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30
ㄷ요양원 입소 후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걱정이 컸다. 어르신이 백 명 가까운 시설에서 의사표현에 한계가 있는 엄마가 잘 지낼 수 있을까? 규모가 작은 요양원을 찾아 다시 옮겨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연말이 유난히 스산했다.
요양원에서 문자가 왔다. 송년회와 보호자 간담회가 있으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많은 어르신들과 송년회를 한다는 소식이 놀라웠다. 새내기 보호자였으니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ㄱ요양원에서도 보호자 간담회가 해마다 있었다. 요리 치료와 원예 치료 프로그램도 체험했고 연계되어 있는 병원 원장의 강연을 듣고 치매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도움이 되었지만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가기는 쉽지 않았다. ㄷ요양원의 보호자 간담회는 첫 모임만 참석할 생각이었다.
송년회 전에 엄마를 보려고 30분 일찍 도착했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이미 홀에 나와 계셨다. 요양원 직원분들이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 어쩌면 그렇게 즐거운 표정인지 그게 참 신기했다. ㄷ요양원이 10년 넘었고 오래 근무한 분들이 많아서 그랬을까? 다들 호흡이 척척 맞는 분위기였다.
빨간 망토를 두르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 가운데서 엄마를 발견했다. 맨 앞 줄에 있는 엄마와는 떨어져 뒤쪽 할머니들 옆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옆 할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는데 내가 인사를 하고 웃으니 손바닥을 나를 향해 내미셨다. 나는 눈치껏 한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듯이 그 손을 마주쳤다. 그게 그 할머니의 인사법 같았다. 옆에 앉아 있는 동안 수시로 그렇게 한 손 하이파이브를 했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곱고 화려한 한복을 차려 있는 직원 네 분이 장구를 치면서 민요를 불렀고, 어르신들이 요양보호사들에 둘러싸여 노래와 율동을 했고, 보호자와 어르신이 함께 나와 노래 부르는 팀도 여럿 있었다. 직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노래 부르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에서 어떤 기운이 차올랐다. 마지막에는 보호자나 직원이 어르신과 짝을 이룬 팀이 OX 퀴즈로 겨뤘다. 문제는 요양원과 관련 있는 질문이어서 흥미로웠다. 우리 요양원 어르신의 평균 나이가 84.7세라는 사실도 알았다. 직원분들이 애써 준비한 송년회는 어떤 송년회보다도 즐거웠다.
이어서 보호자 간담회가 있었다. 작년에 대표자가 바뀌었다고 했다.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시설과 프로그램을 정비했고 또 앞으로 할 것인지를 간략히 들었다. 보호자들의 이야기에서는 주로 일하시는 분들의 돌봄에 감동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개선을 요청하는 허심탄회한 의견도 있었다. 신뢰가 가는 간담회였다. 보호자 중 한 분은 요양원 분위기를 한 마디로 “시장통”이라고 표현했다.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좋은 의미로, 부산한 분위기를 어수선함보다는 자유로움과 활력으로 받아들였다. 송년회를 함께하고 간담회도 참석하고 나니 다른 요양원을 찾아야 하나 하는 걱정도 저절로 사라졌다. 요양원을 방문할 때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곳을 보게 되었다.
이 특별한 송년회는 마지막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 달 뒤 면회가 금지되었고 비상사태가 계속되었다. 3년 4개월 만에 비상사태가 해제된 후에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