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의 캐치프레이즈인 동고동락(同苦同樂)이 국 이름으로 승격하였다. 7월 1일자 「논산시 행정기구 및 정원 운영에 관한 조례」일부 개정에 따른 결과이다. 기존 2국에서 현행 3국으로 증설되었다.
동고동락국은 7개과로 편성되었다. 마을자치분권과, 100세행복과, 주민생활지원과, 사회복지과, 평생교육과, 문화예술과, 관광체육과로 편제되었는데, 친절행정국에서 쏙 빠져나와 분가한 모양새이다.
관공서의 부서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관료적이다. 한자 분위기이며 대부분 명사 일색이다. 그래서 형용사나 동사가 등장하면 생소해 보인다. 전국 최초의 부서명 ‘100세행복과’는 다소 파격으로 들렸다. 해피(Happy; 행복)라는 형용사는 행복도시국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행복은 우리 생활의 본질이기에 헌법에까지 명시된 ‘행복추구권’이나 ‘삶의 질’ 등등과 어울려서, 헌법이 마치 동네향약이나 동창회정관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중에서 여전히 개발중인 행복도시는 ‘행정복합도시’의 축약이다. 외지에서 세종시를 초행했을 때 ‘행복청’을 행정복합청으로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행복’이 와서 꽂힌다. 행복청이 세종 남쪽만 개발하니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북쪽 구도심 조치원은 뿔났다. 세종시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등장한 부서가 ‘청춘조치원과’이다. 청춘, 듣기만 해도 설렌다는 청춘(靑春) 조치원이다.
네이밍(naming)을 하여서 확정된 단어의 의미나 분위기만 영향력이 큰 게 아니다. 이름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실체(實體)이다. 논산시 행복도시국에도 사회적 경제과가 있다. 사회적? 뭔지 좌파 분위기이다. 사회적 경제는 정부와 기업의 중간 지대에 속한다. 세상사 전부를 관공서가 직접 다 나서서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이익 추구 집단인 기업 역시 할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 사각지대의 일을 도맡아 해줄 단체와 사회적 기업들이 필요하다. 마을공동체를 살려내는 민관 거버넌스의 비중이 커져가는 곳은 박원순표 서울시만이 아니다.
이런 일들은 진보측에서 들고 나왔을 거 같지만, 사회적 경제에 불을 지핀 당사자는 당시 여당 선량 유승민 의원이었다. 사회적 경제과가 처음 신설된 곳은 서울 성북구청이었다. 이제 그 사회적 경제과는 논산 같은 지방도시에서 그대로 쓸 정도로 보편화 추세이다. 잘 살아보자는 데 민관이 따로 없고, 여야 진보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잘살아보세~”로 회자되는 새마을 운동은 그 브랜드와 콘텐츠를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이름은 물론 내용까지 알찼기에 끈질긴 생명력이다. 논산 새마을의 경우, 자기 돈까지 내면서 회관도 짓고 각종 봉사에 온 몸을 아끼지 않는다.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지역 공동체의 두레 정신에 십분 공감해서일 것이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은 어떠한가? 어감상, 마을 공동체를 흥겹게 하자는 분위기 같다. 동고동락은 출처 확실한 고사성어가 아니다. 공동체 일상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구호처럼 보인다. 굳이 연관짓자면 『맹자』「양혜왕梁惠王」편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친족어다. 동고동락은 수평적 분위기인 반면, 여민동락은 수직적 분위기로 읽히기도 한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딴따라를 좋아한다는 양혜왕(梁惠王)과 맹자의 대화에 귀기울여보자. 맹자 왈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獨樂樂 與人樂樂 孰樂?” “함께 즐기는 것이 더 좋다”는 왕의 답에 꼬리를 물면서 대화는 깊어지고, 드디어 ‘여민동락’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此無他 <與民同樂>也 今王<與百姓同樂> 則王矣)
유교 하면 충효를 연상하며 공맹사상이 전제왕조의 앞잡이라는 선입관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조윤제가 지은 『이천년의 공부』는 호연지기(浩然之氣), 인자무적, 여민동락(與民同樂) 등 맹자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여민동락은 맹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데, 수직적이라기보다 수평적으로도 들리는 게, 맹자가 민본주의(民本主義)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여민동락과 동고동락의 또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고통’이 선행 조건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동고~동락, 즉 순서가 ‘선 고통 후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락(樂)”을 질문해 보면 여행을 꼽는다. 지난 주에 논산시와 충남도는 전국 화백 100여 명을 논산에 초청하였다. 팸투어(Familiarization친숙+Tour)의 일환인데, 지방자치단체나 개인이 자신의 상품이나 특정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행사이다. 홍보대사 외에 SNS서포터즈단이나 유튜버들을 단체로 초청하기도 하는데, 논산시는 미술가협회 화가들을 선택하였다. 향후 이들의 작품을 통하여 탄생될 논산의 홍보 위력은 “예술은 길다”로 기대된다.
‘백제의 숨결전’ 손님 대접으로 민관이 함께 애썼다. 다만 농촌관광답게 의식주가 상당 부분 논산스럽고 농촌스러웠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웃도어 캠핑까지는 아닐지라도 민박집과 ‘들밥’을 선택했다면 그들의 화폭에 논산다움이 한껏 더 녹아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제 논산은 농촌체험관광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팜파티(Farm Party)에서도 수준급이다. 귀하게 모신 손님들에게 시골 생활 일박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여행 또한 동고 후의 동락으로 인상드리워질 거 같다.
논산시의 앞서가는 참신 네이밍을 환영하면서도, 이름값을 올바로 해야 한다는 공자의 “정명(正名)”이 명령처럼 들린다. 논산시 동고동락이 대한민국 방방곡곡 상생(相生 윈윈)의 동심원으로 퍼져나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사진]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19-07-17일자 1면 "기자의 눈"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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