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브랜딩에 대해 쓴 첫 책 제목은 <손을 잡는 브랜딩>이다. 부제는 '지키기≦살려내기≦함께 나아가기'. 30대에 만나 함께 일한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일을 하다 생긴 고민에 대해 썼다. 2년 후 <ESG 브랜딩 워크북>이라는 두번째 책을 썼다. 이번에는 '좋은 브랜드는 계속 변합니다' 라는 부제를 붙였다. 열심히 일한 시간,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던 여정 그 이후에 결국 꺼내게 된 주제는 바로 '좋은 브랜드'였다. 좋은 브랜딩 작업을 하고 살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내가 사는게 즐거울 것 같아서, 좋은 브랜드에 대해 더 많이 쓰고 말하고 다니면 나도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자기 암시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ESG 브랜딩 워크북>이라는 제목에는 'ESG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고 부제에 좋은 브랜드라는 단어를 써서, ESG 브랜드를 좋은 브랜드로 간편하게 치환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ESG는 진짜 좋은 브랜드다"라는 순진한 주장을 막무가내로 해버린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 브랜드(ESG를 억지로 짜맞추거나, 카피하거나, 거짓으로 떠드는)가 많다는 것을 "워싱하면 안되죠" 라는 말로 쉽게 넘어간 것을 반성하고 있다. 다만, 나쁜 사례보다는 좋은 사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좋은 브랜드를 진짜 빡쎄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전하는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들이 해나가는 일들의 공통점과,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보고 싶었다. 브랜딩을 일로 해오면서 만난- 존경스러움과 흥미로움이 한데 섞여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브랜딩 기법'이라는 주제로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의 질문에 '정체성부터 진정성있게'라는 답을 드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답이지만서도, 못내 찝찝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로 여전히 '좋은 브랜드'가 되자고 주장하기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어느 북토크에서 나의 숨겨놨던 찝찝한 마음에 그대로 말을 거는 질문을 받게 된 사건이 있었다.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앗
음...?!
강연이나 토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Q&A 타임인데, 그 날 처음으로 아차 싶었다. 시간이 멈추는 현상을 경험했다. 나 혼자 고민 중이었던 마음을 수면 위로 꺼내야만 하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저 질문에 대한 통찰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 걸까 싶어 멍하게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원찮은 대답을 하고,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너스레를 떨었다. 생각이 나면 반드시 전체 이메일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 후로 계속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전체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부채의식도 있었지만, 그보다 어물쩡 넘어갔던 문제에 대해 나 자신도 좀 더 당당해지고 싶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질문 앞에서 얼음이 되었던 걸까? 일단 나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의 이미지는 땅과 평행한 일직선의 모습인데, 높인다는 말은 상승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도무지 이 두개의 이미지를 한 팀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어렵다. 그냥 거기에서 부터 막혀버린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에 앞어서 일단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 보아야겠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료도 계속 들춰봤다. 책을 쓰기 위해 모았던 자료와 데이터, 다른 책들, 사례들을 비교해보며 내 의견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찾았다. 의외로, 위키피디아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아냈다.
생태학적 용어로서의 지속가능성은 '유지'에 대한 능력을 말하는데, 경제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형용사로 사용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성장'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잘 챙겨야 한다는 의미의 지속가능성과 점수를 높일수록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해주는 의미의 지속가능성이 공존하는 세계관이었나? 아니면 두 개의 세계관이 하나의 단어를 쓰는 오류가 있었나? 왜 아무도 이 현상에 시비를 걸지 않는거지? 라는 물음표가 드릉드릉 차오르게 된 것.
애초에 고민했던 <수평선>의 이미지와 <상승선>의 이미지는 결국 각각 이 개념을 활용하는 분야의 특징에 맞춰서 모두 동시에 혹은 각각 다르게 활용되고 있던 것이다. 굳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라는 문장까지 완성해서 만들지 않아도,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이미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거다. 내가 마이크를 든 채로 멍하게 천장 조명을 바라본 이유가 바로 이런 모순때문이다. 애초에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태도부터 우리는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질문으로 만든 문장인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개의 선 각각의 정의와 관계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저는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높일까"에 대한 질문을 두 개의 질문으로 분리시키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1.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가? (혹은 지속가능하게 하고 싶은가?)
2. 무엇을 높일 것인가? (혹은 높이고 싶은가?)
이제 답답함이 조금씩 가신다. 이것저것 과포화 상태에서 어디로 더 나아가야 할 지 모르겠는 현대 사회에서 브랜딩, 마케팅, 경영을 하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지긋지긋한 '지속가능성'의 빛과 그림자라는 생각은 줄곧 하고 있었지만, 개인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차원에서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가 답답했던 것은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거늘. 바로 이 분리 작업부터 실마리를 찾아봐도 괜찮겠다 싶다.
나의 브랜드가 1. 지속하고 싶은 것/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엇인지 2. 성장하고 싶은 것/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브랜드의 정체성이라던가 로드맵, 커넥팅맵('ESG 브랜딩 워크북' 중 3장 192페이지, <커넥팅 맵-협력자 지도>참고) 들은 저절로 정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이다. 도넛 경제학이라는 21세기 경제학을 창안한 인물이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좀 웃기기는 하지만 사실 한-창 '브랜딩 때려치울꺼야!' 라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다녀온 영국의 슈마허컬리지에서 였다. 세상의 모든 대안(Alternative)에 대해 토론하고, 특히 전환경제학(economics for transition)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그 곳에서 소개받은 도넛 경제학. <ESG 브랜딩 워크북>에서 아주 가볍게 언급해보기도 했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도넛경제학을 실천하는 그룹인 도넛집이 생기고 영국의 도넛경제학 연구소인 DEAL(donut economics action lab) 과 연결되어 활동을 하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도넛 경제학의 핵심은 도넛모양의 '기준'이자 '적정 범위'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안정적인 도넛 형태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도넛을 예쁘게 만듭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도넛 경제학에서 특히나 감동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브랜딩 일을 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건 바로 도넛 경제학을 제안하는 메세지 작성에 있어 '성장' 대신 '번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케이트는 "건강한 경제는 성장이 아닌 번영을 목표하며 계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 단어를 그대로 빌려다 쓴다면, 결국 지속가능성 높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굉장히 간결해질 수 있다. 성장과 유지가 대립하는 관계라던가 분리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최적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관계로 변하게 되는 단어, '번영'.
그리고 결국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발전될 수 있겠지.
"나의 브랜드는 무엇을 번영하게 만드는가? 그 지점을 향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나아가는가?"
살아가면서 나도 늘 생각해보고 싶은 인생의 빅퀘스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