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즐거운 수리의 날들

by 지구 외계인

아침의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수선대 위 돌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옆에 실 한 올이 느리게 누워 있었다. 주인장은 주전자를 들어 김을 한 번 내보내더니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접수부터 해 보세요.”

“접수요?”

“네. 이유를 먼저 들어 주는 사람. 오늘은 그 자리가 당신 겁니다.”

나는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앞숨으로 내보냈다. 맞은편 벽에 붙은 작은 칠판을 닦아 새 줄을 썼다.

오늘의 안내
이유를 들고 오세요.
잘 보게 해 드리기보다, 떨림을 줄여 드립니다.

문이 먼저 열렸다. 손등이 고운 이모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얼굴색은 환한데 숨이 가빴다.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했다.

“큰일이에요, 반지를 잃어버렸어요. 어디서 빠졌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의자를 내주고 물컵을 건넸다.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어요?”

“어제 저녁, 마트에서 장보고 돌아오는 길. 장갑을 벗을 때까지도 있었는데… 집에 오니 손이 가벼운 거예요.”

“왜 그 반지가 필요하죠?”

그는 잠깐 멈추었다. 숨이 고르며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혼자 살던 시절, 내 생일날 나 자신에게 선물한 거예요. ‘나를 놓치지 말자’고. 그래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그때 마음을 놓친 것 같아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에서 작은 천조각과 얇은 병 하나를 꺼냈다. 천조각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바느질이 한 줄 지나 있었다.

“이건 보풀 받침, 이건 ‘되돌아보기’ 병이에요. 천으로 어제 외투 소매 안쪽과 가방 안쪽을 한 번씩 문질러 보세요. 그리고 마트에서 집으로 오던 길을 그대로 가되, 한 걸음 옆으로만 걸으세요. 늘 걷던 길의 바로 옆쪽. 반지는 종종 몸이 놓친 자리에 머뭅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반지를 찾으면 좋고, 못 찾더라도 ‘그날의 약속’을 오늘로 불러오세요. 오늘 밤 자기 전에 손등에 작은 원을 그리면서, ‘나를 놓치지 말자’고 다시 한 번.”

이모가 물었다.

“정말 찾을 수 있을까요?”

주인장이 옆에서 낮게 덧붙였다.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되찾으려 해 보세요. 되찾기는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이 같이 하는 일입니다.”

이모는 천조각과 병을 신중하게 가방에 넣었다. 나갈 때 문턱에서 내가 말했다.

“연락 주세요. 못 찾았어도요. 그럼 내일, 반지 대신 다른 걸 꿰매 드릴게요.”

그녀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종소리가 다시 흔들렸다.

두 번째 손님은 운동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뒤꿈치로 바닥을 톡톡 치며 들어와 어색하게 인사했다.

“저… 오늘 결승전이에요. 마지막 슛을 제가 쏴야 할 수도 있어서… 근데 손이 자꾸 떨려요.”

나는 칠판을 가리켰다.

“오늘의 안내, 보셨어요? 잘 보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떨림을 줄여 드릴게요.”

학생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더 필요해요.”

“왜 그 슛을 넣고 싶죠?”

“팀에서… 늘 조용했거든요. 소리치는 애들 뒤에서 공만 돌리고. 마지막엔 한 번쯤,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서랍에서 얇은 끈과 작은 종, 손바닥만 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끈은 손목에 감을 만큼의 길이였다.

“이건 떨림을 나누는 끈이에요. 혼자 다 가지 말고, 세 조각으로 나누세요.”

“어떻게요?”

“첫째, 당신. 둘째, 관중석의 누군가 한 사람. 셋째, 코트를 청소하던 사람. 슛을 던지기 전에 관중석에서 한 사람만 찾으세요. 이름 모르는 사람. 눈을 딱 한 번 맞춰요. 그 사람이 당신 떨림의 3분의 1을 가져갈 거예요. 그리고 경기 전 코트를 닦던 사람을 떠올리세요.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땀을 닦던 사람. 그 사람에게도 3분의 1. 나머지 3분의 1만 당신이 가져요.”

학생이 웃었다.

“그렇게 나눠도 되나요?”

“네. 떨림은 나눌수록 자연스러워져요.”

나는 작은 종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들리게 울리지 말고, 귀에만 들리게 한 번. 그리고 이 카드는 말문 카드. 문장 하나만 미리 써 봐요.”

학생이 펜을 받아 들었다.

“뭐라고 쓰면 좋을까요?”

“이유를. ‘나는 왜 이 슛을 던지는가’.”

그는 잠깐 멈추더니 적었다.

오늘, 나를 사라지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슛 전에 손목 끈을 한 번 돌리고, 종을 아주 작게 울리고, 속으로 그 문장을 한 번만 읽어요. 그리고 공을 던진 다음엔 고개를 너무 빨리 들지 마요. 떨림이 먼저 지나가도록.”

학생은 손목에 끈을 감고, 종을 주머니에 넣었다.

“들고 가도 돼요?”

“오늘만. 내일 돌려 주세요. 결과와 상관없이.”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주인장이 물었다.

“떨림을 나누는 끈. 새로 만들었네요.”

“어제 배운 온도 덕분이에요. 혼자 뜨거워지면 타 버리니까요.”

세 번째 손님은 정장을 입은 사람, 단정한 표정에 눈동자는 바빴다.

“면접이 내일이에요. 늘 같은 질문에서 얼어요. ‘왜 우리여야 하죠?’”

나는 의자를 조금 뒤로 빼, 시선을 맞추기 쉬운 각도를 만들었다.

“왜 그 질문이 어려워요?”

“거창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남들처럼 번듯한 말. 근데 제 말은 자꾸 작아져요.”

