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편하다는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로, 불편하다는 '편하지 않아 거북하다'로 정의되어 있다. 두 단어에는 자연스러운가 아닌가 그리고 여유로운 공간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 같다.
아침에 승상산을 올라가는데 양발이 벗겨져 자꾸만 걸리적 거린다. 어쩔 수 없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운동화를 벗어 양말을 고쳐 신고 올라갔다.
하지만 양말이 한 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르막을 올라갈 때마다 벗겨져 걸어가기가 불편하다. 양말이 벗겨져도 의식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를 않는다.
그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 둥치에 기대거나 등산지팡이를 집고 서서 양말을 고쳐 신는다. 도대체 양말이 발에서 벗겨지는 원인이 무엇일까.
공장에서 양말을 잘못 만든 것인가 아니면 내 발이 양말에 맞지 않아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운동화를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양말이 벗겨지는 것일까.
산에 오르며 양말을 고쳐 신을 때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누구를 탓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양말에는 산에 올라가거나 천변을 걸어갈 때마다 자주 벗겨지는 것도 있고 벗겨지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양말을 벗겨지는 것과 벗겨지지 않는 것을 표시해 놓지 않았다.
양말 탓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잘 벗겨지는 양말이나 벗겨지지 않는 양말이나 둘 다 편리함과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먼저 자주 벗겨지는 양말은 산을 올라가는데 불편하지만 반대로 벗겨진 양말을 고쳐 신기 위해서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어 좋다. 잠시 쉬면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는 여유로움을 준다.
이에 비해 잘 벗겨지지 않는 양말은 산을 오를 때 신경 쓰지 않아 편하지만 몸이 지칠 때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야 하는 불편 아닌 불편함이 따른다.
모든 사물에는 편리함과 불편함이 존재하듯이 양말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비록 오늘은 양말이 잘 벗겨지는 것을 신고 왔지만 다른 날보다 자주 쉴 수 있어 덜 힘들기는 하다. 결국 편리함과 불편함의 사이에는 마음의 여유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편리함에는 여유가 스며들 공간이 없어 보이고, 불편함에는 불편함 사이사이에 여유란 시간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집을 나설 때 일부러 벗겨지는 양말을 찾아서 신고 길을 나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부러 벗겨지는 양말을 찾아 신고 나올 사람은 없다. 집을 나와 걷다 보니 양말이 벗겨지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지 일부러 벗겨지는 양말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디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양말이 벗겨지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질 이유는 없다.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선택하되 그에 대한 편리함과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것도 인생을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