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가끔 난 어디쯤 머물고 있는가 하며 인생을 돌아보곤 한다. 인생이란 돌아보면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남아야 할 시간이 더 짧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삶에서 어떤 선택과 과정을 통해 남은 삶을 좀 빛나게 할 수 있을까. 삶을 빛나게 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시간이 깊어갈수록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난 어디쯤 머물러 있나 하며 자주 돌아보았다. 어디쯤 머물러 있나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어디라는 것은 장소적 의미로 지금 여기를 말하는 것이고, 머문다는 것은 지리적 의미로 지금 이 자리를 말한다.
두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이란 순간에 난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는 현재적인 말이 된다. 또한 철학적인 의미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이 어디쯤에 와 있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성찰의 의미다.
삶이란 것을 나이로 백을 기준했을 때 내 삶은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거쳐 중년기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 육십의 중반에서 백이란 숫자는 가까워 보이고 지나온 육십여 년은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은 지나면 대단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앞으로의 길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시간이 대두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지난 삶을 부정하거나 잘못 살아왔다는 말은 하기 싫다.
삶은 지난 시간을 부정한들 아니면 잘못 살았다고 한들 그 삶이 올바르게 치유되거나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부정과 잘못 살아온 시간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삶의 일부이거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종종 난 어디쯤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을 자주 물어봐야 한다. 그런 시간이 많을수록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보다 명확해진다.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지 삶 따로 죽음 따로는 없다. 삶과 죽음은 서로 얽히고설켜 돌아가지 삶과 죽음이란 이분법적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백세 시대에서 백세 이후는 무엇인가. 삶이 끝나고 죽음이란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업을 잡기 위해 노력하던 지난 시절과 직업을 잡고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지나자 본래인 나로 되돌아온다.
세상에 태어날 때는 혼자였다. 그러다 부모에게 떨어져 독립하고 직장을 물러나자 다시 혼자인 세계가 기다린다. 아기 때와 나이 들어서 맞이하는 세계는 분명히 다르다.
아기 때는 세상 물정 모르고 오롯이 부모 밑에서 성장해야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부모의 도움은 사라지고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삶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
노년을 맞아 노년기를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난 어디쯤 머물러 있는가 라는 말을 자주 묻는 것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노년은 홀로 고독하고 쓸쓸하게 보내게 된다. 고독과 쓸쓸함을 견디고 버티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을 돌아봐야 한다. 인생은 돌도 돈다. 돌고 돈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절차가 반복된다는 의미다.
가는 길이 어디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그 길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든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자주 난 어디쯤에 머물고 있나라는 것을 묻고 또 물어서 가야 한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것은 어디쯤 머물고 있나라는 물음에 대한 작은 답이자 실천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 위해서는 내일도 자신에게 난 어디쯤 머물고 있나라는 물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