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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끄 May 20. 2022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징징이의 근황




  요즘 살 맛이 안 난다.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중.








살 맛이 안 나는 이유



  작년 가을부터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아침마다 뻣뻣했고, 그다음에는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어떤 날에는 팔이 저려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정형외과를 전전하다 대학병원까지 가봤지만 모든 검사 결과가 너무 깨끗했다. 재활의학과에서는 목디스크 탓이라고 도수치료와 스트레칭을 시켰는데 결과적으로 조조강직만 악화됐다. 지금 나에겐 심할 때만 먹으라고 준 소염진통제 일주일치밖에 없다.


  무릎이 안 좋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다. 가벼운 우울감쯤이야 운동으로 떨쳐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해소되지 못하는 부정적 에너지가 마음에 쌓여만 간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니지만 또 나의 죄이기도 하다. 혼자 이겨내지 못하는 나약한 기질 탓에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못나게 징징거리고 그 뒤에는 또 후회를 하곤 했다. 불안 - 징징 - 죄책감 지옥의 사이클.




  내가 좀 튼튼했으면, 그래서 아이도 일찍 낳고 남편을 더 잘 챙길 수 있었으면,


  아니면 의지라도 강해서 대단할 것 없는 아픔 따위 이겨내고 돈벌이라도 잘 해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야, 남편이 나랑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디서 수더분한 아가씨를 만나 무던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이런 부질없는 자책감의 소용돌이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사는 게 썩 재미가 없다.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렇게 자책하는 것이 무색하도록 내 인간관계는 좋은 편이다. 어째서 다들 징징거리는 나를 나무라는 법이 없는지.


  남편은 똑똑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우울감에 바닥을 기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도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날 보살펴준다. 남편이 바르게 큰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 시부모님께서 정말 좋으신 분들이다. 시어머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경우 없이 징징이가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혼내시는 것 하나 없이 나를 위로해주신다.


  친정 식구들하고도 전에 없이 사이가 좋다. 예전에는 피해의식이 강해서 가족들을 까칠하게 대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편을 만나면서 내 성격이 전보다 둥글둥글해진 덕에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아프다고 징징댔더니 아버지는 한약이며 운동기구를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셨고, 할머니는 음식 하지 말고 시켜먹으라며 용돈을 주셨다.


  가장 친한 친구는 관절에 좋다는 차를 선물해줬다. 신기에 가깝게 감이 좋은 한 친구는 어느 날 아침 최악의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내가 꿈에 나왔다며 장문의 카톡을 보내 날 위로해준 적이 있다. 내가 주로 많이 징징대는 또 다른 친구는 내가 그럴 때마다 투덜거리는 것도 귀엽다며 웃었다.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다상담>에서 어떤 사연자가 자신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자 강신주가 그렇게 말했다. 당장 밥을 주지 않으면 죽는 고양이, 당장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게 바로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것이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그건 죽지 못해, 놓지 못해 사는 삶에 가깝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삶의 형태가 그래서 나는 강신주의 말에 강하게 공감했을 것이다.


  남편은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대단한 꿈도 포부도 없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중



  예전에 살던 집의 단점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재개발 때문에 철거가 한창이던 소음, 그 진동 탓에 집 건물에 균열이 가 비가 샜다. 고요한 새벽녘이면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타닥타닥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난 남편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 더군다나 근처에 괜찮은 심리상담센터가 있었는데 거기서 받았던 인지행동치료는 효과가 굉장히 좋았다.


  하아. 상담치료에 든 돈과 시간이여. 공들여 쌓은 마음의 둑이 무너져 잔해만 남아있는 걸 보고 있자니 허망하기 그지없다.


  도저히 남편에게  이상 폐를 끼칠  없어 오늘은 동네의 상담치료센터를 찾았다. 거기라면 아무도 상처 주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할  있을  같아서였는데 인생은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른다 쳐도  선생님은 너무 말이 많으셨다. 상담시간의 70% 선생님의 조언을 듣는  썼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자책하지 마세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맞는 말이지요. 헌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면 제가 왜 이 지경이 됐겠습니까, 선생님. 집에 와서 남편한테 폐를 한 번 더 끼치고 질질 짜다가 지친 난 결국 예전에 처방받아둔 파록세틴과 인데놀을 먹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약에 적응하느라 속이 울렁거리고 설사에 시달리겠지. 하지만 제발 이걸로 그만 좀 징징댈 수 있기를 징징이는 기도한다.


  아차, 자책하지 말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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