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함께 고치는 법

by 지구 외계인

아침, 간판 불은 꺼 둔 채 문을 열었다. 종은 맑게 울리지 못했지만, 어제보다 덜 갈라졌다. 주인장은 문턱 봉합 테이프를 한 번 더 눌러 붙이고, 수선대 위 큰 병과 돌판을 나란히 세웠다. 나는 칠판에 잉크펜으로 오늘의 안내를 천천히 적었다.

오늘의 안내
혼자 고치지 않습니다.
각자 받은 행운을 아주 조금만 내어놓습니다.
기록은 남기지 않고, 온도만 올립니다.
나눌수록 커집니다.

문이 열렸다. 반지 이모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손등에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반지는 아직 못 찾았어요. 대신… 어젯밤, 원을 그리며 ‘나를 놓치지 말자’고 다시 말했어요. 그 말에서 조금 덜 외로워졌어요. 그 덜 외로운 만큼,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원 모양 종이를 내놓았다. 원의 테두리에 연필이 한 번, 또 한 번 겹쳐 지나간 자국. 주인장이 그 종이를 병 옆에 올렸다. 종이는 유리 위에서 잠깐 들썩였다.

운동복 학생이 목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훈련장에서 자꾸 말이 엇갈렸는데, 종을 귀에만 울리고 ‘오늘 사라지지 않기’만 반복하니 조금 맞춰졌어요. 그 ‘조금’만 내놓고 싶습니다.”

그는 어제의 손목끈을 풀어 세 올로 가르고, 한 올을 내게 건넸다. 나머지 두 올은 본인 주머니와 수선대 모서리에 묶었다. 끈이 모서리에서 부드럽게 떨렸다.

정장을 입은 사람도 왔다. 어제 젖던 종이는 말랐다.

“면접은 내일 모레로 미뤄졌습니다. 대신, 오늘 복도 조명 점검을 제가 제안했어요. ‘방향을 먼저 말하는’ 연습을 일하기에 써 보았죠. 그때 생긴 작은 자신감, 한 숟갈만 두고 갑니다.”

그는 가만히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병 입구 위에서 아주 얇게 불어 넣었다. 병 벽이 순간 서리 내리듯 흐려졌다.

가게 밖에서 웅성거림이 났다. 주인장이 문을 반쯤 열었다. 단골 빵집 주인이 양손에 트레이를 들고 서 있었다.

“오늘 첫 굽, 처음 두 덩이는 늘 모서리가 조금 탑니다. 그 ‘조금 탔지만 향이 제일 좋은 모서리’를 잘라 왔어요. 구운 행운은 나눠야 제맛이니까.”

빵 냄새가 방의 온도를 한 번에 끌어올렸다. 나는 작은 접시에 모서리 조각을 나눠 담아 수선대에 올렸다. 빵집 주인이 트레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오늘은 깜박이지 않더군요. 골목에서 테이프 반짝이는 걸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버스 운전사도 모자를 벗고 들어왔다.

“정류장 좌표가 자꾸 틀어져 승객들에게 혼났지요. 오늘은 정류장마다 문을 2초 더 열어 두겠습니다. 그 ‘2초’를 여기 맡겨 두고 싶어요.”

그는 운전석에서 쓰던 작은 모래시계를 꺼내 수선대에 놓았다. 모래가 아주 천천히 흘렀다. 흘러내린 초가 방 바닥의 시간과 맞물렸다.

청소 아주머니가 대걸레를 문밖에 세워 두고 손수건을 내밀었다.

“바닥 닦다가 모서리에만 남는 반짝이를 모았어요. 온도는 없지만, 이 반짝이를 손수건에 묻히면 덜 차가워지더라고요. 수건은 매일 빨아오겠습니다.”

수건의 모서리가 미세하게 따뜻했다. 우리는 손수건을 돌판 옆에 펼쳤다. 반짝이는 가루가 수건 섬유 사이로 옮겨 붙으며 빛을 둥글게 눌렀다.

주인장이 접수대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장치를 만들죠.”

“장치요?”

