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구원 한 알

글 쓰는 저녁: 마지막 글

by 솔 sol

4월 말이어도 한낮의 열기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게다가 7박 8일의 짐이 실린 배낭을 멘 상태라면 말이다. 순례단은 뙤약볕 아래를 한 줄로 걷고 있었다. 아침에 챙겨 나온 물은 진작 미지근해졌고, 얼굴은 벌겋게 익었다. 눌러쓴 챙 아래로 보이는 얼굴들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순례 5일차에 접어든 단원들은 이미 익숙해 보였다. 곧 쉬는 시간이니 그늘에서 한숨 돌리면 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 시간 걷고 십 분 휴식. 출발 전 공지한 대로 이제는 쉴 때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차도 갓길을 걷고 있다. 오른편으론 가드레일이 보이고, 가드레일 아래론 설악 주변을 휘감는 천이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인테리어 직판장 광고가 붙은 사유지가 보일 뿐이다.


“조금 더 걸어갑시다.” 하는 수없이 대장은 뒤를 향해 외쳤다. 단원들은 차례로 말을 전한다. “조금 더 걷는대요.”, “조금 더 걸읍시다.” 쉬기로 했던 시간은 이미 지난 상황. 언제 쉴만한 곳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단원들의 인내심을 점점 갉아먹었다. 한 줄 걷기를 제안해도 동료와 걷고 싶어 자꾸만 두 줄로 모이던 이들이었으나, 쉼 없는 걷기가 길어질수록 줄은 점점 한 줄로 바뀌었다. 한동안 말 없는 발소리만 설악을 울렸다. “어, 민박집!” 누군가의 외침에 땅을 보고 걷던 얼굴들이 저마다 고개를 번쩍 든다. 왼편으로 굽어지는 차도 안쪽으로 민박집이 보였다. 너른 마당에 평상도 있는, 주택을 개조한 민박집이었다. 주변을 둘러봤으나 그곳이 유일한 휴식처다. 이들은 마당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지 양해를 구하기로 한다. “건널게요.” 하는 호령에 맞춰 삼십 명 내외의 사람들이 우르르 도로를 넘어갔다.


그러나 정작 주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한 사람을 찾느라 60개 눈동자가 요란하다. 계십니까, 하는 인사가 여러 번 울려 퍼지자 민박집 뒤편 작은 밭에서 구부정한 어깨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노인이 보인다. 대장은 후다닥 뛰어가 사람 좋은 표정을 짓는다. “저희는 설악 주변을 걸어서 이동하고 있는데요, 쉴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혹시 여기 마당에서 잠깐만 쉬었다 가도 될까요?” 노인은 별 표정이 없다. 게다가 대꾸도 없다. 턱에 난 수염을 손으로 쓸더니 다시 나타난 곳으로 뒤돌아간다. “어르신…!” 하는 대장의 외침에도 노인은 갈 길을 재촉한다. 커다란 나무 그늘이 드리운 평상, 그 아래서 솔바람을 쐬며 쉬어가기를 기대했던 단원들은 모두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풀어제낀 가방을 다시 메고 떠나려는데, 다시 노인이 마당에 들어선다. 돌돌 말린 커다란 은박 깔개가 햇빛에 번쩍거리며 노인의 손에 들려 있었다.


“평상에 꽃이 떨어져서 지저분해. 한 번 털고 깔아 줄라고.” 평상을 향하는 노인은 투박한 말투, 뻣뻣한 표정을 하고는 마당을 몽땅 내주었다. 불쑥 다가온 훈훈함. 초면의 객에게 무턱대고 전해지는 환대에 단원들도 뻣뻣하게 고장 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고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잠깐만 쉬는 건데요.”, “털어서 까는 건 저희가 할게요.”, “아유, 감사합니다.” 노인은 순례단의 거듭된 인사를 듣더니 됐다며 손을 아래로 두어 차례 쓸어내린다. 인사는 충분하다는 것. 그러고는 다시 뒷짐을 진 채 밭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구제한 영웅의 뒷모습은 투박하면서 왜소하다. 그 뒤로도 순례단은 한참이나 감사합니다를 외쳤더랬다.


바람이 불 때면 번쩍거리는 은박 깔개에 누워 바람을 쐬던, 그날이 자꾸 떠올랐다. 순례가 끝난 지 한참이건만 투박하고 왜소한 노인의 뒷모습이 바람을 타고 자꾸 불어왔다. 볼품없는 감자 한 알을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감자는 사시사철 저렴했고, 구하기도 쉬운 만만한 식재료 중 하나다. 생긴 것도 막 생겼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자란 외양을 본떠 바보 같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별생각 없이 사는 사람에게 “저는 말하는 감자입니다.” 따위의 유머 코드가 통할 정도였으니, 감자는 만만하고 보잘것없는 값싼 작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만만함이 많은 이들을 먹여 살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감자는 멋 부리는 대신 빨리, 많이, 그리고 어디서든 자랐다. 구황작물로 자리매김한 감자는 기근이나 흉년 앞에서 기꺼이 하루 치 식량이 되어주고, 한 해를 버티게 도왔다. 볼품없이 생긴 감자 한 알이 주는 섭섭잖은 구원은 꼭 순례길에서 만난 노인과 닮아 있었다. 감자 한 알 만큼의 구원. 실로 곤란할 땐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된다. 목마른 자에게 건네지는 물 한 컵처럼 말이다. 이는 커다랗고 대단한 손길이 아니다. 오히려 만만하고 가벼운 호의에 가깝다. 건네기도 좀 쉽고 받기에도 부담 없는 호의가 만드는 고마운 구제의 순간들. 볼품없어 보이는 감자 한 알씩을 주고받는 관계가 사람들을 여러 번 구하는 것 같다. 이런 감자식 구원이 널리 퍼진다면 어떨까? 살다 보면 곤란한 순간은 한 번에 그치지 않을 테니까. 감자처럼 더 쉽게, 더 자주, 더 많이 주변에 손을 내밀어 주면서 서로를 구하는 사이로 거듭나는 세상은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단언컨대 내 감자가 볼품없어 보인다고 걱정하지 말자. 내 감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이 건넨 감자 한 알을 보며 그렇게 외칠 것이다. 감자합니다, 감자합니다! 하고. 노인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던 순례단원들의 인사가 어느덧 감자합니다 로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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