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저녁: 여섯 번째 글
씻기 전 거울을 마주한다. 거울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인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한 평짜리 화장실은 내가 이 앞을 벗어날 수 없단 사실을 재차 알린다. 평소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 나로선 씻을 때나 보게 되는 얼굴이 조금 낯설다. 게다가 발가벗은 상태라 괜히 더 멋쩍어진다. 내 몸임에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온수를 틀었다. 수증기가 거울을 빨리 가려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그날 따라 뜨거운 물 나오는 속도가 유독 더디다. 우리 층 사람들이 동시에 씻기 때문인 건지, 부끄러움을 인식해버린 내 감각 때문인 건지. 덕분에 거울 앞에서 나를 보는 시간이 좀 길어졌다. 거울 속엔 잔뜩 꼬부라진 머리카락과 둥글둥글한 얼굴이 한 눈에 드러났다. 눈, 코, 입, 귀, 콧구멍에 모공까지 매끄러운 구멍들이 얼굴 곳곳에 놓여있다. 얼굴을 훑는 사이, 물에 한기가 제법 빠졌다. 그러나 몸에 뿌리기엔 아직 무리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거울 앞에 그려진 나의 모습을 윤곽선으로 따내고 있다. 어디 하나 어긋나거나 틀어지지 않고 신기하게 곡선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사뭇 놀랍다. 단단한 뼈 위로 살가죽이 덮여 있어 부드러워 보인다. 곳곳이 푹신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번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나의 눈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갈색을 띈 홍채가 원을 키웠다 줄이며 부드러운 춤을 추자 내 숨도 그 흐름을 따라간다. 어색한 거울 속 나와 몇 번이나 눈을 맞췄을까, 어느덧 물 온도가 적당해졌다. 거울은 조금씩 뿌옇게 김이 서리기 시작한다. 물이 닿자 일순 몸이 따뜻해진다. 물을 맞으며 곡선이 아닌 나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결국 빈손이다. 나의 몸은 지나칠 정도로 곡선투성이였다. 이는 내가 가진 특색이라기보단 인간이 가진 특성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곡선으로 자랐다. 그저 조금씩 다른 굴곡을 가졌을 뿐이다. 근육질의 다부진 몸 역시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주름살도 구불구불 물결처럼 새겨졌다. 입술이나 손가락도 부드럽게 접혔다 펴진다. 그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은 마치 곡선처럼, 타고나길 부드러운 존재임이 분명하다고.
하지만 사람이 매사 부드러울 거란 생각은 낭만적인 오판이었다. 우리는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선 몸 아닌 것들로 찌를 수 있는 존재였다. 무기는 대체로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날카롭기는 흉기와 다를 바 없었다. 부드러운 목젖, 유연한 혀를 거쳐 나오는 말은 음성을 타고 재빠르게 벼리어 꽂힌다. 말에 감정이 실리거나 내용 자체가 둔탁할 때, 얻어맞는 일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한번 터져 나온 말은 주워 담기도 힘들다. 시작된 공격은 들어야만 끝난다는 점에서 대체로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때론 말없이도 충분했다. 동그랗던 두 눈이 샐쭉해지거나 반대로 더 커다래지면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순간엔 말보다 강력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째림과 부라림은 매서운 섬광처럼 덮쳐왔기에 효과는 확실했다. 심지어 내가 눈빛의 수신자가 아닐 때도 어딘가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눈빛은 발신자의 의욕에 따라 수신자에게 반드시 전해졌는데, 그 힘이 대단해서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따가웠다. 눈총의 무시무시함은 푹 찌는 여름에도 단번에 오싹해지고, 머리를 쭈뼛 일으키곤 했다. 말투며 눈빛이며, 가만 보면 날카로운 것들은 죄다 둥그런 얼굴에서 시작했다. 유순하고 부드러워 보였으나 언제든 낯빛을 바꿔 할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였다. 얼굴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기운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언제고 뾰족해지는 존재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매일같이 얼굴을 씻는지도 모르겠다. 때 낀 얼굴을 닦으면서 날 선 마음도 함께 지워내고 비워내라고. 그래서 몸이 알려주는 곡선처럼 부드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미움과 비난의 낌새를 빡빡 지워보라고 말이다.
날카롭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하루 두 번의 수양, 세수. 타고나길 부드럽게 태어난 사람처럼 우리의 기운도 부드럽게 쓰이길 바라며 오늘치 낯을 씻으러 나는 또다시 화장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