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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Feb 09. 2020

갈등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음부리 카페 탄생 설화 - 마을회의 퍼실리테이션

2015. 11. 2. 제주 한림읍 월림리에서 마을회의가 있었다. 

마을카페의 설치 여부를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결과정에서 몇 가지 놀라움이 있었다. 

이에 대한 기록이다.


  

워크숍 아젠다



1. 개최 배경


<참관을 통한 퍼실리테이터의 양성과 실제 주민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두마리 토끼 잡기 프로젝트>


협치는 제주도는 핵심 정책과제 중의 하나였다. 제주도인재개발원에서는 이에 부응하여 협치를 현장에서 이루어낼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고자 하였고, 이의 일환으로 2015년 7월 도민 21명을 선발하여 24시간의 퍼실리테이션 종합교육인 '이니셔티브'를 교육하였다.


교육을 수강한 도민들은 퍼실리테이션의 강력한 협치 방법론에 크게 공감하였고, 24시간의 교육만으로 퍼실리테이션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음을 알아채고,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도 인재개발원은 이의 진심을 반영하여 협치 퍼실리테이터로서 현장 경험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현장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현안이 있는 3개 마을을 선정하여 실제 워크숍을 개최함과 동시에 전문가의 실제 워크숍의 진행과정을 직접 체험하도록 하여 협치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는 두 마리 토끼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된 것이다.


  

협치 퍼실리테이터 양성을 위한 '쿠 퍼실리테이션 이니셔티브' 수강 장면 



2. 퍼실리테이터의 현장교육 도전


현장교육의 필요성은 절감하였으나, 막상 이를 실현하는 데는 여러가지 난관이 따랐다.


우선 적절한 현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협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실제 이슈와 현장이 있어야 했다. 실제로 협치를 이루어내야 하는 현장은 많겠지만, '그 것을 도와 드릴 테니 신청해 보세요'하고 인재개발원에서 공문을 보내니 정작 응답해 오는 곳은 없었다.


담당 공무원은 실망하지 않고, 의지과 끈기를 가지고 여러 마을과 연락을 취했다. 그 결과 3개의 마을로부터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억지로 인재개발원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풀고자 하는 현안'이 있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이를 면밀하게 확인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장 워크숍의 참관을 준비하고 있는 협치 퍼실리테이터



마을카페의 설치 여부를 놓고 주민 사이에 찬반이 갈려 추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장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대상 마을을 정하고 나니 이제 일정이 문제가 되었다. 현장교육을 주도할 메인 퍼실리테이터의 일정, 마을의 사정, 공무원의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한 일정을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난관이었지만, 끈기를 가지고 조정하여 11월 2, 3, 4일로 워크숍 및 현장교육 일정을 확정했다.



이번에는 협치 퍼실리테이터의 일정이 문제가 되었다.

후속교육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고, 그들의 요청에 의하여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막상 일정을 정하고 나니 이 일정에 부합하는 사람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적은 인원이지만 도내에 도정의 협치를 담당해 갈 자체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협치 도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갈등을 잘 해결할 줄 아는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많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런 과정을 몇년은 거쳐야 유능한 갈등해결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다.>



현장 워크숍을 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사전 대화의 기록 - 케이가 정리




3. 현장에서 생긴 세 가지 놀라움  


전문 퍼실리테이터와 퍼실리테이션 수련자의 경계선에는 '신뢰의 선'이 자리잡고 있다.

퍼실리테이터가 참여자를 얼마나 신뢰하느냐가 퍼실리테이션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이 된다. 이는 갈등해결을 가능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퍼실리테이션의 현장교육은 바로 이 점을 현장에서 확신토록 해주는 일이다.


강의실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사례를 통하여 신뢰로 이루어내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이를 실제현장에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그 '신뢰의 선'을 과감하게 넘어 보지 못하고 자꾸 물러서게 된다. 


그렇게 할 경우 퍼실리테이션은 고작 요란한 도구의 사용자로 전락하게 된다. 평소와 다른 회의 도구를 사용할 뿐 정작 퍼실리테이션의 깊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만을 낳는다.


주민들의 논의 중심에 있던 농산물 창고 - 농협에서 저가로 구입





<첫 번째 신뢰는 참여자의 '무관심'에 대한 신뢰다.>


워크숍에 참석한 참여자에게 '오늘 오시면서 무슨 기대를 가지고 오셨나요? 포스트잇에 그대를 적어서 탁자위에 붙여보세요.'라고 요청한다.


이 때 수련 중인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들이 제대로 된 기대를 적어내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근사한 의견이 적히기를 기대하고, 심지어 근사한 의견이 나오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실수를 범한다.



