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힙 요즘브랜드

첫 제목은 '요즘 브랜드 것들'이었습니다

by flourish

이 글은 GQ 2022년 12월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요즘 잘하는 브랜드를 말하라면 그야말로 끝이 없다. 이토록 힙한 브랜드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열정으로 응답해주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 무척 감격스럽다. ‘사우스 코리아’의 브랜드 춘추전국시대를 열일하는 나이에 마주했으니, “타이밍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올해의 브랜드를 선정하는 나만의 심사 기준에는 올해의 질문이 있다. 안 그래도 격변에 포스트 코로나가 겹치는 2022년. ‘이 브랜드는 어떤 역할을 선택해서 책임지고 성장하려 하는가’라는 무거운 소리를 해보고 싶어지는 건, 나이때문일까, 시대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 단연 선두는 파타고니아다. 어째서 ‘요즘 브랜드’를 말한다더니 처음부터 이런 올드한 브랜드를 입 밖에 내냐면, 파타고니아의 리더인 이본 쉬나드 회장이 지난 9월 자신과 가족의 회사 관련 지분 약 4조원을 기후위기 관련 활동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브랜딩 업자들끼리 만나면 “대체 힙이란 게 뭘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하곤 한다. 모든 브랜딩은 힙해야 한다는 데에 우리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본 쉬나드의 기부 뉴스를 듣고 동료들과의 카카오톡 방이 밝아졌다. 이거야말로 끝장판 힙 아니야?


사실 파타고니아의 지구방위대 활동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인데, 이들의 기업 행동이 유별난 것이 아닌 본받을 만한 이미지로 완벽하게 전환된 건 ESG라는 어젠다가 중요해지기 시작하고부터다.

지난달 서울역에서 열린 공공디자인페스티벌에서 <두루두루 시장>이라는 기획을 도와 ESG 관련 기업의 판매전을 열었다. 가치 소비나 가치 지향 브랜드라는 단어를 꽤 자주 써오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일을 펼치시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일을 하면서 크게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과 비지니스를 만드는 ‘신이어마켙’이나 난치병 어린이 환자들의 그림으로 캐릭터 상품을 만드는 ‘민들레마음’, 파치 농산물로 반려견 용품을 생산하는 ‘푸르티바스켓’, 디자인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는 매거진 <MSV> 부스에서 잔뜩 쇼핑을 했다. 브랜드라는 프레임이 무척 넓어져 다양한 사람이 브랜딩을 당연시 여기고, 함께 하나의 판을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듯했다. 지갑이 계속 열렸다.


좋은 일로 돈 버는 업계에서 무려 10년 차가 된 ‘베어베터’는 시조새가 되고 있다. 베어베터가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회사 중 대기업으로 불린다고 한다. 입사 경쟁율이 치열한 곳이라고 한다. 좋은 브랜드를 향한 입사 경쟁은 어디에나 있구나, 싶었다. 최근에는 ‘동구밭’이 이 자리를 이어받고 있다. 이들의 제품들은 올리브영, 쿠팡, 더현대, 또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오래오래 더 많이 크고 더 많이 상승했으면 하면 브랜드들이다. 배턴을 계속 건네면서 이어달리기를 해주면 좋겠다.

베어베터의 10주년 소식은 성수동 ‘프로젝트 렌트’가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 모르게 조용히’가 지금까지 착한 기업들이 지킨 암묵적인 룰이었다면, 오늘의 베어베터는 힙하고 귀엽고 눈길을 끄는 이벤트를 성수동 한가운데에서 기꺼이 열어준다.

프로젝트 렌트를 거치면 브랜드력이 장착되고 강화된다. 프로젝트 렌트의 브랜드력 덕분이다. 스몰 브랜드는 이곳에서 뾰족함을 얻고, 은밀한 브랜드는 대중성이라는 감각을 담게 된다. 서체 디자이너 채희준이 프로젝트 렌트에서 지난 가을 진행한 ‘채희준 2022 프레젠테이션’은 이 사람의 서체, 더 나아가 이 사람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가 되어가겠다는 상상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더 큰 세상, 더 많은 사람을 얻는 것이 최고의 성과일까? 올해 큰 사랑을 받은 브랜드 중 사람 한 명 한 명을 살려내려는 이들의 성장이 눈여겨볼 만했던 것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론칭 2년 차가 된 ‘밑미’는 리추얼 플랫폼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지원한다. 성공보다 성장, 유니콘보다 커뮤니티가 먼저라는 밑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있자면, 진심으로 든든한 브랜드라는 것이 실제로 구현되는구나 하는 기대감이 든다. 명상 브랜드의 큰언니 ‘마보(국내에서 만들고 일찌감치 런칭한 명상앱)’가 닦아놓은 터에 ‘캄(Calm, 조금 더 세련된 글로벌 명상앱)’과 ‘헤드스페이스(넷플릭스에 컨텐츠도 올려져있는 브랜디드 글로벌 명상앱)’가 열심히 성장하더니, 작년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명상 앱 ‘코끼리(지금은 사퇴한 혜민스님과 대한영국인 다니엘튜더가 함께 만든 명상앱)’에 이어 ‘마인드카페(전문가의 심리상담 앱)’가 올해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마음 건강 관련 브랜드들은 공급과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잘 자리 잡은 대형 유통 플랫폼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준 작은 브랜드들을 위해 컨텐츠를 계속 만들고 있다. 그들이 계속 건강하게 성장해야 자신들도 동반 성장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구성수’와 ‘오프컬리’가 떠들썩하게 자리를 펼치고, ‘무신사 테라스’가 자꾸 분주하게 행사를 기획하는 것, 스마스트스토어가 소상공인을 위한 잡지 ‘find’를 부지런히 발간하는 것을 칭찬한다.

