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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ul 25. 2019

놀뫼에 지천인 논산사람들 이야기

[제1회 논산이야기 대회] 미화된 스토리보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에 감동

산문화원에서 이야기보따리가 3시간 여 펼쳐졌다. 지난 20일 ‘제1회 논산이야기 대회’가 오후 2시부터 시작하였다. 무대에 올라가서 7분 이내로 발표했는데, 학생부 11명, 일반부 10명 총 21명이 참가한 대회였다. 시간이 길다보니 중간에 한번 쉬는 시간도 가졌다. 


100여 명의 객석 앞줄은 정치인들 자리였다. 대부분 행사에 인사만 하고 자리를 비우지만 이번 대회는 양상이 달랐다. 이 대회를 발의하였다는 김종민 국회의원은 마이크를 잡고 “나도 국문과를 나왔지만 아마 이런 대회가 전국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면서 전반 내내 자리를 지켰다. 내가 사는 논산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진지해서 끝까지 남았다는 김진호 시의회 의장과 시의원들은, 시나리오에 없던 시상식 주인공도 되었다. 


논산 살다가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단다. “관촉사 은진미륵을 보았느냐?”, “개태사 무쇠솥은?” 마지막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이 세 질문을 모두 통과하면 극락행이란다. 논산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지명유래나 마을이야기, 전설, 구전 민담 등 주로 논산문화원 기록 자료에서 나온 것이 하나요, 논산사람으로서 살아온 본인 자신의 인생이야기가 또 한 갈래였다. 물론 이 둘을 합뜨린 경우도 있었고, 해와 달이 된 동화를 딸기와 접목, 신버전으로 각색한 ‘논산딸기’ 같은 창작품도 있었다. 


놀라워라, 지방 학생들의 끼와 입담


일반부에서 으뜸상을 받은 김임덕 씨는 구수한 입담으로 개태사 해인사건을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올해 본지에서 연재중인 “놀뫼알릴레오”에도 자세히 소개된 바 있는데, 끝부분은 버전이 다소 달랐다. 개태사의 철확 이야기도 그러했지만, 개태사 이야기가 처음에는 전설처럼 들리다가 나중에는 법원판례 같은 실증사료까지 제시함으로써 역사적 현재로 복귀하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닌 현실감을 안겨 주었다. 학생부에서 버금상을 받은 박다원(쌘뽈여중 3) 양의 ‘을문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물고기여서인지 생생한 실화 같았다. 그 효자 설화를 일상생활에까지 접목하여, 부모님 생일날 미역 끓여주는 작은 효 실천 사례로 곁들이니 전설이 현실 속으로 걸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학생부의 으뜸상은 김정훈(기민중학교 지도교사 ·임영선) 군이 차지하였다. 중학교 1학년이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돈암서원을 심도있게 파고들었고 그 많은 인명과 지명을 원고 없이 차분하게 알려 주었다. 학생부는 22명이 신청해서 지난 17일 다목적홀에서 예선을 치뤄 11명이 본선에 진입하였다. 예선 심사는 김인권 부여문화원 사무국장, 박용신 논산문인협회 사무국장이 맡았고, 심사기준은 적절성, 구성, 참신성, 청중호응, 전개방법 등이었다고 한다. 쌘뽈여중 7, 기민중 2명, 대건고 2명이 예선을 통과했는데, 응원차 나온 쌘뽈여중 교장선생님도 수녀복장이라 눈에 두드러졌다.


논산 관내의 학생들은 한결같이 놀라웠다. 우선 그 긴 내용들을 원고 없이 소화해냈다. 대부분 발음이 명료했고, 필요하면 때에 걸맞는 제스처 동원하는 여유도 보였다. 논산이란 개천에서 당장이라도 용날 거 같은 분위기였다. 다만 내용 선정시 본인 관련이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전이라기보다 주로 문헌 조사를 통하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참신성은, 아름다운 역사 예찬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 심지어는 부정적인 단면들을 여과 없이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유채민(쌘뽈여중 3)양은 명재 윤증과 회니 시비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박정은(쌘뽈여중 3) 양은 강경 미내다리를 다 세우고 남은 돈을 두 청년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치부를 그대로 까발렸다. 대부분 잘먹고 잘 살았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논산땅 주변에 만연한 그림자들 끄집어오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뻔한 이야기보다 삶의 애환 그대로


현실 자체도 미화보다는 진솔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일반부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나온 백승철 씨(65세)는 ‘기독교 성지 강경’를 안내하였다. 이야기라기보다 원고를 읽어내리는 상황이었고 발음이 불명료하다 보니 객석이 어수선해졌다. 7분 후 힘들게 강단을 내려오는 동안  권선옥 원장이 잠시 마이크를 잡았다. 한때 국어교사였고 시인이자 지금도 방통대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백승철 씨는 10여 년 전 큰 교통사고를 만나 아직도 재활치료중인데, 오늘처럼 기회 있을 때마다 도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소개말에 객석의 웅성거림은 응원의 박수로 바뀌었다. 



