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했더니 친한 회사 언니가 속보를 보냈다. 뱁새 한 마리를 입양해 키보드에 얹어두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건 속보 중에도 긴급속보..! 서둘러 언니한테 갔다.
같이 사자며 링크를 보내줬을 때만 해도 정말 정말 꾸욱 참아냈건만, 조막만 한 발바닥과 옹골찬 부리를 보는 순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화과자마냥 모여있는 뱁새를 보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엄청나게 유명한 속담.
뱁새가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다.
키캡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이 속담이 오늘따라 유달리 이상하게 느껴졌다.
힘에 겨운 일을 억지로 하면 도리어 해만 입는다는 뜻풀이.
결국 네 분수에 맞는 일을 찾고 그것을 하라는 건데.. 이상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1. 분수에 맞는 일이 뭔데?
타고나길 뱁새로 타고났다면 뱁새답게 살라는 게.. 초기설정값만 무한 신뢰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완전히 랜덤게임으로 태어난 우연한 존재이기 때문에 초기값이 전부라면 그것은 공정한 일인지를 고민해 보게 된다.(동시에 정말 정확하고 공평히 분배되었다면 이후에 결정되는 일들은 어떤 것이라도 공정한가? 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 볼 필요는 있다. 일단 이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만약 공정하다고 한다면 어디서부터 초기값으로 봐야 하는 걸까? 태어나면서 주어진 환경? 수능점수? 첫 입사한 회사? ?!?!??
나는 자꾸만 변화하는 가능성에 기대하게 되는 사람인지라 분수에 맞게 살라는 말에 자꾸 삐딱선을 타는지도 모르겠다. 분수는 누가 정하는데? 그리고 분수는 안 변해? 살다 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더라? 제곱근이 등장하거나 무한 곱셈동력을 갖게 되는 날도 있다. 그래. 사람은 변한다.
백번 양보해서.. 분수에 맞는 일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뱁새에게는 엄청나게 무모한 일이라고 치자. 그런데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도전은 도전이다. 모든 시도는 용기가 필요하고, 나는 그 점만으로도 뱁새한테 기립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리고 솔직히.. 오지랖이야.. 정말 가랑이 찢어지는 게 걱정됐으면 후시딘 들고 따라다니는 게 어떨까? 아니면 전동킥보드라도 빌려주시던가요ㅠㅠ
2. 황새가 너무한 거 아닌지 (..)
쫓아오는 뱁새를 못 봤다면 몰라도, 기척이라는 게 있는데 알아차렸으면 같이 가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자기를 따라오는 이 뱁새, 보기보다 쿵짝이 잘 맞는 뱁새일 수도 있는데!! 너무 매몰찬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꼭 같이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쩔쩔매고 있는 뱁새를 봤다면 등에 살짝 태워주는 배려를 할 수는 없었느냔 말이다.
황새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없으니까. 건빵 속에 별사탕 안들어가 있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듯이. 하지만 내가 인생을 고를 수 있다면 별사탕 들어간 건빵봉지를 고를 것 같다.
3. 뱁새가 어떻게 따라갔을 줄 알고?
뱁새가 어떻게 따라가는지 본 사람? 순수하게 정말 “두 다리로” 쫓아갔을까? 본인이 다리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냅다 뛰었을까? 적당히 뛰어보다 멈췄을 수도 있고, 굴러갔을 수도 있고(구르진 않았겠지..), 십이지신 동물들의 달리기 경주에서 소에게 매달렸던 쥐의 묘책처럼 황새 목덜미에 살짝 붙어 조금은 야비하지만 편안하게 갔을 수도 있다.
결국 뱁새가 황새를 쫓다가 어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 뱁새가 아니고,
내가 쫓는 황새가 어떤 황새일지도 모르고,
뱁새에게 유리하게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요즘 황새는 멸종 위기종이라 황새 자체를 찾아보기도 힘들다구.. (엥.. 그래서 뱁새가 냅다 달려드는 건가..? 리미티드 에디션.. 탐나긴 하지..)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삶인데 분수에 얽매이지 말고 가랑이가 찢길지언정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