오늘의 기대에 대한 주민들의 응답



전문 퍼실리테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밥 준다고 해서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왔어요.'라고 적으셔도 좋습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좋으니 생각 나시는 대로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수련받는 퍼실리테이터에게는 첫 번째 놀라움이다.


이 발언이 가능해 지는 것은 참여자가 워크숍에 대하여 '무관심'해도 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퍼실리테이터의 의지 때문이다. 


이 퍼실리테이터의 발언을 듣고 정답을 찾으려던 참여자들은 마음을 바꾸어 자신의 의견을 적어내기 시작한다. 요청자의 의도에 맞추어 근사한 답을 찾을 부담을 덜게 되고 그 때부터 회의 참여에 대한 불만과 부담에서 벗어난 편안한 표정과 미소가 감돌게 된다.


실제로 적어낸 주민의 기대를 읽어보면, 워크숍의 실제 주제와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장님께서 마을카페에 관하여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알고 왔다고 적어낸 사람은 거의 없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적어내지 않았다고 해서 워크숍의 성패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논의에 푹 빠져있는 주민






<두 번째 신뢰는 참여자의 '이탈'에 대한 신뢰이다.>


"자!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쁘신 분은 지금 집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회의가 가치없는 것이라면 집에 가셔서 바쁜 일을 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이 회의가 가치롭다고 생각하시면 계속 남으셔서 서로를 도와주셔도 좋구요."


수련 중인 퍼실리테이터는 마지못해 참여한 참여자가 혹여 집으로 돌아가서 분위기 흐트러질까 봐 걱정한다. 그리하여 쉬는 시간을 주지 않거나, 쉬는 시간에 집에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전문 퍼실리테이터는 회의가 의미없거나 정말 바쁜 일이 있어 집에 가는 사람들 붙잡지 않는다. 이 날 위 발언에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은 마지못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회의가 정말 값어치가 있어서 남아있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순수한 의지에 의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 순수한 자발성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전문 퍼실리테이터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을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퍼실리테이터의 신뢰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마지막까지 참여했다.





<세 번째 신뢰는 주민의 '헌신'에 대한 신뢰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본 결과, 문화카페에 관련된 주민의 갈등은 마을에 이를 책임지고 제대로 운영할 사람이 없을 테니 운영이 부실해질 것이고, 그래서 반대한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퍼실리테이터는 운영할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현장에서 확인시켜 줌으로써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시도했다.  


"이제 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을에 문화까페를 어떻게 만들자는 것에 대한 좋은 의견을 많이 내주셨는데요. 이제 이 문화까페를 누가 운영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분이 계시면 포스트잇에 적어서 내주시기 바랍니다."


퍼실리테이터의 발언을 마치자마자, 

"거봐 아무도 없어!" 

테이블에서 당연하다는 듯한 외침이 있었다.


"아! 조금만 기다리시면 하신다는 분이 있으실 겁니다."

(기다림)


한 분 두 분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맞아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원래 있었어.'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들이고 누구도 희생하거나 헌신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일견 맞다. 그러나 우리의 깊은 마음 속에는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다. 또는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도 손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전문 퍼실리테이터의 신뢰다. 


  

자발적 운영자로 명단을 올린 사람들



퍼실리테이터는 다시 확인했다.

"자! 이분들이라면 문화카페를 잘 운영할 만 한가요? 어떠세요?"

"네, 잘 할 것 같아요."

"그럼 모두 박수를 쳐서 문화카페를 잘 지어 운영해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도 되겠습니까?"

"네~" (박수) 



4. 피드백


워크숍이 끝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늘 함께 한 운영진과 피드백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는 훈련의 일환이었으므로 더욱 공식적인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문화까페의 설치에 합의하고, 까페에 무엇을 담을지, 까페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주민의 의견이 잘 모아졌다. 


이 행사를 개최하기까지 어려운 난관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공무원의 얼굴에서는 깊은 미소가 배어 나왔다. 함께 지원 나온 동료 공무원들의 얼굴도 매우 밝았다.


수련 중인 퍼실리테이터들은 세 가지의 놀라움을 피드백 시간에 말해 주었다.   

정말로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라는 신념을 지키는 것, 

'바쁜 사람은 가시라'는 말을 감히 실제로 하는 것, 

자발적인 운영자를 손들도록 요청한 것


이 세 가지 모두 퍼실리테이터의 참여자에 대한 신뢰에 달렸다. 

수련 퍼실리테이터들은 강의에서 강조한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협치가 어떻게 가능해지는 지를 눈으로 보면서 배웠다. 그리고 성공적인 퍼실리테이션 워크숍의 테이블 퍼실리테이터로서 일원이 되었다.



  



이 것이  '음부리카페'의 탄생 설화다.
갈등은 일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학습하는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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