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저녁: 두 번째 글
생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는 날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매년 생일을 기다린다. 생일만큼은 많이 오글거리더라도 봐주는 날이라 그렇다. 평소 장난만 치던 친구들도 생일이면 저마다 애정표현을 진하게 건네곤 했다.
“네가 있어서 좋아.”
“축하해줄 수 있어서 기뻐.”
“사랑해~~~!”
“뭔데 이렇게 기특하지. 마이 송”
“내년에도 (노래) 불러줄게!ㅋㅋㅋ”
“아무리 바빠도 매년 두 번은 이렇게 밥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 하면서 보내자.”
수줍은 듯 드러나는 마음들이 하나같이 좋았다. 사람마다 말씨나 표현이 달라 건네는 말들은 다채롭고 다정했으며, 무엇보다도 달았다.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한 켠에 모아두니 더없이 기쁘다. 달짝지근한 말들을 수확하면 방 안이 뜨끈해지고 온통 환해지는 모양이다.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서 든든하게 먹고 한숨 늘어져 잠든 것처럼 푸근했다. ‘사랑하는 00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엔 지난 추억과 잊지 못할 사건들, 그때의 심정들이 빼곡히 쓰여있다. 직접 연주하고, 목소리를 담아 부르는 축하 노래에는 건반 튕기는 소리까지 담겨서 녹음할 당시 당신의 모습이 생생하다. 생각나서 만들었다고 주섬주섬 꺼내는 도시락은 조금 식었음에도 그 온기가 대단하다. 강의실 칠판 한가득 축하 메시지를 담아 깜짝 놀래켜주는 친구들 앞에선 눈물이 자꾸만 쏟아진다. 마음으로 건네받은 축하엔 유통기한이랄 게 없다. 언제든 다시 꺼내 봐도 처음 전해진 감동 그대로, 싱싱했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 곡식이 다 떨어진 날, 사는 게 좀 고달프거나 마음이 주린 날 열어보기에 딱 좋았다. 생일날 받아드는 그들의 마음은 내게 목을 축이고 몸을 뉘일 수 있는 샘터가 된다.
열어야만 닿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마음이라고,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말하는 사람이었고, 건네는 사람이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같은 방식이었다. 축하와 위로는 말이나 글이 되어 전해졌고 마음으로 건네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걸로는 부족하다. 이제 반드시 열어야 하는 건 지갑이 되었다. 지갑을 열지 않으면 마음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말로만 때우는 사람’으로 전락하곤 했다. 분명 처음 선물의 시작은 ‘순수한 관념’으로서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조금 더 짙게 표현하고 싶어서 곁들이던 선물이 거래 관계로 변질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정보가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물질적인 주고받음을 당연한 문화로 만들고 있었다. 카카오톡에서는 어느 날 생일인 친구를 알려주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그 옆에 ‘내게 선물 준 친구’까지 띄우기 시작했다. 편하자고 만든 기능일 텐데 마음이 여간 편치 못하다. 선물을 주기엔 먼 사이지만 생일을 안 이상 축하는 해야겠고, 축하한다는 말만 전하기에는 머쓱하다.
그렇게 하나둘 생일 축하를 빙자한 선물 교환식이 서둘러 거행되고 있다. 예전에 내게 선물을 보내줬던 친구의 생일날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서운함과 이름 모를 어색함이 감돈다. 덜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이에 축하 선물이 올 때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 때로 형편이 어려워 축하한다는 말만 전해야 하는 날에는 구구절절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선물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낸다. 동시에 선물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금액대를 비슷하게 맞춰주는 게 센스 있고 예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올해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다면, 네 생일 역시 챙기지 않겠다는 절대적 거래 관계가 움튼다. 우리가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사이 한바닥씩 써주던 편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더니, 선물에 덧붙이는 “축하해요” 메시지 정도로도 충분해진다. 생일은 곧 선물 받는 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위시리스트가 등장했고, 우리는 별 고민 없이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 짧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오 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 된 요즘의 축하법. 분명 축하는 풍요로워졌는데, 귀히 여기던 마음은 빈곤해지고 있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관계 속의 개인들이 서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관심을 관계 바깥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돈으로 환산되고, 돈이 마음을 대신하며, 함께했던 시간 전체가 투자, 기대, 이익, 손해, 청산 같은 경제용어로 기술되기 시작”하는 관계 속에서 나의 샘터는 조금씩 말라가고, 좁아지고 있다. 칼로리만 채운다고 건강해지는 게 아니듯이, 축하만 받는다고 따뜻해질 수 없다. 풍요 속의 빈곤은 지갑이 함께하는 한 계속될 것만 같다. 나의 샘터에 다시 물을 들이는 일은 요원하고 지난한 일처럼 보이나 체념한 채 두고 볼 순 없다. 난 매년 그래왔듯 생일을 기다리고 싶다. 그래서 <선물 없는 축하 문화>를 상상했다.
이 문화 속에선 살 수 있는 물건은 선물할 수 없다. 편지나 짧은 카드도 좋다. 밥을 함께 먹어도 되고, 노래를 불러주거나, 전화 통화를 해도 괜찮다. 지갑으로 뒤집힌 문화를 다시 한번 뒤집어 내는 선물 없는 축하는 우리를 경제 바깥으로 밀어냄으로써 진정한 환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열어야만 닿는 게 있다. 그리고 닫아야만 열리는 게 있다. 입을 헤벌쭉 벌린 지갑이 손에 잡혔다. 지퍼를 고이 닫아 가방에 툭 던져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