물론 자신감이 장착된 작은 브랜드들은 스스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줄을 세운다. 맛난 것이라는 무기를 가진 F&B 분야에서 눈에 띄는 현상인데, ‘아우어’, ‘도산분식’, ‘올드페리도넛’을 줄 세우며 오픈한 CNP, ‘다운타우너’와 ‘노티드’를 앞장세운 GFFG, ‘더티트렁크’가 앞장서는 CIC, 젠틀몬스터가 론칭한 ‘누데이크’의 브랜드 파워는 지치지를 않아 부럽기까지 하다. 이들 크루 중에는 패션업에 종사한 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음식과 옷이라는 인생의 핵심을 즐기는 모습이 영민해 보이기까지 한다. 손으로 만드는 감각이 기본적으로 장착된, 마음에 들 때까지 핵심을 잃지 않는, 뭘 하나를 해도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버리는 패션인들의 F&B 브랜드에 줄이 긴 것이 당연하다. 본능적으로 브랜딩이 되버리는 것이다.

이 와중에 F&B도 패션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인 ‘김씨네 과일’의 대박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으로 어디로 갈까, 김씨는? 론칭하자마자 슈퍼스타가 되어 협업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슈퍼말차’는 대체 어디서 갑자기 떨어진 걸까? 얼마나 더 유명해질까? 먹는 것, 입는 것, 즐기는 것들이 마구 섞여버리거나 혹은 완전히 뼈대만 남거나 하면서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은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랜딩은 그런 것. 온통 난리가 나거나, 하나빼고 다 버리거나, 그러면서 뭔가를 계속 이어간다.


신성한 식생활을 수호하는 조금 차분한 세계로 이동해보자. 10년 전 매우 작고 매우 아름답게 론칭한 ‘마르쉐’라는 특별한 시장의 영향을 받아 성장해 온 건강미의 세계다. 지난 10년가 소규모 다품종의 농사를 통해 채소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여온 ‘준혁이네’는 지금 수많은 셰프가 사랑하는 농장이 되었다. ‘그래도팜’과 ‘꽃비원’은 어엿한 로컬 브랜드 플레이어가 되었다. ‘아까h’, ‘마하키친’, ‘뿌리온더플레이트’, ‘입말음식’의 활동이 확장될 수록 나만 아는 척하던 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성장한 브랜드들에게 늘 느끼는 밝은 아쉬움이다.

빠른 확산을 우선으로 달리는 브랜드의 세계 반대편에는 깊이와 다양성이라는 이슈를 중심에 두는 브랜드의 세계가 있다. 우리를 끌어당기다 못해 산길을 달려 찾아가게 만드는 로컬 브랜드의 매력. 로컬브랜드가 가장 신명 나게 활동하는 분야는 술이 아닐까.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 와 ‘제주맥주’의 뒤를 이어 작은 규모의 맛난 술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충주의 ‘댄싱사이더’는 올해 초 애플사이더 인기가 뿌리깊은 미국에서 상을 왕창 받아왔다. ‘원소주’는 대한민국 소주 대장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주농협과 어마어마한 양의 쌀을 계약했다는데, 나랏문제를 술이 살릴 수 있다니 기특하다. 이제 청주가 좀 더 주목을 받아도 될 것 같은데, 올해 아주 큰 성장을 한 유튜버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청주 브랜드 개발 제안하고 싶어진다.

올 한해 브랜드 세상을 필름을 감아가며 열심히 이것 저것 떠올리자니, 진작 ‘롱블랙’이나 ‘아이즈매거진’을 들춰보면서 시작했으면 이 글을 좀 더 쉽게 썼겠네 싶어 살짝 웃게 된다. 연말 기분이 잔뜩 올라오면서 문득 사람들의 연말 계획이 궁금해진다. 바쁜 일만 끝나면 론칭하고 아직도 가보지 못한 ‘데우스 성수’에 가서 발리에서 서핑하던 나날들을 추억해야지. 2주 뒤에는 ‘보난자’가 있는 동네로 이사 간다. 신난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서울에 진출하고 싶어서 호시탐탐 노리는 시대, 내년이 기다려진다.


글/ 한지인(<ESG 브랜딩 워크북> 저자, 브랜드 전문가)

Feature Editor Chun Hee 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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