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되는 조건이 따로 있을까
머리를 자르러 갔다. 헤어디자이너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브랜딩이라는 일을 하는게 직업이라고 밝히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어, 저도 브랜딩 해야 하는데!"라고 받아주신다. /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다. 오래 전부터 브랜딩을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신다. 브랜딩을 해서 팔로워를 늘리고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하신다. 브랜딩하면 인플루언서가 되는거죠?라는 질문에 내놓을 대답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 새해 계획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단 올해는 브랜드를 하나 만들 생각이구요,'라는 말을 듣는데 기분이 묘해지면서 동시에 왜 기분이 묘해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예전에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라고 보통 말하지 않았나? 이제는 '브랜드를 만들려고 한다'라고 하는구나.
누구를 만나도 브랜딩을 해야 하고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해야 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일이, 브랜딩이라는 것이, 모두 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다름과,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도 확실하게 있다.
브랜딩에 대한 책을 내놓고 나니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브랜딩하고 싶다고 했잖아."
"응, 그게 언젠데?"
"그 때 우리 만난 SA 워크샵에서부터 나한테 그렇게 얘기했는데"
워크샵에 참여했던 것은 2001년 여름이었다. 게다가 건축워크샵이었는데...거기서 내가 브랜딩을 하겠다고 말했었다고? 귀엽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 때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었던 '브랜딩'이라는 일은 대체 어떤 형태였을까? 뭘 보고, 뭘 경험했길래, 그런 꿈을 만들었지?
브랜딩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이 되다보니 아주 오래 전 내가 마음에 품었다고 전해들은 그 브랜딩의 의미가 더욱 궁금해진다. 꽤나 일을 해버리고 있는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브랜딩과 2001년의 내가 꿈꾸고 있던 브랜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브랜딩이 하는 일에 대한 다양한 견해. 오래 전 내가 생각했던 브랜딩이 하는 일에 대한 견해. 차이와 같음을 찾는 일은 늘 재미있다.
아주 쉽게 생각해보자면, 브랜딩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그게 다다.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하고, 이건 브랜딩이 아니고 저게 브랜딩이고, 좋은 브랜딩은 이런거고 저런거는 잘못된 브랜딩이다 라는 말들 곁에서 지내고 있지만, 사실 브랜딩이라는 것은 브랜드를 소유하는 사람이 그 브랜드를 만들고 활용해나가는 방식일 뿐이다. 브랜딩이란 아주 단순한 업무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이 아주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단순하게 움직이는 일이 바로 브랜딩이라고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을 해야 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 더 유명해지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브랜드를 더 멋져보이게 만들고 브랜딩을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니,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좋은 사례를 찾아내자" "세상의 모든 브랜드를 살펴보면서 나의 브랜드를 채워가자" 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렇게 브랜딩을 '세상에 대해 공부하면 잘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브랜딩의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사실을 놓친 채로 점점 '나보다 잘하는 브랜드', '정말 멋진 브랜딩'을 향해서 계속 노를 젓는 것이다.
브랜드의 핵심은 '자아'이다.
브랜딩의 핵심은 '자아를 잘 형성하는 것'이다.
브랜딩의 시작과 끝은 브랜드 정체성이고, 브랜딩의 모든 영역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딩에 관한 대부분의 허상과 착각은 '자아를 무시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브랜드는 이런 약점이 있지만 이 부분을 덮거나 대체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의 자아를 스스로 무시하고 다른 브랜드가 되려고 하는 경우다.
"브랜딩으로 돈을 많이 벌면 저희가 아직 상품성이 모자란데 그 돈으로 상품력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같은 것이다. "저희 카페가 신규고객을 더 모객해야 하는데 브랜딩으로 유명해지면 그 다음에 카페를 좀 더 잘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마치 "브랜드가 A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은 B처럼 되는 브랜딩을 해서 상황이 나아지면 A도 저절로 좋아지지 않을까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A의 특징을 가진 브랜드는 A를 살리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A의 특징을 묻어두고 B의 방향으로 나아가면 A도 B도 될 수 없다. A도 B도 모두 브랜드 각각의 자아가 되지만, A는 B가 되려하거나 B가 A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 모든 계획이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되는 일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각각 자신만의 자아를 충족시킨다고 하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결국 다 브랜드라고 불러도 되는 것 아닐까?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렇게나 선명합니다, 라고 설정해놓고 브랜드의 비전과 미션, 핵심가치를 정리해서 웹사이트에 공개하면 브랜드가 되는 걸까?
브랜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사업을 근간으로 만들어진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댓가를 돌려받는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명확한 대상을 필요로 하고, 그들과 주고받을 '매개'가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매개체를 통해 대상과 연결되고, 상호 작용이 활성화될수록 사업은 활기를 띠게 될텐데, 여기서 브랜드와 브랜드가 아닌 갈림길 지도가 펼쳐진다.
브랜드는 자신의 사업을 기반으로 자아를 성장시키고 확장시켜간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아에 담겨있는 어떤 욕망'을 브랜드 가치로 전환시키게 된다. 브랜드의 자아가 담고 있는 욕망은 브랜드 가치로 발전하고, 브랜드 가치는 브랜드와 세상을 연결하는 접점이 되어준다.
정체성, 진정성, 차별성, 독자성, 일관성. 브랜드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성질이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숙제처럼 풀어서 정성스레 설정하고 그에 맞춰서 활동을 해나가는 것을 브랜딩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브랜드의 자아와 욕망을 무시한 채 '이상적인 브랜드'의 모습을 설정하고 상상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진짜 성공을 맛보는 짜릿한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문제 풀이나 숙제 검사, 체크리스트가 아닌 이 브랜드의 깊은 욕망이고 그 욕망이 제대로 투영된 자아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