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GQ 2023년 3월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금옥당 얘기하는 거 혹시 봤어?” 친구가 툭 말을 건다. 얼마 전에 롱블랙에 올라온 인터뷰말고는 모르는데 하니까 그 얘기가 맞단다. 분명 읽기는 읽었는데 자세한 내용까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뭐 거기에 그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만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문득, 그래- 나도 분명 그 인터뷰 내용 읽으면서 기분이 이상했었는데 싶다. 남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 근데 응? 아니, 이렇게 센 단어가 쓰여 있었다고?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이걸 기억못하다니, 내가 정말 이 인터뷰에 관심없음 딱지를 대차게 붙여버렸네 싶고 말이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각자의 의견을 펼치게 만든 말. 나에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인터뷰’라는 인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 분명한 문장. 꽤나 센 인터뷰 속 한 구절은 바로 <500년동안 헛짓했네>였다.
이게 대체 어느 맥락에서 나온 소리인가 싶어 앞뒤를 살피기 위해 인터뷰를 찾아서 다시 읽어본다. 그런데 어라, 이 대표님, 굉장히 수완이 좋은 분이네 싶다. 이렇게 돈 감각있는 사업주의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시원한 것이 사실이다. 브랜딩과 세일즈의 저울질에 실패해 고생하는 대표님들을 마주하는 일이 꽤 자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500년 헛짓> 발언까지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방향이 있는거니까. 요즘 몇년간 이런 이야기들이 점점 많이 들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한 책과 콘텐츠들 말이다. 이들에게 철학없이 돈만 번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신들의 실존적인 상업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다만 브랜딩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효율성이 제1의 원칙인 이들의 돈버는 이야기들에 ‘브랜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헛짓이 너무나도 필수적인 이 브랜딩의 세계에 헛짓하기가 너무 싫은 사람들을 초대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금옥당은, 그리고 금옥당과 같은 방식을 추구하는 사업들은 브랜드라기 보다는 아직 사업이다. 나는 사업이 좀 더 성장해야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업가들에게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브랜딩하는 사람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 10명 중 7명은 아, 저도 브랜딩해야해요, 라고 대답하니까. 브랜드를 탐하는 사업가의 욕망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업과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이다.
돈 버는 방법은 어느 정도 익혔으니 이제 돈이 아닌 다른 것까지 정복해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 효율 극대화의 세계에서 잠깐 빠져나와서 좀 더 확장된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볼 용기를 내야 한다.
금옥당 인터뷰 속 화제의 ‘500년동안 헛짓’의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오래된 전통 화과자집인 ‘토라야’다. 아, 그렇지 일본의 오래된 명가라면, 사업 방식도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도 우리나라와는 다르지. 암, 다르고 말고. 다를 수 밖에. 금옥당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지켜가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그 댓가로 돈을 벌고 그 자체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낀다라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업이 많은 곳. 그래서 우리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이러한 행보에서 꽤 자주 숨 쉴 여유를 얻는다. 500년을 지켜온 브랜드가 주는 단정함 안에서 숨을 쉬면서 단순한 안전감과 위로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이국적인 느낌을 쉽게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 혹은 하기 싫은 것, 어쩌면 절대 할 수 없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혹은 갖기 싫은 것,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나라가 지척에 존재하는 것이 다행이다. 지출을 줄이고 마진은 높이고 판매를 늘리는 방법을 모두가 연구하고 수익자동화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미팅에서 휴식이 필요할 때, 일본이 주는 확실한 위로가 있다.
