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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베 Dec 13. 2018

반짝이는 그 순간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공격적인 말투가 거슬렸다. 리더에게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맞든 틀리든 자신의 의견을 내뱉었다. 모두가 조심스레 입을 떼는 것과 분명 달랐다. 첫 만남이었다. 와인 꽤나 마셔본 티가 나긴 했다. 와인 모임 치고 와인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직 몸을 사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 사람만은 달랐다. 속단했다. 저 사람과 친해질 일은 없겠구나.


오해였다.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단지 궁금해서 물은 것이었다.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감상을 말하는데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다.  만남이 반복되다 보니 새로운 면이 보였다. 우린 모두 생각이 다르다. 같은 것을 다르게 느낀다. 느낌을 바로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은 자존감이 강한 경우가 많다. 굳이 필터링을 거쳐 말을 던질 이유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꾸니 사람과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와인 모임에 술 관심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게 이상한 거다. 그냥 와인 모임도 아니고 내추럴 와인 모임이다. 아직 생소하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정보는 물론 각각 느낀 점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게 맞다. 문화는 그렇게 전파되고 정착된다. 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모임에 충실한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아주 조금 마음의 문이 열렸다.


세 번째 모임을 마치고 나서야 2차를 따라갔다. 확실히 정식 모임 때보다 훨씬 사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몇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이렇게까지 취향이 디테일하게 맞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난 대화가 거듭될수록 허리를 세우고 등을 편 다음 눈을 똥그랗게 뜨는 일이 잦아졌다. 놀랄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다. 말 그대로 버릇이다. 인지할 정도면 자극이 그만큼 강렬하고 반복되었다는 뜻이다.


미셸 공드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크크섬의 비밀>을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확률일 뿐이다. 확률이 높은지 낮은지의 문제일 뿐이다. 우린 ‘대중'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간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같은 것을 좋아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취향이 겹친다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렸다. 반짝이는 눈을 봤다.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마다 유독 눈이 반짝인다.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표정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순수해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 그 표정을 계속 보고 싶다. 보다 자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사랑스럽다. 내 얘기를 할 때도 저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과연 그 사람도 내 매력을 발견했을까.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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