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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Jan 14. 2020

감개무량 한 꾸러미

2020.01.22









감개무량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마음을 뜻하는 사자성어.

感 : 느낄 감 慨 : 슬퍼할(분개할) 개 無 : 없을 무 量 : 헤아릴 량(양)




드디어 때가 왔다.

나도, 하진이도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천년만년 내 품 속 아기일것만 같았던 하진이는

다음주면 만 다섯살이 된다.

다섯살이면 뭐 당당히 어린이다.

직접 친구를 직접 선택할 수 있고

부페식당에서 소인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의무교육을 시작하는 나이가 된다.


새삼 감개무량하다 싶어

되짚어보니

너를 만나고부터는

늘상 그랬다.


사과 한알만한 얼굴을 가슴팍에 묻고는

오물 오물 젖을 잘도 찾아 물던 첫 만남에도


임신기간에 사두었던

바닥이 폭신한 은색 메리제인을

통통한 발에 신겨주니

세걸음을 겨우 떼내고

내 무릎팍 안에 깔깔깔

폭 쓰러졌을때도


첫 학예회 날

커튼이 올라가고

제 머리통보다 큰 산타 모자를 쓴채

입을 크게도 벌려

징글벨 징글벨 노랫말을 외치는

뒷줄 왼쪽 세번째 너를 발견했을때도


매일 밤 씨익 씨익 소리를 내며

잠조차도 참 열성적으로 자는

너의 이마를 쓸어줄 적마다


감개무량.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마음.




남편이 며칠 전

페이스북에 6-7년 전 사진을 보더니

문득 물어보았다.


"넌 그때로 돌아가면 어떡할꺼야?"

"뭘?"

"같은 선택을 할것 같아?"

"어떤?"

"엄마가 되는거."

"응. 그럼.

우선은 하진이를 만나야 하니까 그렇고,

둘째로

나는 엄마가 된 후의 나를 더 좋아해."


오년전과 비교하면

나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된 듯 하다.


사소한것부터 

사소하지 않은것까지 모두 다.


운전 습관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

시청하는 티비쇼,

사는 장소,

외식할때 주문하는 메뉴,

주말과 여가를 즐기는 방법,

어울리는 사람들,

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등


많은것이 변했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꽤 필요했지만

이런 변화 이후

얻은것이 의외로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감정이

넓고도 깊어진 것을 느낀다.


매일같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느낀다.


엄마가 된 후로의 삶만큼

감정과 감격으로 가득차

풍부하고 넘치는 날들은

이전에는 없었다.

이 넘치는 감정들은

간혹 힘에 부치는 날에도

나를 좋은곳으로 데려다준다.

다정하고 따듯한 곳으로.







화폐도 50원 100원 5천원 5만원

5단위로 끊어주는 만큼

5라는 숫자는 뭔가

하나의 꾸러미를 채운듯한 기분이 든다.


시니컬하고 드라이하던

내 인생을 

감개무량으로 그득 채워준

하진이 인생의 첫 묶음.


첫 한 꾸러미를

끝도 없이 헤아릴 수 없는

감동으로 채워주어 고마워.


두번째 꾸러미는

더 많이 기대해보도록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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