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욕할수 있나.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은 쉽지만은 않다. 어떤 직업이든 쉬운 일은 없을 테지만 , 대중 앞에 나선다는 것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중에 평가 앞에 서게 되는 일이다. 한창 유튜브를 활용하여 , 나의 일상을 기록해 올린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내가 사는 곳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아파트 이름만 나왔지만.
사람은 내가 살아온 방식만으로 세상을 보는 법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없는 법이다.
'띵동' 하고 소리가 났다.
그날 아침 '일요일'. 사업을 하고 있던 나는 오늘은 쉬는 날이라며 ,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아침에 누군가 나를 찾아 올리가 없었다.
"누구세요? "라고 물으니 택배라고 하였다.
"무슨 택배요? "라고 물으니 "그냥 택배"라고 하는 것이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촉'이 발동됐다. 너무 오래된 집이라서 집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없었다. 분명 저 사람은 택배아저씨가 아니다. 그때는 새벽배송도 없었을 때라 일요일 택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침착하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친구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택배기사라고 속인 누군가가 집 앞에 와있으니 확인차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문득 며칠 전 몇 년간 나를 괴롭혀 오던 스토커 한 명이 생각이 났다. 그 스토커는 몇 년 동안 나에게 DM을 보냈는데 , 그의 말로는 내가 자신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고 자기 집에 들어와 내가 몰래 물건도 훔쳐 갔고 , 또 어떤 유명 연예인과 연애를 했었던 적도 있다고 하였다.
그 메시지를 보냈던 인물이 , 의도치 않게 쓱 스쳐 갔다. 여자의 직감이란 것은 이럴 때 발휘되는 법이다.
그 메시지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 그 사람에겐 그것이 너무나도 사실인 것처럼 믿고 나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 입장에선 지금 예전에 자신과 사랑을 나눈 , 심지어 결혼을 약속한 여자 집에 와 있는 것이었다.
얼른 침대로 달려가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메시지 함을 열었다.
또 그자에게 DM이 와있었다. 그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내가 오늘 널 찾아가 이야기를 하고 , 그러고도 나를 모른다면 내가 오늘 죽겠다. " 보자마자 온몸이 차가워졌다. 어떻게 찾아왔는지부터 ,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4년 동안 질기게 메시지를 보내던 스토커가 정말로 날 찾아온 것이다.
나를 죽이겠다는 이야기는 쓰여있지 않았지만 , 자기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야기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뭔가 일을 벌여도 벌이겠다는 각오로 찾아온 것 같아 그 자리에 꽁꽁 언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죽음'이란 단어는 참으로 가볍지 않다. 30 년 된 아파트의 오래된 문 하나 사이를 두고 , 그 스토커와 나는 대치중이었다.
나는 당장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고 , 아까 전화를 걸었던 친구의 남편이 도착해 문밖에서 추궁을 시작하였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남의 집 앞에 와계신 거죠? 택배인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요? "
" 저는 이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남자친구이고, 결혼할 사이입니다 "
밖에서의 대화가 얇은 문을 뚫고 들려왔다.
그 사람은 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저 여자가 자신을 알고 있고 , 자신의 자취방에 온 적도 있다고 그 자신과 나의 관계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 중이었다. 이윽고 경찰이 도착하여 , 그 사람을 경찰서로 연행했다. 나도 조사를 위해 나중에 따로 경찰서로 갔다.
천천히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그는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키는 190 은 돼 보이고 , 덩치도 꽤나 커 보였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분명하게 경찰에게 나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찰분은 리플리 증후군인 것 같다고 하셨다. 자신이 믿는 상상이 정말로 너무 실제 같이 믿어져 , 자신의 상상을 진실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아파트만 나왔는데 어떻게 집을 찾았느냐고 묻자 , 아파트에 우편함을 모두 뒤져내어 알아내었다고 하는 것이다. 아주 잠시 나왔는데도 , 사람이 의지만 있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의 한가로웠던 일요일은 공포로 칠해졌으며 , 문 하나를 두고 만약 내가 , 문을 열어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사를 가든 어딜 가든 나의 사생활 노출에 대해 , 없던 걱정까지 만들어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화려한 인플루언서 뒤에 겪어야 하는 당연한 몫인 셈이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 혐오하지 않을까 온갖 걱정들은 자동반복적으로 나 스스로를 이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기 시작했다.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대비하고 염두하게 하거나 , 조바심 나게 한다. 과거에서 올라온 어떤 느낌을 믿어 , 그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 그 느낌을 피하기 위해 나 스스로 그 감정에 저항하게 되고 , 상황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게 만들었다.
어쩌면 저 사람의 기억도 그런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어릴 적 , 어떤 트라우마로 인하여 나처럼 왜곡된 세상을 믿고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
물론 저것은 범죄 행위이지만 , 나는 그로 인해 나의 생각의 왜곡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는 안 좋아 보였으나 , 지금은 좋은 일이 되었다. 지금은 좋아 보이고 쾌락적인 일이 후에는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
내가 그에게 과연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건 당신 잘못이야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환경에 의해 새겨진 자신의 생각을 믿고 살아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