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치매가 덜 두렵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31

by 길 위에서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며칠 후, 길에서 이웃을 마주쳤다. 치매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분은 엄마 안부를 물으시더니 한숨 쉬며 말씀하셨다.

“후회되는 게 많아요.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고 늘 뭐라고 했죠. 그땐 몰라서 그랬어요.”


그 말이 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분의 한숨이 내 마음에 남았다. 정신없이 몇 년을 보낸 뒤에야 그 말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깔끔해야 하고 단정해야 하고 이러면 안 되고 또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많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아무리 말해도 감정만 상하고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더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매 전문 병원으로 옮겨 다시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중등도로 내 짐작보다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엄마도 나도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잘 버티기만을 바랐다. 그러는 동안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요양원에 입소했고 그곳에서 또 긴 적응 과정을 거쳐 마침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우리에게 일상이 평온한 날이 생겼다.


그즈음 ‘매일매일 알츠하이머’라는 다큐를 봤다. 일본 감독이 만든 다큐였다. 아픈 엄마도 딸도 낙천적이어서 화 날 만한 상황도 잘 극복하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의사들의 태도였다. 한 의사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힘들 거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치매 가능성을 반기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다른 의사 한 명은 치매를 “다행증”이라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 행복이 많아진다고. 나는 의아했다. 정말 그럴까?


나는 뒤늦게 치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치매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엄마가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이 년 후였다. 책에서는 의학적으로 치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심리적으로 치매 환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보호자가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지 등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엄마가 치매 초기였을 때 진즉 공부했다면 엄마와 내가 겪은 혼란이 좀 달랐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시간을 좀 더 지혜롭게 보낼 수 있었을까?


그때는 치매 공부가 너무 늦었다고 후회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는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환경도 다르니 치매를 살아내는 과정 또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책에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문장을 발견했다. “옳은 대처 전략은 없다. 우리가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은 치매에 걸렸든 안 걸렸든 사람마다 다르다.” 치매 환자가 쓴 책인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 위로도 받는다.


엄마는 치매 진단 후에도 15년 넘는 시간을 잘 살아내고 마침내 원하던 저 세상으로 가셨다. 힘들었던 일들의 기억은 차츰 옅어지고 엄마와 나눴던 소중한 감정은 몸에 남아 가끔 살아나는 걸 경험한다.


나도 치매가 두렵다. 그래도 십여 년 전만큼은 아니다. 이제 치매가 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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