“네. ‘공유 행운’의 장치. 이름을 너무 크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리는 가게 안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을 꺼냈다. 사라지지 않은 나무틀 몇 개, 얇은 실 몇 타래, 컵받침, 남은 분필 가루, 문턱 봉합 테이프, 모래시계, 빵 모서리, 손수건의 반짝임, 손목끈 한 올, 원 모양 종이, 버스 2초, 복도 조명의 숨, 그리고 병과 돌판.

주인장이 손짓으로 각자의 자리를 정했다.

“먼저, 빛이 새는 높이에 그물을 칩니다. 실과 손목끈 한 올, 테이프 모서리로 다섯 개의 점을 고정하고, 그 사이를 ‘이유’로 묶습니다.”

“이유로… 묶는다고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각자가 한 줄씩 말하면서 묶어요.”

우리는 의자 위에 올라 그물을 얕게 쳤다. ‘나를 놓치지 말자’, ‘오늘 사라지지 않기’, ‘방향을 먼저 말하기’, ‘앞에서 낮게 비켜주기’, ‘기다릴 때 덜 잃기’. 말을 하는 순간마다 실이 잘 걸렸고, 떨림이 실로 옮겨 탔다. 천장 모서리로 달아나던 빛이 그물에 닿자 한 번 둥글게 말렸다.

“둘째, 온도를 모읍니다.” 주인장이 병과 돌판 사이에 빵 모서리와 모래시계를 놓았다. “빵의 향과 시간을 나란히 둡니다. 향은 마음을, 시간은 숨을 데웁니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속도에 맞춰 우리는 한 입씩 빵을 떼어 먹었다. 빵을 씹는 움직임과 숨의 길이가 비슷해졌다. 병 바닥의 조각들이 조금씩 풀리며 서로의 가장자리를 비볐다. 아주 미세한 소리, 마른 낙엽을 옆으로 문지르는 소리 같은 것이 병 안에서 났다.

“셋째, 흐름의 방향을 바꿉니다.” 주인장이 문턱 봉합 테이프를 잘라 바닥에 원을 만들었다. 손수건을 원 가운데 펼치고, 그 위에 원 종이를 겹쳤다. 그 위에 모래시계를 올렸다.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문턱에서 원을 만나면 순간 멈추었다가 갈래를 나눴다. 하나는 병 쪽으로, 하나는 돌판 쪽으로, 마지막 하나는 그물로.

나는 물었다.

“이건 어떻게 불러요? 등불? 그릇?”

주인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을 붙이면 팔리고, 값이 매겨집니다. 그냥 ‘장치’라고 부릅시다. 설명이 아니라 동작으로 기억하게.”

우리는 장치를 작동시켰다. 방법은 단순했다. 각자 한 줄의 이유를 말하고, 손가락으로 원의 바깥을 한 바퀴 쓸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종을 아주 작게 울렸다. 앞에서 낮게.

첫 번째 순서는 이모였다.

“나를 놓치지 말자.”

그녀의 손끝이 원을 쓸며 지나가자, 손수건의 반짝임이 잠깐 덜 차가워졌다. 모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빛 한 올이 병 쪽으로 돌아섰다.

둘째는 학생.

“오늘, 나를 사라지게 하지 않기.”

그의 손끝이 지나자 그물에 걸린 빛이 톡 하고 방향을 바꿨다. 수선대 위 그림자 선이 약간 두꺼워졌다. 반짝임이 그림자 안에서 식지 않고 머물렀다.

셋째는 정장.

“방향을 먼저 말하기.”

모래가 절반쯤 흘렀을 때, 골목에서 누구의 웃음소리가 났다. 카페 결제 소리 뒤에 이어지는, 안도의 웃음. 주인장은 숨을 길게 들이쉬고 덧붙였다.

“기다릴 때 덜 잃는 법.”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앞에서 낮게, 빨리 비켜주기.”

그 순간, 병 벽이 아주 미세하게 김을 뿜었다. 김은 금세 사라졌지만, 사라진 자리의 온기가 책상 나뭇결 위에 얇게 남았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모여들었다. 우리는 문을 활짝 열지 않았다. 문턱의 테이프가 흐름을 조절하도록 반쯤만.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서서히 들어왔다. 빵집 손님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얼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던 이웃, 코트를 닦던 청년, 택배 기사, 유모차를 미는 어머니, 골목의 기타 치는 학생.

