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밥상

by 이상역

나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 태어났다. 경자생 쥐띠로 외진 시골에서 태어나 어머니에게 생일마다 따뜻한 고봉밥상을 받아가며 자랐다.


지금도 생일날에 고봉쌀밥과 미역국이 차려진 밥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저녁에 생일이라고 시루떡을 쪄서 가족과 함께 먹었던 생각이 난다.


그 시절은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주식으로 먹던 때라 생일에 흰쌀밥을 고봉으로 담은 밥을 아침에 반을 먹고 반은 남겨두었다가 점심에 먹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생일날에 생일 케이크나 생일 노래나 생일 선물은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어머니는 팔 남매나 되는 자식의 생일을 일일이 기억해서 챙겨주셨다. 어머니는 자식의 생일날을 기억하셨다가 당일에 흰쌀밥과 미역국을 끓여 축하해 주셨다.


그러다 자식이 결혼하고 나자 전화를 걸어 생일날 밥은 잘 챙겨 먹었느냐고 안부를 곤 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구순을 넘기자 자식의 생일을 잊으신 건지 생일날에 전화도 끊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생일 밥상은 아버지가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생일은 음력 2월 하순인데 생일날은 봄이고 농사철이 시작되는 시기다.


아버지 생일날이 되면 안방을 청소해서 큰상을 펼쳐두고 마당에 나가 빗자루를 들고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마을 아저씨들을 찾아다니며 진지 잡수러 오시라고 인사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아버지 생일날에는 마을 어른들 이십여 명을 초대해서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 생일뿐만 아니라 마을의 아저씨들 생일에도 아버지는 초대를 받아 아침을 먹고 오시던 기억이 난다.


어제는 다음 달에 막내 결혼으로 생일을 앞당겨서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다. 두 딸네와 여동생 가족이 모여서 문정동의 한 식당에 모여 생일 밥상을 먹고 헤어졌다.


고향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챙겨주셨는데 이제는 부인과 딸과 여동생들이 생일을 챙겨준다. 게다가 손주까지 참석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줘서 생일의 의미도 특별했다.


생일이란 자신이 세상에 태어 난 날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은 생각나지 않지만 궁벽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울 하늘 아래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만 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기사 그때는 어디 가서 살겠다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꿈도 꾸지 않고 순수하게 지내던 시절이다.


사람의 꿈은 늘 변하고 성장한다. 내가 오늘의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은 부모님자상한 보살핌과 형제들의 우애와 아내와 두 딸과 손주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 덕분이다.


이순의 중반에 모처럼 문정동의 한 식당에서 가족과 여동생네 가족들이 모여 두어 시간 동안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는 가족의 생일날에 모이는 인원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가족이 하나둘씩 생겨나니 생일 밥상에 모이는 숫자도 불어난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받던 생일날 밥상만은 못하겠지만 서울의 변두리에 살면서 생일이라고 챙겨주는 가족이 곁에 있어서 좋다.


특히 손주가 "할아버지! 생일 축하해요?"라는 말과 함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불러준 생일 축하 노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손주의 생일 축하 노래는 마치 타향에서 살아가는 내 가슴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생명수와 같다. 그 노래에는 그간 삶을 참 잘 견디며 살아왔다는 위로와 위안을 주는 평안한 소리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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