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축제

글 쓰는 저녁: 다섯 번째 글

by 솔 sol

비 오는 날이면 수많은 동그라미가 함성을 치며 세상을 점령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저마다 동그랗게 퍼져 나간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면 동그라미들은 제각기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앞서거나 뒷서며 각자의 동그라미를 키우거나 줄이는 일에 열중한다. 바닥에 부딪쳐 부서질 때도, 잎새에 내려앉을 때도, 물가에 떨어질 때도 동그랗게 부서지고 동그랗게 옹송그리며, 동그란 파문을 그려낸다. 그야말로 동그라미의 무한한 행진이다. 당당한 고함을 동반한 동그라미 행진은 음악을 틀어둔 축제현장 같다. 저마다의 동그라미로 자유로이 해방되는 그곳에 초대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우산을 썼든지 우비를 입었든지 상관없이 손을 쭉 뻗으면 손바닥에 하나, 둘 동그라미들이 모여 앉는다. 작은 웅덩이가 생기고 까끌까끌했던 손바닥은 금방 동그랗게 젖어 든다.


비를 맞을수록 나도 빗방울처럼 살아가고 싶어진다. 빗방울들은 잘 뭉치고 잘 흩어진다. 혼자 다니다가도 서로를 끌어안는다. 자신의 품을 기꺼이 내밀어 둥그렇게 안아간다. 동그라미와 동그라미는 맞닿는 동시에 두 팔을 힘껏 벌린다. 서로를 받아들이며 조금 더 큰 동그라미가 된다. 언제 둘이었냐는 듯 하나로 몽글몽글 뭉쳐진다. 한편 커다란 동그라미는 부서져야 하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서지면 부서지는 대로 또다시 동그랗게 살아간다. 바닥으로 추락하면 끝이 아니라 십수 개의 동그라미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는 동그란 빗방울들. 아무리 빗금을 그어 상처를 내려 해도, 무자비하게 갈라내도 동그랗게 떨어질 뿐이다. 어느 때고 동그래지는 빗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동그랗게 껴안고 동그랗게 살고 싶다. 부서지며 함께하는 동그라미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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