나는 안내를 반복했다.

“한 줄만. 많이 내지 마세요. 아주 조금만. 그리고 가져가실 것도 아주 조금만.”

사람들은 수줍게 자신의 ‘조금’을 내어놓았다. 행운의 타이밍이었던 알람음, 잃어버렸다가 찾은 사소한 영수증, 시험 전날에 우연히 본 문장,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 준 낯선 손, 오래된 노래 한 소절,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묶어낸 신발끈. 어느 것에도 가격표는 붙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온도가 붙었다.

장치는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그물은 천장에 얕게 쳐져 있었고, 원은 바닥에서 얕게 빛났고, 병과 돌판은 예전 자리 그대로였다. 그러나 가게의 공기는 달라졌다. 빛은 여전히 새었지만, 새다가 돌아왔고, 돌아오다 머물렀다. 머무르다 나눠졌다. 그리고 나눠질수록, 방의 호흡이 넓어졌다.

그때, 검은 우산이 문 밖에 잠깐 멈추더니 사라졌다. 나는 주인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아주 조금만 저었다. 오늘은 장치에 집중하자는 뜻. 우리는 계속해서 모래시계를 뒤집고, 원을 쓸고, 그물을 손보고, 병에 말들을 불어넣었다.

해가 기울 즈음, 버스 운전사가 다시 들어왔다.

“정류장 시간이 다시 맞습니다. 대신, 제가 2초를 더 열어 둔 자리에서 사람들이 서로 먼저 보내더군요. 그 ‘서로 먼저’에서 생긴 여분, 한 숟갈 더 두고 갑니다.”

나는 웃으며 모래시계를 그의 손에 한 번 맡겼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돌려놓았다.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빛을 아주 작게 받아 반짝였다. 어제의 차가운 반짝임이 아니었다. 온도를 가진 반짝임.

장치를 거친 빛은 가게를 나와 골목에도 번졌다. 카페 안에서는 결제음 뒤에 “괜찮습니다, 천천히요”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누군가가 “먼저 타세요” 대신 “같이 타요”라고 말했다. 빵집에서는 모서리 조각이 먼저 나가고, 가운데 조각이 나중에 나갔다. 정류장에서는 아이가 손을 흔들며 웃었고, 운전사가 짧게 경적을 울리며 답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가자, 주인장은 장치를 한 번씩 어루만졌다. 실의 매듭, 손수건의 반짝임, 원의 종이, 모래시계, 병, 돌판. 그는 천천히 말했다.

“오늘은 ‘공유’의 연습이었습니다. 내일은 ‘유지’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장치는 오래 둘수록 이름을 갖고 싶어지고, 이름이 붙으면 값이 붙습니다.”

“그럼… 어떻게 유지하죠?”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부르는 법. 그냥 ‘오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오늘 장치, 오늘 그물, 오늘 원, 오늘 온도.”

나는 칠판에 마지막 줄을 적었다.

오늘 장치 — 나눌수록 커집니다.

“그 말은 꼭 대사처럼 들리네요.” 내가 웃었다.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아주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되받았다.

“나눌수록 커집니다.”

그 말이 병 벽을 통해 방 안으로 퍼졌다. 퍼지다가 얇은 금속처럼 울리지 않고, 목재처럼 흡수되는 소리. 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간판 불을 켜지 않아도 가게 안쪽은 충분히 보였다. 빛이 완전히 새지 않았고, 온도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문을 닫기 전, 나는 한 줄의 이유를 병에 적어 넣었다.

오늘은 내 몫의 ‘조금’을 내어놓는다.

주인장은 돌판을 수선대 한 가운데에 다시 올려놓았다. 먼저 부름. 글자가 밤의 빛을 받아 더 선명했다. 우리는 종을 아주 작게 울렸다. 내 귀에만, 그의 귀에만, 오늘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의 귀에만 들리도록.

문을 잠그고 돌아서며, 나는 장치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이름이 없으니 팔릴 수 없고, 가격이 없으니 훔칠 가치도 낮은 것. 그러나 온도는 있었다. 그 온도는 길을 기억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내일 아침에도, 그 다음 날에도, 누군가의 ‘조금’을 데우며 돌아갈 것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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