무언가에 기깔나게 집중해버려서 결국 감탄을 만들어 만드는 오타쿠와 장인들이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참 다양하지, 라는 긍정성이 재생되는 것이 느껴진다. 기획이나 디자인 관점에서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고객에게 가 닿게 하기 위해서 구사하는 방식들을 보면 이 나라가 단순히 오랜 것에 집착하는 나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토라야만해도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토라야 앙 스탠드’에서 충분히 그 브랜딩 저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브랜드를 연구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오타쿠와 장인의 집중력과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이 모든 힘의 핵심에는 분명 한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인사이트는 긴 시간동안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기반으로 쌓여왔겠지. 브랜딩이 그러한 것처럼. 직접 실체를 만들어내는 모노즈쿠리 (物作り)라는 견고한 무기로 성장한 장인정신의 나라. 그러면서도 실리나 실용에 뒤지지 않는 명예와 품격을 키우기 위해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를 확실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 작은 과자 하나를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고, 한 잔의 차와 함께 제공할 수 있는 부가적인 프로그램이 그렇게나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재료가 되어 오래가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다.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식의 기질이 많이 다르다. 이 둘의 차이는 기후나 지형, 주변 지리적 관계와 같은 태생적 요인도 있겠고,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후천성 고정관념이나 트라우마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비롯된 차이가 우리들의 가깝고도 먼 기질의 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는 지는 당연히 다를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걸 500년의 스펙트럼에 두고 본다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쌓아온 사업의 가치와 우리가 우선시 하며 쌓아온 사업의 가치는 너무나도 극과 극이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는 좋은 그림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성능에 대한 개념과 기준이 있다. 우리는 똑똑하고, 재치있고, 추진력이 충만하다. 다만 그것은 명품을 만드는 나라와는 많이 다른 기질이라는 점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왜 전통의 기업과 명품이 없는지 자학하지 말자. 그게 없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니까.
소위 K무엇무엇들이 기세좋게 활동하는 요즘이다. 흐름이 계속 강하게 들어온다. 우리가 좋아해왔던 것들을 더 큰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대한민국에는 토라야도, 에르메스도 생길 수는 없었지만 그게 뭐 대수냐고 대차게 떠들고 놀 수 있는 이 기질이 한국의 헤리티지이다. 실리나 실용에 뒤지지 않는 명예와 품격을 키우는 것이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기질이라면, 우리는 명예와 품격에 지지않는 실리와 실용에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들 쪽이 아닐까. 노골적이고 직접적이고 현재중심적인 이 나라의 기질은 우리의 500년 아니, 지난 긴긴 역사가 남겨준 유산이다. 살아남기 위해 계속 강해져왔고, 안전감을 느끼기 위해 성실하고 부지런히 쟁이고 있지 않나.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을 풀어내기 위해 폭발적으로 놀 줄도 알고 말이다. 싸움판의 역사 속에서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 온 것이 전 세계 불안의 시대를 맞아 빛을 발하고 있지 않다. 우리 나름의 삶의 방식들이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마음과 돈의 비율을 잘 봐 가면서 섞어 최적의 성능을 탄생시키는 것이 브랜드다. 가성비의 상품을 신나게 팔 줄 아는 셀러가 될 것인가, 가심비의 상품을 오랫동안 생산하는 오너가 될 것인가. 어떤 성공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가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브랜딩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쩌면 어떤 성공이 더 익숙하게 그려지는가도 중요한 질문이 될 것 같다. 굳이 비유해보자면 우리나라는 가성비와 효율, 에너지를 기반으로 일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에 최적화된 기질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크리에이티브와 완성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에 편안한 역사를 살아왔다고 해버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만큼의 경험들이 그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되어 버린게 아닐까.
여전히 재미있는 것은, 가성비의 브랜드에게는 언제나 가격을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고, 가심비의 브랜드에게는 고객층을 확장하겠다는 목표가 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본의 강점이 보이고, 일본도 우리의 강점을 찾고 있는게 아닐까. 이제는 그래야 더 잘 팔릴테니까 말이다.
잘팔리는 브랜드가 되는 방법은 아주 명확하다. 충분한 헛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헛짓들이 모여 헛짓이 아닌 결과를 만들어 줄 때까지 말이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아니 당신 지금 완전 헛짓하고 있잖아, 라고 말리려고 해도 피식 웃을 수 있게 되기를. 저는 지금 브랜드를 만들고 있어서요, 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글/ 한지인(<ESG 브랜딩 워크북> 저자, 브랜드 전문가)
Feature Editor Chun He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