일단은 알아야 한다. 알면 아는 만큼 이해가 되고 소통도 된다. 김무길 씨는 역사교사처럼 신사참배의 실상을 소상하게 강의하였다. 시간제한에 걸려 “150년 전 정한론(征韓論)이 다시 일어난 작금,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 책임은 이제 우리 자신의 몫이다”는 결어를 맺지 못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지산동 초입에 서 있는 큰 돌 위의 글자 “종종계” 이야기는 그 동네주민 도희수 씨가 해설사로 나섰다.  


 논산이야기 현수막 달린 것을 보고 “옳구나! 병상에 있는 남편 이야기를 해주어야지” 하면서 응모한 박봉관 씨(66세)는 아저씨와 함께 평생 자전거포를 했다. 숱한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그녀는 주변 이웃에 대한 감사를 “덕분”이라는 한 마디로 응축하였다. 한수남 씨(64세)는 중학교만 나와서 남성성냥공장 다니던 시절 ‘(도라무)깡통다리’에서 미끄러져 옷 다 버렸던 애환들을 털어놓았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한수남 씨는 수십년 간 치매로 고생하신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지지고 볶고 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나중에는 시장님에게서 효부상까지 받았노라고 여간 자랑이 아니다.


최연장자인 조성욱 할머니(78세)는 논산에 시집와서 살아온 55년간 이야기를 돌아보다가, 돌연 가수요 웅변가로 변신하였다. “내가 곧 역사요 내가 문화”라고 강변하면서 내 주변 이야기나 과거지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라고 못 박는다. 못 배운 서러움은 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님을 직시하고, 검정고시라는 관문을 통해 혜천대학까지 입학한 본인의 인생 역정을 풀어냈다. 자필 한문서예를 펼쳐 보이는 ‘여자의 일생’을 보노라니, 2019 본지의 기획시리즈 “인생노트”가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이야기 광맥을 캐내는 작업 


“채록발표집”은 문화원에서 계획중인 듯하다. 논산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서 더 알찬 대회였다는 이정우 심사위원장(충남문인협회장)의 총평에 이어 양애경 스피치과 교수는 이야기꾼으로서 구성진 언변, 특히 발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상식을 준비하는 동안 시낭송가이기도 한 박정란 심사위원은 나태주 시를 랑랑 낭송하였다. 시도 그렇지만, 이야기가 책 밖으로 나와서 소리로 탄생할 때 또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교육방송이 대변신을 거듭하면서 “책읽어주는 라디오”를 출범시킨 게 어언 10여 년 넘은 세상이다. 첫 번째 대회를 마치며 감사를 표하는 권선옥 문화원장은, 다음 번부터 진행방식을 재고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대회가 웅변대회 모양새로 진행되어서였는지 예전 사랑방에서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편한 분위기에는 못 미치는 거 같았다.


할머니들은 “이야기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걱정하셨다. 그만큼 이야기는 중독성이 있다. 스토리가 뻔한 드라마에도 열광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드라마왕국이 되었다. 드라마를 비롯한 스토리텔링은 한류의 진원지가 되어 춘천 남이섬이나 선샤인랜드처럼 대한민국 관광산업 외연이 확장 일로이다. 


이제부터의 숙제는 콘텐츠 개발이다. 그간 논산문화원이 앞장서서 광에다 수집해 놓은 논산이야기는 타 시군에 비하여 괄목상대할 만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전설이나 민담, 구전처럼 객관적인 이야기들이다. 주관적으로, 개별적으로 살아오면서 몸소 보고 느끼고 겪으셨던 생생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본지가 논산지역 어르신들의 일대기랄 수 있는 “인생노트”를 진행하다 보니 그 속에는 개인사뿐 아니라 지역사, 대한민국세계사가 알게 모르게 녹아 있다. 그 이야기들이 생명력 있고 귀한 것은,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자칫 미화되고 자화자찬으로 흘러 식상해져 가는 흐름이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을 길게 감동시키는 것은 진심이요 진정성이다. 


지역국회의원이 시작한 논산이야기 대회가 “우리 동네이야기” 출발의 신호탄이 되어서 사람 사는 동네마다 시·공 제약 없이 잔잔 퍼져나가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 행사마다 이야기 프로그램이 꼭 들어가서, 이번 대회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학생들에게 좀더 너른 마당을 펼쳐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대회라는 콘테스트 형식이 거추장스러워도 보인다. 우리의 일상이 소통과 대화요, 이야기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미 있는 내용들은 유튜브이든 지면이든 어떤 형태로든 간에 최대치로 “기록(記錄)”돼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대회였다. 


[글·사진]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19-07-24일자 1면에 실렸습니다. 

https://nmn.ff.or.kr/21/?idx=2121199&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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