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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Jan 08. 2024

01. 예능 PD, 마케터로 첫 걸음을 떼다

멘붕 - 도대체 뭐부터 해야하는 것인가 

앞서도 얘기했지만 굳이 잘 다니던 방송국을 때리치우고 영국으로 석사 유학을 떠난 건 더 이상 TV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간 배운 콘텐츠 제작 기술을 완전히 버리고 전혀 새로운 일을 할 용기도 없었던 것..� 


그러던 중 <킬링 마케팅: 그들은 어떻게 비용을 수익으로 바꾸었나?>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꽤 두툼한 책이었는데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콘텐츠가 마케팅의 핵심이고, 나아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콘텐츠 예찬이었다. 


강호동 왈,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랬던가? 그 책의 철학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는 이후 마케터로서의 스스로의 값어치를 너무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런던의 몇몇 회사에 마케터로 지원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예능 PD생활 10년 짬밥에 '침소봉대' 스킬 하나만큼은 제대로 배운 나는 CV(이력서)와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콘텐츠 크리에이터였고 이를 통해 얼마나 마케팅에 기여할 수 있는 지를 열변했다. (물론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조금 과한 형용사들로 치장하긴 했지만). 인터뷰 과정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열변하며 앞서 읽은 책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해댔다. 


몇 번의 인터뷰 끝에 (가엽게도) 글로벌 학생 기숙사 중계플랫폼인 Uhomes에서 나를 최종적으로 비디오 콘텐츠 매니저로 채용하기로 결정한다. Uhomes는 예비 유학생들이 유학지의 기숙사를 쉽게 검색할 수 있게 해주는 중계 플랫폼으로 한국으로 치면 '직방'이나 '다방'정도가 비슷한 어플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물론 나도 지원하기 전엔 이곳이 뭐하는 회사인지도 몰랐다. 




1. 한국인 팀의 팀장이 되다 


처음에 회사에서 내게 맡기고자 했던 롤은 회사의 브랜드를 알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디오콘텐츠 담당자였다. 하지만 나는 신설될 한국마켓팀의 팀장으로 발령내 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건 유튜브 콘텐츠나 만드는 게 아니라 마케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자의 신념이 이렇게 무섭다). 


결국 나의 바람대로 나는 팀원 2명을 거느린 작은 한국팀의 팀장이 되었다. 목표는 매우 명확했다. 한국 내에 Uhomes의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고, 이를 통해 한국 학생들로부터의 리드 수를 늘린 후 최종적으로 그것을 판매(기숙사 예약)으로 전환시키는 것. 


하지만 명확한 목표와는 반대로 나는 뭐부터 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제서야 이 일이 내가 지난 10년 밥먹듯이 했던 콘텐츠를 기획하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방영하고 이후에 시청률로 모호하게 평가받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게다가 내게 모든 전권을 쥐여주는 지나치게 높은 업무 자유도는 마치 베테랑인냥 까불었던 초짜 마케터인 나를 멘붕이 빠뜨렸다. 뽀송뽀송한 2명의 팀원들은 그저 나만 초롱초롱 보고 있었다. � 



2. 에라모르겠다! 일단 시장조사부터 


우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전공자도 아닌데 고민해봐야 좋은 답 따위가 나올 리가 없다.먼저 당면한 과제를 그동안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과 최대한 유사한 방식으로 한 번 치환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PD입장에선 결국 "유학을 앞두고 집을 구하는 학생들이 제일 좋아할만한 TV프로그램을 기획해오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할 것들은 명확하다. 프로그램 기획단계에서 보통 예능 PD들은 작가들이랑 같이 타겟 시청자들이 뭘 좋아할까, 무엇을 궁금해할까 뭐 이런 걸 조사한다. 일종의 시장조사인 셈. 그러면 대충 거기에 맞는 구성안이 나오고, 프로그램 콘셉트도 나오고, 그에 맞는 출연자를 섭외하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선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유학을 많이 가는 지, 어디로 많이 가는 지, 그리고 주거지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고려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팀원들과 함께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한국 학생들이 매년 얼마나 유학을 가는지(124,320명), 어디로 가장 많이 가는지(미국, 중국, 일본 순)는 이미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데이터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데이터들, 예를 들면 유학생들이 어떤 주거지를 선호하는지(원룸을 선호하는지 기숙사를 선호하는지), 어떻게 계약하는지 대한 조사는 따로 진행된 게 없었다. 이 지점이 우리가 1차로 부딪힌 난관이었다. 

 



3. 내가 이용자라면 왜 굳이 Uhomes를 써야 할까? 

둘째로 Uhomes를 홍보하기 위해선 우선 나부터 Uhomes의 장점이 납득이 되어야할 터이다. 나였어도 쓰지 않았을 플랫폼이라면, 그것을 남이 쓰게 설득할 유일한 방법은 사기 말고는 없다. 혹시 우리는 사기를 쳐야 하는 상황인가? �


다행히도 차근차근 정리해보니 Uhomes를 굳이 이용해야 할만한 매력적인 이유들이 제법 많았다. 우선 인터페이스가 편리해 사설 기숙사들을 기호에 맞게 검색하기가 편리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공짜로 컨설팅을 해주는 서비스가 가장 핵심이었는데, 이 공짜 컨설팅이 가능한 이유는 서비스비용을 기숙사로부터 받는 비즈니스 모델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료 컨설팅은 장점인 동시에 투명하게 납득시켜야할 것이라는 요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용자들이 이 비즈니스 구조를 알지 못하면 오히려 '무료'라는 점이 마치 중고차 사기꾼딜러 초롱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업계가 한창 성장중이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경쟁적인 케시백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직접 기숙사와 거래하는 것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기숙사를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결과적으론 현 시점에서 학생들은 Uhomes를 이용해 기숙사를 예약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인 상황. 


그렇다면 문제는 이걸 알리는 일, 즉 홍보이다. 




4. 일단 시급한 것은 홍보 

물론 인스타그램 좋고, 유튜브 좋고, 블로그도 좋은 건 세상천지가 다 안다. 근데 언제 팔로워 0에서 출발해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커뮤니티로 성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말 그대로 Long-term 플랜. 내겐 그 사이에 즉각적으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난 계속해서 내 능력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유학원들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타겟 고객들을 아주 오랜 전부터 꽉 쥐고 있는 최고의 잠재적 비즈니스 파트너들! 다행히도 Uhomes는 이러한 파트너들과 커미션을 쉐어하는 멋진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학원들은 우리가 부딪혔던 1차 난관, "학생들이 어떤 주거방식을 선호하고, 어떤 방식으로 주거지를 찾는가"에 대한 정보들을 물어볼 수 있는 가장 신뢰도 높은 곳들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우리 팀원들은 만사 제치고 우선 유학원들을 리스트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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