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영화
대학교 1학년, <영화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의 첫 질문이 잊히지 않는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요?"
교수님은 강의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학생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셨고, 다양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약 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흥미와 철학이 적절히 융합된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의 가장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1. 점프
이 영화에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점프이다.
점프는 다른 우주의 자아를 불러오기 위해 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행동들이다.
영화의 1장 <에브리씽>에서는 그 점프가 마냥 웃기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의 2장 <에브리웨어>에서의 점프를 보고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왜 점프가 황당해야만 했는지, 조금씩 납득이 되며 그 행동들이 짠해 보였다.
점프는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있으며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사소한 일상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주제인데, 점프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이없고 하찮은 점프가 모든 상황에서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2. 멀티버스라는 소재
이 영화를 보며 영화 <백 투 더 퓨쳐>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85년에 개봉한 영화라,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가장 먼저 사용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다른 세계에서의 선택의 순간들이 현 우주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설정이 무려 37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또, 영화 <인터스텔라>도 떠올랐다.
자신의 과거 선택을 보며 슬퍼하는 <인터스텔라>의 절정 씬이 다소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여 아쉬웠던 영화이다.
그 외에도 스파이더맨을 포함한 마블 영화, 히어로 영화 등 다양한 멀티버스 소재 영화들이 있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깔끔하게 서열정리를 했다고 느껴진다.
다른 우주가 하나만 있어도 영화는 복잡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수많은 우주를 너무나도 깔끔하게 연결시켜 보여준다.
숨 막히게 전환되는 컷 편집들은 시각적으로 아주 훌륭했으며 그 몰입도와 정성은 정말 감탄스럽다 못해 존경스러웠다.
3. 원
원, 동그라미라는 도형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출적 요소이다.
이 영화 역시 눈알, 세탁기, 베이글, 쿠키, 돌 등 다양한 동그라미가 나온다.
왜 동그라미인가.
이 도형의 속성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원은 지속적이고 무한하다.
세탁기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사소한 일상도 반복된다.
그것을 부질없게 생각하여 원의 지속성으로부터 탈출하는 순간, 우리는 원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조금은 어지럽고 지루하더라도 돌아가는 세탁기에 몸을 맡길 것을 이 영화는 강조한다.
영화 <홀리모터스>를 보면 동그라미의 연출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4. 좋은 영화 맞아?
멀티버스와 화려한 액션, 재미 포인트 등이 영화의 기본인 재미를 충족한 건 알겠다.
그런데, 그에 비해 철학이 부족해 좋은 영화가 되기엔 부족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소한 일상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
이 영화의 주제는 거창하지 않고 단순하고 사소하여 예술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해내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주제를 천천히 곱씹어보자.
"사소한 일상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