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오조리를 알게 된 것은 오래전 올레길을 걸었을 때였다. 1코스를 걷고 2코스 1/3 지점에 있는 신산리의 숙소로 가기 위해 조금 무리해서 나선 길.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된 2코스는 참 얄궂게도 오조리 마을을 빙 돌아서 가게 되어 있었다. 파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 선택의 여지없이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만난 곳이 오조리였다.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 시내의 북적임과 달리 한 발짝 물러선 거리에 있는 오조리는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작은 포구가 있었고 그 포구의 배경으로 성산일출봉이 신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러 채의 집들이 돌담을 사이에 두고 오붓하게 모여있었는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다정하게 느껴지던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졌고, 마음이 한없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꼭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오조리에 닿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나간 시간만큼 나의 다정했던 마음도 오붓했던 오조리도 얼마쯤 변해버렸지만 급하게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도망치듯이 떠난 그 여행에서 내 마음은 간절하게 오조리로 향하고 있었다.
혼자 쓸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하고 그곳에서 며칠을 머무르며 소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였다. 산책을 하고, 또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몸과 마음을 조용히 움직였다. 오조 포구와 마을을 산책하다 보니 흩어져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오래전 걸었던 그 길 위에서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어색해하고 있을 때, 포구 한쪽에 있는 작은 건물을 만났다.
'오조리 감상소'라고 적혀있는 그곳은 옛 선착장의 선구 보관창고였던 곳으로 드라마 '공항 가는 길' 촬영지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건물 내부에는 오조리를 기억할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무너지고 부서지고 조각난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듯한 건물보다 더 마음이 가는 공간이어서 한참을 머물렀다.
무심히 글귀를 읽어보다 '쌍월'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매일 아침 하나의 해가 뜨고, 매일 저녁 두 개의 달이 뜬다.'라는 글 아래는 하늘에 뜨는 달과 바다에 비치는 달을 의미한다고 쓰여 있었다. 낮의 모습도 좋지만 진짜 오조리를 만나고 싶다면 밤에 와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해 질 무렵 다시 오조 포구를 찾았다.
하늘이 조금씩 물들어 가는 시간, 포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성산일출봉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조차 없는 바람만이 소란스러운 곳에서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잔잔한 바다와 짙은 현무암, 푸른 하늘이 서서히 물드는 풍경은 수묵화와 수채화를 동시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붉은 해는 한라산 뒤로 넘어가고, 오렌지색 물감으로 곱게 칠해진 하늘이 나타났다. 숨죽여있던 감정이 폭발하듯이 울컥 눈물이 났다. 세상 모든 게 서운했고, 세상 모든 게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커피 한잔을 위로 주 삼아 마시며 마음을 다독였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하나 둘 정리하며 쓸쓸함을 즐기는 사이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울고 웃는 사이에 조용히 흘러가던 오조리의 시간. 어둠이 짙어질 즈음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달이 떠 있다. 성산일출봉 옆으로 떠오른 달. 해는 장엄하게 지고, 달은 조용히 떠올랐다. 그 존재조차 희미할 정도로. 그리고 전날 오조리감상소에서 봤던 '쌍월'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매일 아침 하나의 해가 뜨고,
매일 저녁 두 개의 달이 뜬다.
진짜로 두 개의 달이 떴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비록 그 그림자가 길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 못지않게 밝은 바다 위의 달. 이미 주위는 어두워졌지만 마음 급할 것 없는 여행자는 쉽게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낮부터 이어진 그 밤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쓸쓸함을 옆구리에 끼고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쌍월을 마주한 밤. 오조리의 밤이 그토록 아름다워서 눈물도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