회관이 이제는 문화센터로 변신하여 유랑극단을 맞아준다. 아코디언 악사가 찾아와 전통민요와 흘러간 노래, 마술 잔치 같은 것을 벌인다. 문화재단 같은 데서 복 받은 일부 동네에게만 베푸는 몇 천만원짜리 공연이 아니라 무대도 필요없는 50~60만원 예산의 소박한 공연이다. 복합적 문화서비스 보따리가 한시간에서 시간반 정도 풀어지면 온 동네가 들썩들썩 흥타령이다. 찾아가는 동네잔치가 호응이 좋다 보니 주무부서인 100세행복과는 내년도에 문화예술과와 협의하여 좀더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중이다.
한편 시내에서는 마실음악회와 엇비슷한 버스킹이나 개그쇼콘서트를 비롯, 서울에서조차 쉽지 않은 수퍼스타급 대형공연이 간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황명선 시장에게 붙은 별명이 다채롭다. 그 중 하나는 딴따라시장, 또하나는 지방분권전도사!
인터뷰날 시청으로 진입하는데 벌곡에서 내건 현수막들이 즐비하였다. 2013년에는 5톤으로 허가가 났으나 최근 30톤으로 확장됨에 따라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청정 벌곡에 악취, 분진, 미세먼지가 허용치를 능가하여 살 수 없으니 논산시장은 이를 취소하고 시정하라는 것이다. 논산시는 ㈜DDS의 공장 신축 계획 신청에 대해 의료폐기물시설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거부했으나, 최근 충남도의 행정심판에서 패소했다. 관련법을 보면, 이런 권한이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장에게가 아니라 환경부장관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태양광, 축사 등의 폐해를 호소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데모하지만, 이 역시 시장의 권한 밖이다. 횡단보도의 신호등 하나 설치하는 것마저도 행안부 장관 소관이다. 이런 법들은 누군가 나서서 현실에 맞도록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총대를 메는 지자체장도 많지 않거니와, 입법 제청을 해도 중앙 관료들이 비협조 분위기란다. 지방정부 통제해오던 법들을 쉽사리 풀어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재정분권인데, 균형발전특별회계가 서류로만 존재하지 실제 돈은 따라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분권의식이 약한 기재부 관료 등 중앙 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 발등의 불인 지자체가 직접 나서야 하는 형국을 황시장은 하나씩 예 들어가며 설명했다.
청와대의 개혁 의지도 총론은 맞지만, 각론에서 오류나 한계가 엄존한다. 이래서 자치분권 전도사, 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황명선 시장의 설명을 듣다 보니 예정됐던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생소했던 동고동락 이야기는 물론 논산의 새로운 명소가 궁금했던 충지협 회원들은 선샤인랜드로 향하였다. 사격을 직접 해보고, 선샤인스튜디오 곳곳을 둘러보면서 일개 지자체의 명소로만 인식했던 이곳이 한류의 진원지가 됨을 실감하였다. 점심때는 강경의 황산젓갈, 부적의 대한국민채소명인 ‘김영환 조합장’ 채도락 등 지역특산물을 맛보며 충남,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앞서가는 논산을 벤치마킹 겸 홍보대사를 자임하는 시간이었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놀뫼신문』 2019-06-19일자 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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