“작은 말로 해 보죠. 한 줄만.”

나는 점이 찍힌 종이와 얇은 연필을 건넸다.

“한 줄만요?”

“네. 그리고 거절 연습을 먼저 할 거예요.”

“거절이요?”

“당신이 당신을 거절하는 연습. ‘그 말은 거창해서 싫다’고. 그러면 남는 말이 있어요.”

그는 숨을 내쉬고, 점 아래에 천천히 썼다.

당신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싶어서요.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더요. 그 방향이 어떤 방향인지, 당신 발이 알아보게.”

그는 다시 적었다.

일이 빠를 때도 서로 기다리는 방향.
잘한 일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
놓친 사람을 다시 부르는 방향.

나는 그 종이를 접어 그의 가슴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면접에서 묻지 않아도, 당신이 먼저 꺼내세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은요’라고. 질문을 기다리지 말고, 질문을 열어요. 그리고…”

나는 작은 거울을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둥근 거울이었다.

“면접장 들어가기 전에 거울에 대고 ‘오늘 저는 잘 보이려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번만 말해요. 잘 보게 해 드리는 게 아니라, 떨림을 줄여 드릴게요.”

그가 거울을 받아 들고 웃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말이 크게 필요 없네요.”

“그럼 잘 된 거예요. 큰 말은 보통 떨림을 숨기려고 나와요.”

그는 인사하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방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주인장이 주전자 불을 줄이며 내게 물었다.

“접수대에서 보는 풍경이 어때요?”

“앞에서 낮게. 뒤에서 크게가 아니라, 앞에서 낮게, 뒤에서 낮게. 오늘은 다들 낮았어요.”

“오늘 가게 온도가 그랬나 봐요.”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일을 했다. 나는 라벨을 정리했고, 주인장은 실의 꼬임을 풀었다. 정오가 넘어가자, 전화가 하나 왔다. 첫 손님이었다.

“찾았어요! 앞치마 안감에 달라붙어 있었어요. 어제 말한 대로 한 걸음 옆으로 걸었더니, 문득 손이 거기로 갔어요. 근데… 이상해요. 찾았는데 눈물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나는 미소를 삼키며 말했다.

“되찾기는 오늘의 당신도 같이 하는 거니까요. 오늘 밤 원 그려 주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메시지가 왔다. 학생이었다.

— 전반은 엉망이었는데, 마지막에 자유투 두 개. 종을 아주 작게 울리고 던졌더니, 소리가 안 들리더라고요. 둘 다 들어갔어요.
— 근데요, 웃기게도… 내가 던진 다음에 코트를 닦던 분이 엄지척을 해줘서 더 좋았어요.

나는 짧게 답을 보냈다.

— 떨림을 잘 나눴네요. 종은 내일.

오후 늦게, 면접 준비를 하던 사람이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빵이 들려 있었다.

“고맙다는 표시로… 이거라도.”

주인장이 받지 않자, 내가 대신 받았다.

“결과는 아직이죠?”

“네. 근데 오늘처럼 말해도 될 것 같아요. 방향을 먼저 말하고, 질문을 기다리지 않는 방식으로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오늘의 결제예요. 내일은 내일의 이유로.”

해가 기울 무렵, 골목이 금빛으로 눕고, 가게의 유리창에 긴 그림자가 걸렸다. 손님이 뜸해지자, 주인장은 어제 꺼내 두었던 회색 양복 조각을 다시 올려놓았다. 어깨선에 어제 내가 지나가듯 남긴 한 땀. 그 옆에 오늘 그의 손이 한 땀 더 얹혔다. 실은 여전히 풍족하게 남아 있었다.

“내 옷에 남의 손이 들어오는 게… 생각보다 덜 무섭네요.”

“느린 온도 덕분이겠죠.”

그가 웃었다. 나는 수선대 가운데로 돌판을 살짝 더 끌어당겼다. 글자가 빛을 더 잘 받게.

먼저 부름

문이 마지막으로 한 번 울렸다. 오늘 내내 문턱을 맴돌던 발소리의 주인이었다.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였다가, 우리를 보더니 그 자리에 섰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먼저, 왜 필요한지 들려주세요.”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의 온도가 낮아서, 끝에 가서 따뜻해졌다.

“내 일이 자꾸 엉켜서요. 잘 보이고 싶어서 자꾸 설명을 늘리는데, 그러면 더 꼬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늘은 잘 보이려는 마음을 접어 두고, 떨림부터 줄여 보죠. 먼저 한 줄만.”

그는 천천히 말했다.

“오늘은… 내가 나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나는 종이 한 장을 내밀고 적어 주었다.

오늘은 내가 나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잘 보게 해 드리는 게 아니라, 떨림을 줄여 드릴게요.”

그 문장을 듣자 그의 어깨에서 바람이 빠져나갔다. 주인장은 주전자를 들어 마지막 차를 따랐다. 김이 저녁빛 속으로 얇게 올라갔다.

문을 닫고 불을 낮추자, 가게의 소리들이 차례로 조용해졌다. 바늘이 케이스로 들어가고, 실이 통에 감기고, 돌판이 그 자리에 남았다. 나는 오늘의 이유를 병에 적어 넣었다.

오늘은 먼저 듣고, 조금 늦게 말한다.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문장은 방의 온도를 오래 지켜 줍니다.”

우리는 종을 아주 작게 울렸다. 내 귀에만 들리게. 밖은 금빛을 지나 푸른빛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기적들은 낮 동안 여러 번 미끄러졌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용히 멈췄다. 나는 그 자리에 놓인 숨들의 온도를 한 번 더 기억했다. 그리고 내일의 한 줄을 아직 정하지 않은 채로,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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